원세훈 선거법 무죄 이유 살펴보니…판사도 '갸우뚱'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위반 혐의로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 받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을 떠나고 있다. 황진환기자
대선 개입 사건에 연루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1심 재판부의 판결은 언뜻 보기에도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인정하면서도 선거운동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부분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는 원세훈 전 원장이 국정원법 9조(정치관여 금지 조항)를 위반해 정치에 개입했다고 판단, 이 부분은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시했다.

원 전 원장의 지시로 국정원 심리전담 직원들이 각종 인터넷 글과 찬반 댓글, 엄청난 양의 트윗와 리트윗으로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 또는 반대한 것은 맞지만 이같은 활동이 선거운동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가 국정원의 오프라인을 통한 부당한 정치관여 행위를 폭넓게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시키지 않은 법적 근거는 뭘까?

재판부는 '선거운동'은 목적성, 능동성, 계획성이 인정돼야 한다는 점을 주장의 근거로 삼았다.


공직선거법 제58조 제1항에서 선거운동은 "특정후보자의 당선 내지 득표나 낙선을 위하여 필요하고도 유리한 모든 행위"로 정의돼 있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당선 또는 낙선을 도모한다는 목적이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도록 능동적, 계획적인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못박았다. 그리고 원 전 원장의 지시와 국정원 직원들의 정치 개입 활동에 이같은 목적성, 능동성, 계획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우선 시기적으로, 직원들이 인터넷에 게시글이나 찬반 댓글을 달고 트위터 활동을 활발하게 하던 때가 여야 대선주자들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던 때라는 점을 예로 들었다.

"검사가 선거운동의 시작점으로 기소한 2012년 1월은 제18대 대선 후보자의 윤곽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었다"는 것.

하지만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면 여당에서는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의 출마가 확정적이었고, 야권에서는 문재인, 안철수, 손학규 후보 등이 잠재적 대선주자로 폭넓게 거론되던 시기였다.

경선을 통해 대선 주자로 확정돼야만 후보로 본다는 것은 상당히 협소한 해석일 수 있어 법적 논란이 예고되고 있다.

"평상시 하던 업무를 선거 시기에 했다고 해서 선거운동이 된다고 볼 수 없다"는 재판부의 판결을 두고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재판부는 국정원의 사이버 댓글 활동은 선거 기간 이전에도 지속적으로 하던 업무이기 때문에 계획성, 능동성을 발견할 수 없다며 선거운동이 아닌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공직선거법에서는 선거 기간 이전과 이후의 불법 유무에 대해 명확하게 구별하고 있기 때문에 이같은 재판부의 판단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권에 근무하는 모 부장판사는 "똑같은 국회의원 연설을 했어도 선거기간 이전에는 합법이지만 선거기간 이후에는 불법으로 처벌받는 것처럼, 평소 하던 행동이라고 법적인 잣대를 느슨하게 적용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재판부가 원세훈 전 원장의 공직선거법 무죄의 근거로 삼은 선거운동 정의가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같은 논리라면 모든 선거사범에서도 목적성, 계획성, 능동성이 증명돼야만 선거운동으로 인정한다는 것인데 유사한 선거법 위반 사건들과 비교했을 때 형평성 문제도 불거질 수 있어 논란은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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