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시즌을 치르는 도중에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해외 진출에 대한 뜻을 드러내왔습니다. 이들의 경기에는 적잖은 MLB와 일본 야구 스카우트들이 몰려 기대감을 부풀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그리 녹록하지는 않습니다. 예상보다 낮은 포스팅 응찰액, 즉 이적료 때문입니다. 김광현이 가장 먼저 독점 교섭권에 대해 MLB 구단들을 상대로 입찰을 진행했지만 200만 달러(약 22억 원)이 최고액이었습니다. 당초 기대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입니다. (그럼에도 김광현과 SK는 일단 입찰 결과를 수용해 샌디에이고와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다음 주자인 양현종 역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KIA가 22일 한국야구위원회(KBO)를 통해 MLB 구단들의 입찰 결과를 받았지만 발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광현과 비슷하거나 밑도는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때문에 12월 입찰을 추진 중인 강정호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일각에서는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꼭 미국에 가야 하느냐는 의견도 나옵니다. 이른바 '헐값'에 한국 야구의 자존심을 꺾어야 하느냐는 겁니다. 이들은 만약 국내라면 이적료가 최소 30억 이상, 50억까지도 나올 수 있는 모두 한국 프로야구의 정상급 선수인 까닭입니다.(과거 이택근(넥센), 장원삼(삼성)의 이적을 보면 추산할 수 있는 금액입니다.) 신생팀 kt가 나머지 9개 구단에서 특별 지명할 선수의 대한 보상금 10억 원과 비교하는 팬들도 있습니다.
과연 이들이 그런 평가에도 태평양을 건너야 할까요? 이들의 미래와 한국 프로야구를 위해 어떤 결론이 현명한 것일까요?
▲"도전은 하되 자존심은 나중에 찾아라"
정말 풀기 어려운 문제의 해법에 대한 힌트를 얻기 위해 고심 끝에 전화 한 통을 걸었습니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입(63)니다. 한국 야구와 MLB에 모두 정통한 전문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허 위원은 한국 프로야구는 물론 최근 류현진(27 · LA 다저스)의 경기는 물론 90년대 박찬호(은퇴) 시절부터 다년 간 MLB 경기를 중계해왔습니다. 또 1984년부터 거의 30년 가까이 MLB 스프링캠프 현장을 누비며 조 토레 전 뉴욕 양키스 감독 등 현지 관계자들과 네트워크도 쌓아왔습니다.
그런 허 위원에게도 이들 3인방의 거취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하지만 생각은 분명했습니다. 도전은 하되 자존심은 이후에 찾아도 된다는 겁니다.
허 위원은 "김광현, 양현종, 강정호에게는 시즌 중에도 'MLB에 도전할 뜻이 있으면 꿈을 펼치라'고 조언해왔다"면서 "선수들이 더 큰 무대에서 뛰겠다는 의지를 막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뿐 아니라 일본, 대만 등 아시아는 물론 중남미 톱클래스 선수들이 최고의 무대로 진출하는 것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세계 야구의 큰 흐름인 겁니다.
다만 허 위원은 "이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풀어야 할 난관이 있다"고 전제했습니다. 일단 소속 구단과 원만한 협의가 일차 과제이며, 상상할 수 없는 힘든 경쟁을 이겨내겠다는 다부진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검증된 류현진과 비교는 무리"
이들 3인방에게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2년 전 미국으로 건너간 MLB 선배 류현진입니다.
류현진은 2012시즌 뒤 약 280억 원, 거액의 이적료를 전 소속팀 한화에 안기고 다저스와 독점 협상 끝에 6년 총액 380억 원에 계약했습니다. 이후 2년 연속 14승에 3점대 초반 평균자책점(ERA)을 기록하며 MLB 수준급 선발 투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허 위원은 "MLB 선발 투수 영입은 '한 시즌 30번을 건강하게 던질 수 있느냐'가 첫째 조건인데 류현진은 5~6명의 스카우트들이 수년 동안 면밀하게 검토하고 결론을 내렸다"면서 "하지만 김광현과 양현종은 부상 시즌이 있었다"고 비교했습니다. 다르빗슈 유(텍사스), 다나카 마사히로(뉴욕 양키스) 등 일본 최고의 투수들도 낯선 MLB의 5일 로테이션에 부상을 당하는데 우려가 생기는 게 당연하다는 겁니다.
