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 송 : FM 98.1 (06:00~07:00)
■ 방송일 : 2014년 11월 20일 (목) 오전 6:38-47(9분간)
■ 진 행 : 김덕기 (CBS 아나운서)
■ 출 연 : 변이철 (CBS 노컷뉴스 문화연예팀장)
뉴스로 여는 아침. 매주 목요일은 검색어를 통해서 우리사회 트랜드를 짚어봅니다.
CBS노컷뉴스 변이철 기잡니다.
▶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어떤 키워드를 가지고 나오셨나요?
⇒ 예 오늘은 ‘숨은 골목 찾기’라는 키워듭니다.
80년대부터 큰 길이 뚫리고 아파트촌이 들어서면서 골목길도 점차 기억에서 사라져 갔는데요.
그런데 그 골목길이 떠났던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으며 지금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가 최근 내놓은 <트렌드 코리아 2015년 전망>에서도 ‘숨은 골목 찾기’를 10대 키워드로 제시했습니다.
▶ 그렇군요. “그럼 숨은 보물 찾듯이...” 요즘 뜨는 골목길을 한번 들여다볼까요?
⇒ 예 부산시 동구 초량동에 있는 ‘이바구’길을 소개해 드리려고 하는데요. 아마 가보신 분들도 계실겁니다.
이바구는 경상도 사투리로 이야기란 뜻인데요... 지난해 3월 조성된 이바구길은 초량 외국인서비스센터에서 출발해서... 옛 백제병원과 초량교회를 지나고요... 다시 168계단을 거쳐 당산과 이바구공작소로 이어지는 1500미터의 짧은 골목길입니다.
가파른 언덕을 따라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골목길을 걷다보면 부산항이 한 눈에 보이는 산꼭대기 마을에 이르게 됩니다.
▶ 그 유명한 168(백육십팔) 계단이 있는 곳이 ‘이바구길’이군요. 그럼 이곳에서는 지난 1년 동안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 예 역시 가장 큰 변화는 입소문을 타고 사람이 많이 찾아왔다는 겁니다.
걷다보면 마치 ‘오래된 흑백사진 속 풍경’에 들어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것이 이바구길의 매력인데요.
단 1년 만에 약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녀갔습니다. 이바구길에서 탐방객들이 쓴 돈도 6억 원이 넘었고 지역경제의 생산파급효과도 20억 원에 달합니다.
또 이바구길에는 ‘6.25 막걸리집’과 ‘168(백육십팔)도시락.국집’과 같은 정감어린 식당들도 있는데요.
모두 180여명의 지역 노인 분들이 지금 이곳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일자리 창출도 되는 거죠.
▶ 그러니까 현대인의 향수를 자극해 사람을 불러 모았다는 말씀인데... 골목길의 또 다른 매력도 있을 것 같은데요?
⇒ 예 그렇습니다. 골목 담벼락이 ‘젊은 예술가들의 멋진 캔버스’로 변한 곳도 사람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예술촌입니다. 과거에는 밀집한 철공소들이 만들어내는 차가운 기계소리만 들려왔죠.
그런데 독립예술가들이 골목 어귀의 벽에 하나둘 그림을 채워 넣으면서 생기를 불어넣어 지금은 어엿한 예술촌이 됐습니다.
▶ 그렇군요.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골목길과 향수, 골목길과 예술 뭐 이런 조합인데요... 또 다른 조합도 가능할까요?
⇒ 예 ‘골목길과 청년 상인’이라는 조합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서울 이태원 뒷골목의 경리단길이 대표적인데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적했던 곳입니다.
하지만 20대 청년 장진우 씨가 지난 3년간 레스토랑 등 작은 가게 8곳을 내면서 입소문이 났습니다.
지금은 개성이 넘치고 이색적인 소규모 가게들이 옹기종기 골목을 메우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긴 테이블 하나 뿐인 레스토랑, 매주 메뉴가 바뀌는 초밥집,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빵집... 뭐 이런 것들입니다.
▶ 정말 청년 상인들의 유쾌한 실험정신으로 똘똘 뭉친 곳이군요...
⇒ 그렇습니다. 서울 홍대상권의 변방에 위치한 서울 마포구 연남동도 비슷한데요.
임동혁 씨라는 분이 그저 태국이 좋다는 이유로 작은 태국음식 전문점을 열었는데요... 역시 입소문이 나자 소자본 창업을 원하는 청년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멕시코 전문식당, 일본인이 운영하는 빵집 등 다양한 음식과 문화가 공존하는 청년들의 거리가 됐습니다.
