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협구에 홈런 맞불' 이택근 vs 삼성 심리전 'KS 진짜 승부처'

'한번 걸리기만 해봐!' 2014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넥센 주장 이택근(가운데)과 배영수(오른쪽), 안지만 등 삼성 투수진. 올해 정상을 위한 진짜 승부처로 꼽히고 있다.(자료사진=황진환 기자, 삼성 라이온즈)
2승2패, 팽팽한 대결이 이어지고 있는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한국시리즈(KS). 삼성과 넥센이 장군멍군을 부르며 한치의 양보 없는 접전을 펼치고 있다. 대구와 목동에서 한번씩 신승과 낙승을 거두며 다시 새롭게 출발선에 섰다.

이번 KS에서 대체로 삼성은 투수진, 넥센은 타선에서 비교 우위에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때문에 시리즈의 관건은 삼성 마운드가 얼마나 넥센 방망이를 막느냐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번 KS의 진짜 승부처는 따로 있다. 바로 넥센 주장 이택근(34)과 삼성 투수진의 자존심 싸움이다. 야구가 분위기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KS 우승팀이 여기서 가려질지도 모른다.

▲이택근, 도발 제안에 안지만, 맞불 응수

포문은 이택근이 먼저 열었다. 이택근은 지난 3일 KS 미디어데이에서 상대에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삼성 필승 불펜 안지만(31)에게 "만약 강정호와 첫 대결에서 초구를 직구로 던져 승부할 수 있느냐"는 제안이었다.

이에 안지만은 "자존심 싸움인 것 같은데 무조건 던지겠다"고 맞불을 놨다. 이어 강정호에게 "그럼 내 직구와 변화구 중 어떤 공에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고, 강정호는 "지만이 형이나 나나 모두 직구에 자신이 있다고 보고 붙어보고 싶다"고 응수했다.

양 쪽 모두 후끈 달아오른 모양새였지만 첫 기 싸움은 시쳇말로 '선빵'을 날린 넥센의 근소한 승리였다. '초고 예고' 제안은 실제로 구질이 무엇이 되든 투수보다는 타자에게 유리한 것이기 때문이다. 염경엽 넥센 감독은 4일 KS 1차전을 앞두고 "우리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는 장사"라며 주장의 재치있는 제안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일단 대결은 메이드된 거다?' 넥센 이택근, 강정호, 염경엽 감독과 삼성 류중일 감독, 안지만, 박한이(왼쪽부터)가 지난 3일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에서 우승컵에 손을 얹고 필승을 다짐하는 모습.(자료사진=삼성)
류중일 삼성 감독은 "만약 진짜 스트라이크를 던지면 등신이지"라고 우스갯소리처럼 넘겼다. 류 감독은 미디어데이 때도 "(만약 둘의 대결이 이뤄진다면) 볼로 던지겠죠"라고 답했다. 어쨌든 안지만이 쉽게 직구 스트라이크를 던지지는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넥센으로서는 공 1개 이득을 보고 들어가는 셈이었다.

만약 초구가 직구 승부구로 오면 강정호는 예상대로 치면 되고 볼이나 변화구가 오면 안지만이 대결을 피했다는 인상을 받기 십상이다. 사소한 부분이나 기 싸움에서 삼성이 밀렸다는 인식에 선수들의 사기가 엇갈릴 수 있다. 강정호와 안지만의 대결이었지만 넥센-삼성 전체 선수단의 충돌이었다.

베테랑의 노련함이었다. 이택근은 "강정호의 제안"이라고 했지만 주장이었기에 실행할 수 있었다. 상대 심기를 자극할 수 있기에 비교적 연차가 낮은 강정호(27)가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질문이었다. 더욱이 이택근은 질문에 이어 "내가 아는 안지만 선수라면 분명히 할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상대가 제안을 거부하기 어렵게 상황을 만든 것이었다.

▲넥센 제안 효과? "안지만, 이택근에 당했다"

세기의 대결은 1차전에서도 나올 수 있었다. 2-2로 팽팽히 맞선 8회초 넥센 공격 때였다. 박병호-강정호-김민성-이택근으로 이어지는 우타자 라인이어서 정상적이라면 안지만이 등판할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미디어데이에서 나온 강정호-안지만의 대결이 성사될 터였다.

하지만 초미의 관심을 모은 '구종 예고' 대결은 무산됐다. 삼성이 7회 1사에서 등판한 좌완 불펜 차우찬을 그대로 밀고 갔기 때문이었다. 차우찬은 불안했다. 선두 타자 박병호를 몸에 맞는 공으로 내보내며 흔들린 모습을 보였다. 더더욱 안지만의 등판이 기대됐지만 나오지 안았다. 결국 차우찬은 강정호에게 결승 2점 홈런을 얻어맞았고, 삼성이 2-4로 졌다.

