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6개월, 더 깊어진 고통] ① 무능한 정부, 부모들의 피눈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CBS노컷뉴스는 참사 반년이 지나도록 진상 규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희생자 가족들은 여전히 고통과 슬픔에 빠져 있는 참담한 현실을 짚어 보는 기획 [세월호 참사 6개월, 더 깊어진 고통]을 연속 보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7B"text":"① 무능한 정부, 부모들의 피눈물","bold":true%7D
② 일베에서 정부·여당까지… 패륜시대
③ 잊혀지는 팽목항
④ 아빠는 네가 되었다


"구조할 수 있다는 데 왜 정부는 가만히 있습니까, 지금이라도 잠수부를 투입해주세요". "살려달라고요 애들 좀 살려주세요"

2014년 4월 16일 오전 온 국민의 시선은 진도 앞바다, 옆으로 기울어 물속으로 잠기는 세월호에 집중됐다.

친구들끼리 떠나는 제주도 수학여행이 얼마나 즐거웠던지 엄마 아빠에게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길을 나섰던 아이들.

하지만 아이들이 탄 배가 침몰했다는 날벼락 같은 비보가 전해졌다.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 허겁지겁 모여든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모두 구조됐다는 보도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잠시 후 470명이 넘게 탑승했던 세월호에서 구조된 사람은 180명에 불과하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고, 학부모들은 급하게 준비된 전세버스에 몸을 실었다.


'구조된 아이들 중에 제발 우리 아이가 있기를…', '전화는 안 되지만, 물에 젖어서 그렇지 진도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거야'

이날 오후 3시쯤부터 진도실내체육관에 속속 모여든 학부모들은 체육관 스탠드 벽면에 붙은 구조자 명단을 샅샅이 훑으며 자녀들의 이름을 찾았다.

"이름이 없어, 애 이름이요, 흑흑, 이름이 없어, 바다 밑에 끼어서 못 나왔나봐요"

자녀 이름을 발견하지 못한 학부모들은 체육관에서 자지러졌다.

믿기 힘든, 아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일부는 실신했다.

2학년 2반 주희 양의 아빠, 엄마는 "분명 방송사 구조자 명단 자막에서 딸아이 이름을 봤어요. 지금 어디 전화가 안 되는 데 있나봐요"라며 기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 살아남은 자의 슬픔, 생존자들의 증언

배에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 듣고 선체에서 나오지 않은 아이들과 달리 일부 어른들은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배가 옆으로 30도 이상 기울자 이상하다고 판단한 탑승객 김모 씨는 배 밖으로 뛰쳐나왔다.

갑판에 실은 컨테이너를 이미 바다에 토해낸 세월호는 복원력을 잃고 계속 기울기만 했다.

가까스로 구조된 뒤 목포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자마자 진도체육관으로 달려온 김 씨는 "배가 기울어 아이들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배 안으로 들이친 물살에 휩쓸려 가는 것을 봤다"며 "아이들의 눈동자를 잊을 수 없다"고 괴로워했다.

상황 판단이 빠른 어른들과 달리 대부분 학생은 선생님을 찾고 구조대원을 기다리며 '골든타임'을 놓쳤다.

목포해경 소속 헬기가 세월호에 접근해 갑판 난간에 매달린 일부 아이들을 구조할 때도 대부분은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만 철석같이 믿었다.

착한 아이들은 빗발치는 엄마 아빠의 카카오톡 메신저에 "괜찮아 곧 구조될 거야"라는 답으로 부모들을 안심시켰고, 한 아이는 "혹시 말 못할까봐 지금 얘기하는 데 엄마 사랑한다"는 생애 마지막 글을 남기기도 했다.

◈ '우왕좌왕' 정부 사흘간 구조활동은 '전무'


학생들을 포함해 304명이 숨지거나 여전히 실종 상태인 대형 참사.

사고 당일 안전행정부와 소방방재청 등 정부는 구조자는 물론 세월호 탑승객 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477명이 탑승했고 368명이 구조됐다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발표는 오후 3시쯤 477명 탑승에 180명 구조로 바뀐다.

또, 2시간도 안 돼 459명 탑승에 164명 구조, 밤 9시에는 462명 탑승에 174명 구조 등 총 6차례나 수정됐다.

사고 이튿날 박근혜 대통령이 체육관에 모여 있는 실종자 가족들을 찾았다.

박 대통령은 "날씨가 좋지 않지만, 최선을 다하도록 모든 분에게 부탁을 했고 계속 (구조) 시도를 하고 있다"고 가족들을 안심시켰다.

제대로 된 답변을 못하는 해경 관계자들에게 화가 난 부모들 중 일부는 박 대통령의 약속에 박수로 화답까지 했다.

박 대통령 방문 이후 사고대책본부는 "500명이 넘는 군·경·민간 잠수사들이 사고 해역에서 구조활동에 나섰다"고 밝혔지만, 사고 당일까지만 해도 수면 위에 선수를 내보였던 세월호는 아예 물속으로 잠겨버렸다.

이후 3일이 지나도록 잠수사들은 선체에 진입조차 못 했고 실제 선체 진입 잠수에 투입된 인원은 고작 5명 안팎이라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실종자 가족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진입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선체 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현재 해역 시정이 안 좋고 조류가 워낙 빨라 시도는 했지만, 진입하지 못했습니다"

해경 관계자들의 이실직고가 이어지자 잠시나마 희망을 품었던 엄마 아빠들은 또다시 무너졌다.

"대통령까지 나서 구조활동을 독려했는데 해경과 해군은 무엇을 하는 거냐"며 울부짖었다.

체육관 뒤편 찬 바닥에 앉아 있던 50대 여성은 "대통령이 뭔데 왜 박수를 쳐! 아이들을 구해야 박수를 치지 뭐했다고 박수를 쳐? 지금 며칠째냐고! 박수 한 번만 더 치기만 해봐"라며 울음을 터트렸다.

다른 학부모는 각 정부 부처 파견 공무원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달려가 "내 아이를 당신들처럼 훌륭하게 키울 수 있었어"라고 오열하다 끝내 실신했다.

◈ 온 국민 염원과 달리 아이들은 차디찬 주검으로

배 안에 일부 남아 있는 공기(에어포켓) 속에 아이들이 살아 있을 것이라고 믿은 학부모들의 희망은 일주일 만에 절망으로 바뀌었다.

아이들은 차디찬 주검으로 차례차례 엄마 아빠에게 돌아왔다.

진도항(옛 팽목항) 선착장 등대에서 사고 해역을 바라보며 밤마다 아이 이름을 부르고, 아이들이 좋아하던 피자와 햄버거를 차려 놓고 눈물을 흘리던 학부모들은 차디차게 돌아온 아이 주검을 보고 속절없이 무너졌다.

잠수대원들이 세월호 선체에서 수습한 아이들의 인상착의는 체육관에 설치된 대형화면으로 전달됐고 희생자 발견 소식이 들어올 때마다 학부모들은 '내 자식이 아니길' 바랐다.

사고 당일 구조자 명단에 이름이 나왔던 주희 양은 끝내 32번째 희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살아 돌아오기를 전 국민이 염원했지만, 배 안에 갇힌 아이들은 결국 단 한 명도 구조되지 못했다.

그리고 이 어이없고 참담한 상황에 국민들은 국가의 존재 이유에 근본적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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