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실에는 천 화백의 대표 작품인 여인들, 바다의 찬가 등을 비롯해 32점의 그림이 걸려 있다.
특히 <생태>라는 작품은 1951년 작으로 35마리의 뱀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천 화백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 시켜 준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생태> 작품이 ‘진품’이 아닌 ‘모작'으로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
작품 아래에는 “본 작품의 보호를 위해 일정기간 전시하지 않으니 양해하시기 바랍니다”라는 글이 붙어 있다.
그러나‘천경자의 혼’에 전시된 32점의 작품들은 천 화백 측과 협의에 의해 지정이 됐기 때문에 시립미술관이 따로 보관하고 있는 천 화백의 다른 작품으로도 대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마련한 대안이 모작을 걸기로 한 것이다.
◈천경자 전시회 10년 동안 변하지 않는 이유...영구 전시 계약 때문
천 화백의 32점의 작품은 무려 10여년동안 시립미술관 2층 전시실을 벗어난 적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림의 위치가 바뀌거나 다른 작품이 걸린 적도 없으며 벽의 색이나 내부 구조도 모두 그대로다.
서울시는 15년 전인 1998년 고건 서울시장 시절 천 화백으로부터 작품 93점을 기증받았다.이 가운데 61점의 작품은 수장고에 따로 보관하고 32점의 작품은 시립미술관에서 전시를 하도록 한 것이다.
단, 상설 전시실에서 영구 전시를 하는 조건으로 협약이 이뤄졌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기증인데다 한 작품 당 수 억 원을 호가하는 천 화백의 그림을 받는 것은 서울시로서도 영광스런 일이었기 때문에 영구 전시 조건을 수용했다.
기증을 받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영구 전시' 계약이 화근이 됐다. 그림의 위치나 조명을 바꾸거나 수장고에 있는 그림과 교체를 하려고 해도 시립미술관은 천 화백의 딸인 대리인 이혜선 씨와 협의를 해야 한다.
시립미술관 측에 따르면 천 화백측이 ‘지금 상태에서 아무것도 변하면 안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기 때문에 협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10년 넘게 변한 것이 없는 천경자 화백 전시 공간은 ‘죽은 공간’이 됐다는 게 시립미술관의 설명이다.
시립미술관 관계자는 “천 화백의 전시실이 2층 한 켠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2,3층의 유료 전시를 관람하는 시민들의 동선이 단절된다”며 “또 2층에서 전시가 이뤄지다 보니 무료로 천경자 화백의 그림을 보기 위해 미술관을 찾은 시민들에게도 일일이 입장표 검사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고 말했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죽은 공간이 돼 버린 천경자 전시실을 살리기 위해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천 화백의 작품을 해외에 알리기 위한 해외 교류나 다른 유명 작가들과의 기획전 등을 계획하려고 해도 어려운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천경자 화백 측 "관리소홀이다. 그림 돌려달라" vs 미술관 "관리에 공 들이고 있다"
서울시의회 정세환 의원은 지난해 11월 말 서울시의회 정례회에서 "천 화백 전시실이 보물에서 애물이 됐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천 화백의 대리인인 이혜선 씨는 애물단지 논란이 일자 관리 소홀 등을 이유로 반환을 요구했다.
시 관계자는 "미국에서 거주하는 이혜선 씨가 지난 2월 한국에 귀국해 서울시 관계자를 만나 기증받은 작품을 반환해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전했다.
미술관측은 이에 대해 "천 작가의 작품은 금고와 같은 수장고에 따로 보관하고 있으며 온도,방습,방충,조명 등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며 "관리 소홀을 이유로 돌려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