'택근이 형, 고마워요' 넥센 강정호가 4일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안지만 대신 마운드에 오른 차우찬을 상대로 8회 결승 2점 홈런을 때려낸 뒤 심재학 코치(왼쪽)와 함께 팔을 벌리고 기뻐하는 모습.(자료사진=넥센 히어로즈)
미디어데이 때 화제를 모았던 만큼 안지만의 등판이 불발된 이유에 관심이 쏠렸다. 안지만이 5회 불펜에서 몸을 풀기도 했다. 경기 후 류중일 감독은 "안지만이 연습 전에 등에 담 증세가 있다고 하더라"면서 "박병호 때부터 투입했어야 했는데 못내 아쉽다"고 했다.

사실 안지만은 이번 KS를 앞두고 최상의 컨디션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부상이라는 돌발 변수에 정작 중요한 순간 등판이 불발됐다. 류 감독은 다음 날 "본인이 괜찮다고 해도 몸에 이상이 있으면 아무래도 투구하는 데 신경이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야 어찌 됐든 간에 안지만의 등판이 미뤄지면서 결과적으로 넥센의 미디어데이 제안이 효과를 본 것이다.

이택근의 제안은 심리적으로도 조금은 효과를 본 모양새다. KS 2차전 뒤 삼성 선발 윤성환(33)은 "지만이가 (미디어데이 때) '이택근한테 당했다'고 얘기하더라"고 귀띔했다. 선수끼리 문답하는 상황에서 질문의 선수를 뺏겼다는 것이다.

이어 윤성환은 "(안지만이) 자기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미디어데이인 만큼) 재미있게 얘기했던 것 같다더라"고 덧붙였다. KS 흥행을 위해 입심을 발휘했지만 삼성 입장에서는 썩 흡족할 상황은 아니었던 것이다.

▲'삼성의 혼' 배영수의 확실한 응전 표현


삼성은 그러나 삼성이었다. 정규리그 4연패와 KS까지 통합 3연패를 이룬 2010년대 최강팀이다. 1차전에서 덜미를 잡혔지만 2차전 7-1 낙승에 이어 3차전도 3-1 역전승을 거뒀다. 안지만도 건재를 과시했다. 2차전 1이닝 2탈삼진 무실점으로 컨디션을 점검한 뒤 3차전 1⅔이닝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까지 됐다.

그러나 이택근의 도발은 삼성 투수진에게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노릇이었을 터. 언제든 설욕의 기회를 노려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결국 8일 4차전에서 여건이 마련됐다. 삼성은 0-2로 뒤진 2회말 수비 1사 1, 2루에서 선발 마틴을 내리고 배영수(33)를 냈다. 넥센 타자는 이택근.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됐다.

배영수는 삼성 투수진의 혼(魂)과도 같은 인물. 최고참 임창용(38)이 있지만 해태(현 KIA) 출신에 일본까지 다녀와 진정한 삼성맨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배영수는 2000년 입단 뒤 삼성에서만 15년째 뛰고 있는 라이온스의 성골이었다. 그런 배영수와 이택근의 대결이었다.

'어딜 감히' 삼성 배영수가 8일 넥센과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힘차게 공을 뿌리고 있는 모습.(자료사진=삼성)
초구부터 불을 뿜었다. 배영수의 시속 142km 직구가 그대로 이택근의 머리 쪽으로 향했다. 깜짝 놀란 이택근은 넘어지면서 가까스로 피했다. 만약 맞았다면 배영수가 헤드샷 규정에 따라 즉시 자동 퇴장을 당할 것이었다.

경기 초반, 아직 승부를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어쩌면 퇴장을 감수하면서까지 작심하고 던진 초구였다. 삼성 투수진의 자존심을 담아낸 투구였다. 팀을 대표해 잠자는 사자의 심기를 건드린 데 대한 답을 확실하게 보여준 공이었다. 당사자인 안지만을 대신한 베테랑 배영수였다.

2구째도 이택근의 몸쪽을 향했다. 위협 투구로 경고를 받은 터라 머리는 아니었지만 확실하게 넥센 주장에게 뜻을 전달했다. 이후 승부를 택한 배영수는 이택근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사자 군단의 갈기를 한껏 세웠다.

