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 수사팀이 결재 라인에서 빠진 것으로, 이는 현 정권과 밀접한 사건들에 연루되지 않으려는 검찰 내부의 '보신 기류'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검찰의 권력 눈치보기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17일 검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올해 초 국정원 관련 사건을 맡아온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정회 부장검사)이 수사했던 다수의 사건들을 항소하는 과정에서 수사팀이 아닌 공판부 명의로 결재가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국정원 수사 은폐 사건', 김용판 사건 압수수색 당시 경찰 간부의 증거인멸 사건, 국정원 전 직원 김상욱씨 사건 등이 문제의 사건들이다.
모두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를 위해 꾸려진 특별수사팀이 이른바 '직관 사건'(공판직접관여사건)으로 공판을 진행해 왔던 사건이다.
사회적으로 주목받거나 중요한 사건의 경우 담당 수사팀이 재판의 전 과정을 책임지고 결재하도록 하는 것이 검찰의 관례이다. 이는 수사팀이 사건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그런데 관례를 벗어나 수사팀이 뒤로 물러나고 공판부가 결재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여겨진다.
경기도에서 공판 업무를 담당하는 검사는 "직관 사건의 경우 항소장 결재 과정에서 공판부 명의를 빌리는 일은 없다. 결재 라인 자체가 일반 형사사건과 완전히 다르다"며 "보통 담당 수사팀에서 항소까지 책임지고 결재를 한다"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재판 도중 수사팀 간부가 바뀌는 경우에도 후임자들이 사건을 승계해 결재권을 행사해왔지만 국정원 관련 사건의 경우 이같은 관례마저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이는 수사를 이끌어온 윤석열 전 팀장(여주지청장)이 배제된 뒤 현재 이정회 팀장 체제로 수사팀이 대폭 교체된 시기와도 맞물린다.
특별수사팀의 뒤를 받쳐줬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물러나고 윤석열 전 팀장까지 항명 파동으로 좌천되면서 수사팀의 성격이 바뀐 것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검찰은 수사팀 대신 공판부에 김용판 사건 등 관련 사건들의 결재를 잇따라 떠넘기면서 가까스로 항소가 이뤄질 수 있었다.
이는 수사팀이 항소의 전면에 서는 것을 꺼린 것이 한 원인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도 항소 결정 서류에 서명하는 것 마저 주저하는 수사팀의 소극적인 자세를 두고 내부적으로도 비판이 일었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김용판 사건 등의 항소 과정에서 공판부장이 결재한 것은 절차적 하자가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이정회 특별수사 팀장은 당시 수사팀이 항소 결재 과정에서 빠진 이유를 묻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조차 김용판 사건과 같은 '중대하고 민감한' 사건의 항소 책임을 공판부에 떠넘긴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결재 라인에 사인을 했다는 것은 자신이 이 사건에 관여했다는 것이 서류로 남게되는 것을 의미한다. 김용판 사건 등 정권과 각을 세우는 사건 서류에 이름이 남게되는 것을 검사들이 꺼리면서 빚어진 현상 아니겠느냐"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