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에 국민이 없다

[변상욱의 기자수첩]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1년에 한 번 정기국회에서 열리는 국정감사가 제대로 된 감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까 많은 의문이 있으며, 상시국감을 추진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국회 파행으로 미뤄졌던 국정감사가 시작됐다. 672개 기관을 대상으로 20일 동안 실시되는 사상 최대의 국정감사라고 한다. 이것부터가 마음에 안 든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지향해 왔다면 피감기관 숫자가 줄어야 하는데 최대 규모의 피감기관이란 말이 왜 나오는 걸까? 이는 의회의 행정부 감시와 견제가 미흡했다는 반증일 수 있다.

국정감사는 9월 정기국회 중에 20일 동안 실시하도록 법률로 정해져 있다. 그러나 9월 정기국회는 국감도 해야 하고 예산안 처리도 있고 법률안 심사도 해야 한다. 그래서 국정감사는 늘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올해부터는 6월과 10월, 2차례에 걸쳐 국감을 하려 했으나 세월호 참사로 정국이 파행을 거듭하며 시행되지 못했다.


우리나라 국정감사 및 조사의 역사는 시작부터 부실했고 과정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제헌 헌법부터 제3공화국 헌법까지는 헌법에 의회의 국정감사권이 명문화 돼 나름 강력한 감사 권한을 부여하였다. 그러나 유신헌법의 4공화국에서는 국회의 국정감사권을 삭제해 버렸다. 제5공화국 헌법에서는 국정감사를 일부 특정 사안에 한정지으며 기능을 크게 약화시켰다. 그리고 1988년 민주화와 함께 국정감사가 부활됐다.

◈ 국정감사가 감사를 받아야 해

국민의 대표기구인 의회가 최초로 감사활동을 벌인 것은 1689년 영국에서였다. 아일랜드에서 가톨릭교도들이 독립을 주장하며 무장투쟁을 벌이자 영국군이 진압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그러자 영국 의회가 전쟁 패배의 책임 규명에 나섰다. 이때의 활동을 Investigation이라고 하는데 이는 '감사'와 '수사'를 포괄하는 '조사'의 개념이었고 이것이 의회 국정감사의 기원이다. 미국에서도 의회감사는 investigation이다. 이것을 조사라고 번역하지만 감사와 수사권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국정감사 내지는 조사가 가장 철저히 제도화 된 곳은 영국의 전통을 받아들여 보강한 미국이다. 미국 의회는 자체적으로 막강한 조사 기구를 갖고 있다. 조사국, 예산처, 감사국, 기술평가원이 4대 의회 조사기구이다. 그리고 의원들은 이들 기구의 지원을 받아 청문회를 통해 수시로 국정조사를 벌인다. 의원들이 수사관이 되어 수사센터 격인 청문위원회를 설치하고 감사와 수사를 포함한 조사활동을 벌이는 것이 의회의 일상적 업무이다. 우리의 국정감사와 비슷한 기능은 1921년에 세워진 의회 감사국이 주로 수행한다. 의회 감사국은 핵심 업무로 회계감사(audit), 평가(evaluation), 수사(investigation)를 집행한다. 상설 의회 수사기관인 셈이다. 의회 감사국은 관료나 정치인들에게는 CIA, FBI보다 더 위력을 갖는다. 이름이 감사국이지 정보기관이자 수사기관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회의 감사는 특정사건별로 임시수사센터가 설치되는 영국식, 의회 감사기구가 상설 수사기구가 돼 항상 정보수집과 수사를 벌이는 미국식 2가지로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우리나라는 3권 분립을 실천한다고는 하지만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와 권위주의적 정권의 권력 장악을 위해 상시 감사 기능을 대통령 직속으로 두고 의회에는 감사 및 수사권을 주지 않았다. 그것이 지금의 감사원 제도이다. 우리 의회는 왜 수사와 감사를 못하느냐는 문제제기에 따라 의회에 국정조사 권한을 주고, 감사는 대통령의 감사원 감사와 의회의 정기 국정감사 2개로 나누어 설치한 것이 지금의 우리 제도이다. 결국 강력한 미국식 의회 감사제도에서 수사권을 포함한 강력한 감사권은 대통령이 가져가 버린 셈이다.

◈ 국정감사에 국민이 없다

결국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국정감사는 민주주의의 본류에서 벗어난 왜곡된 제도라고 봐야 한다. 정상적이라면 의회 안에 상설 수사센터가 있어야 하는 것이지 1년에 20일 만 우르르 몰려다니며 할 일이 아니다. 그러니 한쪽은 증인 부르라 고함치고 한 쪽은 오버하지 말라고 가로 막으며 의원들끼리 싸우는 꼴이 되고 취재 카메라 떠나면 술 한 잔 함께 하고 끝나는 국정감사가 되는 것이다.

왜곡된 국정감사 제도라는 건 지구촌이 증명한다. OECD 국가들은 대개 감사권이 의회로 들어가 있는 영미 식의 '입법부형'을 채택하고 있다. 감사원이 의회 소속이거나 의회의 요구로 감사를 진행함에 따라 대통령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다. 국민의 대표기구가 감사권을 갖는 이런 나라는 미국, 영국, 덴마크, 오스트리아 등 11개 국가이다.

정부와 국회 어느 곳에도 감사권을 내주지 않고 별도의 독립된 헌법기구로 빼낸 국가들도 있다. 정부와 의회의 정치적 압박에서 감사기능을 독립시킨 '독립기관형'은 독일, 일본, 프랑스, 호주 등 18개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 아래 감사원을 두고 행정부가 행정부를 감사하는 나라는 몇 개나 될까? 이런 '행정부형'은 스웨덴이 채택하고 있었으나 최근 제도를 고쳤기 때문에 지구상에 한국 하나뿐이라고 전해진다. 따지자면 우리나라 대통령은 조사의 권한이 너무 중첩되어 있다. 경찰청, 검찰청, 국세청, 국정원, 감사원을 두루 거느리고 권한을 휘두르는데 의회는 수사권도 없고 상시 감찰도 못한다.

이런 맥락에서 세월호 특위가 '수사를 할 수 있다 없다'로 공방을 벌인 우리의 모습은 실망을 넘어 우스운 꼴이었다고 해야 한다. 그리고 1년 20일의 정기 국정감사를 두고 불평하는 행정부도, 이마저도 제대로 수행 못하는 의회도 국가와 국민을 불안케 한다. 지금이라도 국민의 국정감사가 되게 하려면 개헌과정에서 의회 조사와 감사, 그리고 감사원에 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은 의회의 활동에 더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한다. 국정감사가 긍금하다면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가 마련한 "열려라 국회" 사이트를 참조할 수 있다. 국회도 인터넷 의사중계시스템 사이트를 열어놓고 있다. 지난 국정감사 자료는 국회의 국정감사정보시스템 사이트에 들어가 열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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