▲이택근, 잇딴 몸쪽 공에 홈런으로 응수

하지만 넥센 타선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주장으로 향한 위협구에 대해 홈런으로 응수했다. 이어진 2사 2, 3루에서 유한준이 배영수의 초구 132km 슬라이더를 잡아당겨 왼쪽 담장을 넘기는 장타를 터뜨렸다. 순식간에 리드를 5-0으로 벌린 3점 홈런이었다.

당사자인 이택근이 보다 더 확실하게 설욕했다. 4회 2사 1루 배영수와 두 번째 대결에서 배영수의 3구째 시속 142km 직구를 통타,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대형 홈런을 쏘아올렸다.

게다가 배영수의 2구째가 다시 몸쪽 높게 깊숙히 위협하며 들어온 상황에서 나온 시원한 한방이었다. 7-0, 완전히 승부에 쐐기를 박는 2점 아치였다. 배영수의 잇딴 위협구를 이겨내고 터뜨린 통렬한 장타였다.

'같은 고개 방향, 다른 의미?' 넥센 이택근(오른쪽)이 8일 삼성과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4회 쐐기 2점포를 때려낸 뒤 그라운드를 도는 사이 삼성 투수 배영수가 마운드에서 공을 만지며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목동=박종민 기자)
사실 이택근은 앞서 2회 위협 투구 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넘어진 뒤 일어서면서 배영수 쪽을 흘깃 바라보며 굳은 표정을 지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4회 홈런으로 화끈하게 응수한 것이었다. 홈런을 직감한 이택근은 곧바로 그라운드를 뛰지 않고 타구를 응사하다가 다소 늦게 1루로 뛰었다.

배영수의 2회 초구나 이택근의 늦은 주루 모두 치열한 심리전의 한 단면이었다. 자칫 벤치 클리어링을 촉발시킬 수도 있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선을 넘지 않은 두 베테랑의 노련함에 그라운드 대치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다.

▲넥센의 심리전에 삼성, 어떻게

'아이고, 차갑기도 하여라' 이택근이 지난 8월26일 이장석 구단 대표, 염경엽 감독(오른쪽부터)과 얼음물 세례를 받으며 아이스버킷 챌린지 행사를 하는 모습.(자료사진=넥센)
사실 이택근은 심리전에 능하다. 올해 정규리그 때도 그랬다. 이택근은 지난 8월26일 이른바 '얼음물 자선행사'인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한 이후 다음 주자로 NC 선발 3인방 찰리 쉬렉, 에릭 해커, 이재학을 지명했다.

당시 넥센은 NC와 치열한 2위 싸움을 벌일 때였다. 2위 넥센과 NC의 승차는 한때 5.5경기에서 2경기까지 좁혀진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이택근의 지명은 다분히 배경에 관심이 쏠릴 터였다. 더군다나 이택근은 NC의 두 외국인 투수와는 친분도 없었다.

당시 이택근은 "전혀 다른 의도는 없다. 좋은 일에 같이 동참했으면 하는 생각에서 지명한 것일 뿐"이라고 잡아뗐다. 그러면서도 "(NC 선발진) 5명 모두 할 수 있으면 다하고 싶은데…"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NC에 영향을 주기보다 당시 침체됐던 넥센의 분위기를 바꾸려고 팀 선수들에게 전하는 주장의 메시지였다.

'최후의 하이파이브는 누가?' 삼성과 넥센은 4차전까지 2승2패로 치열한 공방을 이어갔다. 사진은 넥센 선수들이 8일 4차전에서 승리한 뒤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왼쪽)과 삼성 선수들이 7일 3차전에서 이긴 뒤 경기 MVP 박한이를 격하게 축하하는 모습.(자료사진=박종민 기자)
이번 KS 역시 마찬가지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넥센은 삼성에 밀리는 게 사실이다. 염 감독도 "선수 구성에서 보면 우리가 뒤진다"면서 "때문에 정규리그 우승은 꿈도 꾸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넥센이 3선발 체제와 투수 10명으로 나선 다소 변칙적인 엔트리도 삼성과 정면 승부는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택근의 다소 도발적인 제안은 어쩌면 필연적이다. 어떻게 해서든 삼성을 조금이라도 흔들기 바라는 마음이다. 약자의 꼼수로도, 지혜로도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삼성도 대차게 반응하고 있다. 전력은 물론 심리전에서도 뒤지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현했다. 안지만은 "나도 구종을 예고했으니 넥센 조상우, 한현희도 우리 중심 타자와 대결에 직구를 던져보라"며 맞제안을 하기도 했다.

과연 어느 팀이 한국 프로야구 최강자의 자리에 오르게 될까. 또 그 해답은 넥센 주장 이택근과 삼성 투수진의 뜨거운 신경전을 잘 살펴보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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