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전선의 가혹하다 못해 황당한 '갑질' 때문에 하루 하루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소기업 D사 김 총재. 대한전선의 계열사 '티이씨앤코'가 사업부 양도를 미끼로 사업비용과 인력을 D사에 떠넘기면서 김 총재의 고통은 시작됐다.
김 총재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면서 대기업 횡포는 겪을 대로 겪었지만, 이런 식의 갑질은 처음"이라며 "티이씨앤코 측이 사업 양도계약을 하도급 계약으로 둔갑시킨 뒤, 주기로 한 자산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티이씨앤코 관계자는 D사를 찾아 사업부 인수제안을 해온 것은 2012년 말. 대한전선 그룹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계열사인 티이씨앤코 역시 홈네트워크 사업을 해온 스마트사업부를 정리하려고 하니, D사가 이를 인수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대한전선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이어가고 있었고, 계열사 티이씨앤코는 2010년부터 이미 홈네트워크 사업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고 있었다. 이 분야에서 공격적인 확장을 계획하고 있던 D사는 티이씨앤코의 제안을 '윈윈(win-win)'이라고 판단하고 이를 수용한다.
주고 받는 것은 명확했다. D사는 티이씨앤코가 이미 완공한 현장의 하자를 보수하고 신규 수주한 현장의 시공도 완료하면서, 소속 직원도 모두 채용하기로 했다. 연구소장부터 영업인력까지 모두 18명을 '같은 조건'으로 채용했다. 대신 티이씨앤코는 현장이 완료되는 시점을 예정일로 잡고 특허와 금형 자산을 D사에 이전하기로 했다.
미심쩍은 정황이 시작된 건 지난 해 3월 경부터다. 티이씨앤코는 양수도 내용을 담은 합의서를 쓰는 과정에서 본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서로가 합의한 내용은 분명 사업부 양수도인데, 티이씨앤코는 합의서 형식을 '하도급 계약'으로 하자고 요구한 것이다.
◈ 대한전선 매각 절차 의식…자회사 사업부 양수도 약속이 하도급 계약으로
D사 측은 "모회사인 대한전선이 매각 과정에 있는 만큼 티이씨앤코도 해당 사업부를 온전히 유지하는 등 우량기업으로 시장에 보일 필요가 있었다"며 "우리는 이런 상황을 감안해 티이씨앤코 측 요구를 받아들여줬다"고 말했다. 사업현장을 통째로 넘기고 자산을 ‘무상이전’하겠다고 표현하면서도 '양수도'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 이상한 합의서는 이렇게 탄생했다.
대한전선의 본격적 갑질은 올해 2월쯤부터 시작됐다. 티이씨앤코가 당초 약속한 시점보다 늦게 공사대금을 지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계약서 상 D사가 수주 공사를 마무리하고 티이씨앤코의 자산을 이전받기로 한 시점이 되자, 티이씨앤코는 "하자보수가 다 이행되지 않았다"며 계약서 이행에 제동을 걸어왔다.
더 나아가 "처음부터 하도급 계약이었지, 양수도 계약은 아니었다"며 D사로부터 받을 것만 챙기고 줄 것은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D사는 티이씨앤코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하자보수 100% 처리'를 요구하며 자산이전을 영영 미룰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