강정호에 대해서는 "한국 프로야구 야수는 MLB에서 최초이기 때문에 현지에서 과연 162경기를 뛸 수 있느냐는 의문 부호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검증받지 못한 이들이 류현진만큼 이적료를 받지 못했거나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입니다.
▲낮은 이적료? 韓 야구 자존심과는 별개
그럼에도 이들 3인방은 어쨌든 미국으로 건너갈 것입니다. 김광현은 이미 구단에서 그 뜻을 받아들였고, 양현종 역시 이미 에이전트를 선임한 상황. 강정호는 최근 올 시즌 프로야구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MLB에 대한 강한 의지를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예상보다 낮은 이적료는 한국 야구의 자존심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선수 개개인에 대한 평가일 뿐 그 나라 야구 수준을 100% 방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류현진과 다르빗슈 유, 다나카 마사히로 등 어딜 가나 특급 선수들은 대우를 받지만 일본에서도 그렇지 못한 선수들이 적잖다는 겁니다.
허 위원은 "일본에서 3번이나 타격왕에 오른 아오키 노리치카도 3년 전 MLB 진출 시 이적료가 250만 달러에 불과했다"면서 "이들 3인방도 실력으로 입증하면 될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포스팅 응찰액은 구단의 문제로 해당 선수와 잘 해결하면 될 부분"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명문 구단, 정상권보다 기회를 얻을 팀을 찾으라고 조언합니다. 허 위원은 "정말 꿈을 위해서라면 돈이나 조건에 구애받지 않아야 한다"면서 "처음에는 100만 달러를 받아도 실력만 인정받으면 곧 1000만 달러 이상을 받을 수 있는 게 미국"이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류현진의 뒤를 이은 윤석민(28 · 볼티모어)은 부상의 여파도 있었지만 우승을 노리는 팀에서 상대적으로 기회가 덜 주어졌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올해 윤석민은 마이너리그에서만 뛰며 빅리그를 밟지 못했습니다.
▲"갈 사람은 간다…불법 유출이 더 큰 문제"
그렇다면 스타급 선수들의 유출로 다소 허약해질 한국 프로야구의 기반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미 해외 무대에서 성공을 거둔 류현진과 이대호(소프트뱅크), 오승환(한신) 등에 이어 김광현, 양현종, 강정호 등을 신호탄으로 해외 진출 러시가 가속화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해외 진출을 걱정하기보다 한국 야구의 기반을 다지는 게 먼저라는 의견입니다. 어차피 갈 만한 선수들이 더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인 만큼 막을 수는 없는 노릇. 또 그럴 선수들은 한정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 많은 선수들이 자라날 수 있게 하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는 겁니다.
허 위원은 "현재 구단들은 FA(자유계약선수)나 외국인 선수를 믿고 있고 의존도도 크다"면서 "장기적으로 저연봉 선수들에 대한 처우 개선이 이뤄져야 기반이 단단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수십억 혹은 백억대의 FA도 중요하지만 잇몸을 키워내야 이가 튼튼하게 자랄 수 있다는 겁니다.
또 허 위원은 "예전 박찬호 이후로도 많은 선수들이 미국에 갔지만 성공한 선수들이 드물다"면서 "이제 MLB에서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류현진 이후에도 자료들을 모을 것인데 그러다 보면 어떤 선수가 성공할지 통계가 나와 선별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허 위원은 "일부 스카우트들이 고교, 심지어는 중학교 선수들에게 탬퍼링(사전 접촉)을 하는 게 문제"라면서 "그렇게 사탕발림을 해서 데려가지만 성공한 선수가 누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일본은 국내 구단도 고교 선수와 만나면 징계를 받는데 MLB는 오죽하겠느냐"면서 "이는 한국 야구를 그만큼 만만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고 이를 먼저 막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이만하면 결론은 나왔습니다. 선택은 자유이며, 도전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류현진의 성공만 보고 갈 것이 아니라 청운의 꿈을 안고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조용하게 돌아온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유망주들의 눈물젖은 귀국 비행기 티켓을 기억해야 할 일입니다.
p.s-허 위원은 전화 인터뷰 말미에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토론토 마이너리그 코치를 했던 1990년부터 2000년까지 11년 동안 스프링캠프를 다녀왔는데 160여 명 마이너리거 중 빅리그에서 성공한 선수는 제프 켄트, 카를로스 델가도 등 4명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