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파업 2000일' 딸바보 해고 노동자의 한숨



"놀이동산이요? 지금까지 가본 적 없어요, 많이 안타깝지요."

10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만난 건장한 체격의 40대 남성은 딸아이 얘기가 나오자 갑자기 울컥했다.

지난 2009년 5월 파업 이후 현재까지의 힘겨웠던 생활을 담담하게 얘기하던 그는 "딸이 아빠랑 놀아달라고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뭔가 북받친 듯 떨리는 한숨을 훅 내뱉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노상식(가명·43) 씨는 지난 2009년 5월 직장을 잃었다.

회사의 일방적인 정리해고 명단(2,646명)에 이름을 올린 노 씨는 "이건 뭔가 잘못됐다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파업에 참여했다.

희망퇴직을 거부하고 파업에 참여했기에 회사는 파업 이후 노 씨를 비롯한 165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해고 노동자 노상식(가명·43) 씨가 10일 오전 대법원 앞에서 복직 기원 2,000배 행사에 참석한 뒤 근처 풀밭에서 동료들과 도시락을 먹고 있다.
이후 노 씨의 삶은 이후 180도 바뀌었다.

파업 전 조립 1팀에서 9년간 일했던 노 씨에게는 혼자 키우는 딸아이가 있었다.

벌이가 시원찮아 금전적인 문제로 아내와 자주 다퉜던 노 씨는 파업 직전 이혼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세살배기 딸아이는 올해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딸아이가 놀러가자고 많이 조르지요, 아직 어리니까요, 아이랑 놀러간 적이 한번도 없어요, 마음은 가고 싶은데 경제적인 부분도 있고 또 복직 투쟁에도 참여해야해서 시간내기가 쉽지 않아요."

딸아이가 노 씨의 해고 상황을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오히려 가슴을 후벼판다.

"애 입에서 자연스럽게 투쟁 관련 단어가 나오는 거에요, '아빠 오늘은 어디가서 투쟁해?' '오늘도 1인시위 했어?'라고 자연스럽게 물어보는게 너무 가슴이 아파요."

◈ "청춘을 바쳐 일했던 공장으로 돌아가게 해주세요"

지난 2009년 8월 뜨거웠던 여름 평택 공장.

건국 이래 최대 규모라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생존을 건 파업은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76일만에 일단락됐다.

당시 평택 도장공장 지붕 등에서 경찰 진입에 저항하던 노동자 수십명은 경찰특공대의 곤봉세례에 정신을 잃고 까무러치기도 했다.

쌍용차노조가 회사의 일방적인 정리해고 발표에 맞서 파업에 나선 건 2009년 5월 21일.

11일로 딱 2,000일이 된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 해고노동자들이 10일 오전 대법원 앞에서 2,000배를 하며 '해고무효 확인소송'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대법원은 13일 오후 2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가 적정했는지에 대한 상고심 판단을 내린다.
이날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정문 앞에서 만난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소속 해고노동자 20여명은 해고자 전원복직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대하며 2,000배를 올리고 있었다.

'쌍용차 정리해고로 희생된 25명의 억울한 죽음을 생각하며 502배' '더이상 길거리 생활이 아닌 공장으로 돌아가 일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503배' 등의 구호에 맞춰 한발 한발을 꿇는 해고 노동자들의 이마엔 어느새 땀방울이 흠뻑 맺혔다.

그 안에는 노 씨도 있었다.

지난 4일부터 시작된 복직 기원 하루 2,000배는 12일까지 진행되며 해고노동자 20여명이 총 1만 4,000배를 올릴 계획이다.

6년 가까이 해고자 복직 요구에 동참한 노 씨는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했다.

딸한테도 미안하고 앞을 보지 못하는 팔순 부친을 제대로 모시지 못하는 것도 죄송하다고 했다.

동료들이 복직을 요구하며 노숙 농성에 나설 때도 딸아이 때문에 적극 함께하지 못한 것도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13일로 예정된 대법원 최종판단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꼭 이기고 싶어요, 꼭 이겨서 저뿐만 아니라 동료들이 다 자기 자리로 돌아가 가정을 다시 돌보는 게 소망입니다, 원래 있던 자리로 가서 평온을 되찾고 싶어요, 딸래미랑 일주일간 여행도 가고 싶고요."

앞서 올해 2월 7일 서울고법 민사2부(부장판사 조해현)는 쌍용차 해고노동자 15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해고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쌍용차가 유동성 위기를 겪은 사실은 인정되지만 구조적인 재무건전성 위기까지 겪었다고 볼 수 없다"며 "당시 정리해고는 경영상 긴박한 상태에서 이뤄지지 않았고 회사가 해고 회피 노력도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가 "사측이 경영상 어려움을 극복하고 비용 절감을 통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해고를 단행할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한 것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

회사는 곧바로 상고했고 이에 대한 최종 판단이 13일 오후 2시에 대법원에서 나온다.

김득종 지부장은 "해고노동자드이 청춘을 바쳐서 일했던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대법원이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득종 지부장은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고통과 아픔이 제발 끝나게 해달라는 마음으로 하루에 2,000배를 하고 있다"며 "청춘을 바쳐서 일했던 현장으로 또 5, 6년 동안 함께 하지 못한 가정으로 해고노동자들이 돌아갈 수 있도록 대법원이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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