▶ 방금 ‘일본인 빵집’을 말씀하셨는데... 그럼 골목길이 뜨는 데 외국인들도 영향을 미치나요?
⇒ 물론입니다. 이제는 골목길에도 다문화의 힘이 많이 뻗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연남동은 최근 ‘제2의 차이나타운’이라고 불릴 만큼 중국인의 거주가 활발합니다.
또 근처 홍대입구역이 공항철도와 연결되면서 다른 외국인들도 급증해 게스트하우스가 속속 문을 열고 있습니다.
당연히 외국인을 위한 식당과 펍도 곳곳에 들어서면서 골목 풍경을 완전히 바꿔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엔 외국인 관광객들도 지도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골목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 골목길의 가장 큰 생명력은 뭘까요? 당연히 몰려드는 사람들입니다. 그 분들이 뭘 찾아 골목길로 오는 지를 살펴보면 해답이 보일 텐데요.
결국은 스토리... 이야깁니다.
사실 이야깃거리는 무궁무진합니다. 역사유적, 음식, 이국적인 문화, 음악, 그림, 또 만화, 예언, 동화 등등 끝이 없거든요.
문제는 이렇게 흩어져 있는 이야기들을 한 곳에 모으고 또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작업입니다.
한 예로 서울 성신여대입구역 7번 출구 근처에는 점성가촌이 있는데... 성북구청은 이곳을 '흥미로운 테마길'로 양성해 관광자원화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서울시도 최근 ‘서울 골목길 재발견’이라는 온라인 스토리 공모전을 펼쳤는데요...
이제 보물 같은 숨은 골목길을 찾기 위해서는 시민의 자발성뿐 아니라 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지원과 참여도 필수가 됐습니다.
▶ 그런데 ‘골목길’하면 으레 중장년층이 많이 갈 것 같은데... 오히려 젊은이들로 북적거리거든요... 그 이유는 뭘까요?
⇒ 그렇습니다. 골목 열성팬들이 과거를 추억하는 기성세대가 아니라 그 과거를 경험한 적이 없는 청춘들과 외국인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큰데요.
우선 ‘획일화’ 보다는 ‘다양성’에 가치를 두는 젊은 소비자가 많아지고 있다는 게 한 요인입니다.
또 스마트폰도 청년들을 골목길로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내비게이션 같은 위치기반서비스들이 발달하면서 제 아무리 구석진 곳이라도 이젠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거든요.
그리고 빛의 속도로 전파되는 SNS ‘인증샷’의 위력도 정말 대단합니다.
마지막으로 경제체제가 소비경제에서 체험경제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도 골목길 부상과 관련 있습니다.
▶ 소비경제가 체험경제로 진화한다... 그 건 또 어떤 이야긴가요?
⇒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제 딸만 봐도 그렇거든요.
뭔가를 사달라는 말 대신에 “초콜릿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요” 아니면 “암벽 등반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뭐 이런 요구들을 많이 하거든요.
그만큼 단순 소비보다는 체험을 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커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골목길에서는 실제로 다양한 경험을 맛볼 수 있습니다. ‘벽화’나 기와집, 수공예품을 보면서 심미적 체험도 가능하고요.
빡빡한 일상에서 벗어나 과거 시간 속으로 현실 탈피 경험도 제공합니다.
여기에다 요즘에는 ‘골목길 맛집 탐방’도 빼놓을 수 없는 재밉니다. 한마디로 골목길은 멀티 체험공간인데요.
이런 면에서 골목길의 부활은 단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반드시 주목하고 대응해야 할 ‘트렌드’다. 뭐 이런 분석들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 그렇다면 ‘골목 생태계’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 까요?
⇒ 우리사회가 자본의 논리로부터 골목을 지켜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먼저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의 몽마르트 언덕이라고 불리는 경남 통영의 동피랑 마을 이야긴데요. 철거 직전의 마을이 아름다운 벽화로 채워지면서 다시 관광 명소가 됐거든요.
그런데 돈과 사람들이 몰리면서 현지 주민들 일부가 집을 팔고 마을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외지인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졌죠.
이름이 제법 알려진 서울의 골목길에서는 점포 주인들이 임대료를 무작정 올려 젊은 창업자들이 내쫓기는 일도 빈발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법적, 제도적 보호 장치 마련이 시급한 실정입니다.
또 ‘도심 속 오아시스’ 같은 골목길은 어디까지나 ‘공공의 영역이다’라는 점을 우리 모두가 깊이 인식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길도 사람들로 넘치는 골목길처럼 정감 있고 아기자기한 이야기들로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