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야 고급차 타고 압구정 아파트 떠나네"

분신자살 기도 한 달 만에 끝내 숨진 신현대아파트 경비원 발인

고용불안과 입주민의 언어폭력 등 비인격적 대우에 시달리다 분신한 경비노동자 이 씨가 끝내 사망한 가운데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 노제가 엄수되고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
입주민의 인격모독을 견디다 못해 분신자살을 기도한 지 한 달만인 지난 7일 끝내 숨진 서울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경비원 이모(53) 씨의 발인이 11일 치러졌다.

유가족과 '신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 분신사건 해결과 노동인권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는 고인을 추모하며 경비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비정규직 철폐를 힘주어 외쳤다.

이날 오전 8시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약 150명의 민주노총 회원들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 씨의 영결식이 치러졌다.

영정사진을 든 유족들의 뒤를 고인의 관과 '비정규직 철폐', '열사정신 계승'이라 쓰인 만장이 따랐다.

"창문 사이로 내려꽂는 무수한 욕지거리. 덤으로 던져주는 사과, 빵쪼가리… 나는 가네, 나는 떠나가네"

조시와 추도사가 낭독되는 내내 유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인의 장남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억울한 노동자들을 위해 싸워달라"고 부탁했다.

민주노총 신승철 위원장은 조사에서 "열사의 죽음은 분노하는만큼 행동하라는 가르침을 내렸다"며 "이 땅에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평등을 만들어내는 길이 열사를 고이 보내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전 11시에는 고인이 2년여 동안 일하다 결국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른 신현대아파트 관리사무소 옆에서 고인의 가는 길을 추모하는 노제가 열렸다.

작은 무대 위에는 고인의 영정이 자리했고 유족들과 60~70명의 참석자들은 굳은 표정으로 사진 속 고인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형철 민주노총 서울본부장 직무대행은 "1970년 11월 13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 준수하라'라고 외치며 23세의 나이로 분신한 전태일 열사가 있다. 그리고 2014년 10월 7일 우리 사회 가장 열악한 곳에서 일하는 아파트 경비노동자가 분신자살을 기도해 숨졌다"는 말로 추도사를 시작했다.

또 "(경비원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아파트 가격이 내려갈까 염려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물신주의와 자본의 천박함이 엿보인다"며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을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힘주어 외쳤다.

민주노총 정의현 수석부위원장은 신현대아파트 주민들을 향해 "이 씨의 죽음 앞에 무엇을 생각하느냐"며 "몸을 낮춰 일한 여러분의 이웃이 왜 자신의 몸에 불을 당길 수밖에 없었는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묻고 싶다"며 비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추모가를 맡은 가수는 고인의 관을 싣고 온 리무진을 보고 "죽어서야 신현대아파트 안에서 가장 크고 비싼 차를 타고 나가는 것이 가슴아프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고인과 함께 일했던 경비원이자 이 씨 분신 사건의 현장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김인준 씨도 "저희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입주자 대표가 이기는지 우리가 이기는지 지켜보자. 내가 이 아파트를 나가는 날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며 울먹였다.

노제에 참석한 이들은 "열사여,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싶다!"는 구호를 외치며 화답했다.

참석자들이 고인의 영정 앞에 헌화하는 동안 이 씨의 부인은 아들과 함께 이 씨가 생전에 일했던 동 사무소로 이동해 문을 열고 남편이 일하던 곳을 바라봤다.

한 두평 남짓한 좁은 공간을 매만지며 눈물을 쏟아낸 뒤 아들의 부축을 받고 겨우 발걸음을 옮겼다.

이 씨의 영정과 위패는 초소를 거쳐 고인이 분신한 주차장을 거쳐갔다. 차가운 주차장 바닥에 국화꽃을 놓으며 "경비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큰소리로 구호를 외치자 두 세명의 주민들이 복도로 나와 밖을 쳐다봤다.

이날 정오를 조금 넘겨 고인을 실은 운구차는 신현대아파트를 떠났다. 장례는 민주노동자장으로 치러졌다. 이 씨의 시신은 화장된 뒤 마석모란공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