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의 달인' 미생 윤태호, 취재파일 살펴보니…

[CBS 라디오 '뉴스로 여는 아침 김덕기입니다']

■ 방 송 : FM 98.1 (06:00~07:00)
■ 방송일 : 2014년 11월 27일 (목) 오전 6:38-47(9분간)
■ 진 행 : 김덕기 (CBS 아나운서)
■ 출 연 : 변이철 (CBS 노컷뉴스 문화연예팀장)

뉴스로 여는 아침. 매주 목요일은 검색어를 통해서 우리사회 트랜드를 짚어봅니다.

CBS노컷뉴스 변이철 기잡니다.

▶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흥미로운 검색어를 가지고 나오셨네요?

= 예 오늘은 아마 못 보신 분들도 있으실 텐데... TV 드라마 ‘미생’이라는 검색어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지금 시중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미생 열풍'이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돕니다.

▶ 드라마 이름이 ‘미생’인데요... 좀 생소하거든요. 어떤 드라마인가요?

= 미생은 바둑 용언데요. 말 그대로 아직 살지 못한 바둑돌을 말합니다. 드라마에서는 회사내 계약직과 인턴들을 비유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프로바둑기사를 꿈꾸던 장그레라는 고졸 계약직 사원이 대기업 종합상사에 입사해서 겪는 팍팍한 직장생활을 그리고 있습니다.

드라마가 방영 중인 tvN에서는 “‘갑’들의 전쟁터에 던져진 까마득한 ‘을’의 고군분투 이야기”... 이렇게 홍보를 하더군요.

그러니까 아직 살지 못한 '을'인 계약직이 이리저리 깨지고 얻어터지면서 '완생' 그러니까 완전히 살아서 자리 잡아가는 과정을 담았다고 보면 됩니다.

▶ 이 드라마가 그렇게 인기라는 거죠. 어느 정도인가요?

= 지난 토요일에 끝난 제12화는 최고 시청률이 7.8%를 기록했습니다. 회를 거듭하며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데요.

요즘엔 지상파 예능프로그램도 7% 넘기가 아주 어렵거든요.

특히 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가구 기준으로 남자 30대와 여자 20-30대는 지상파를 포함한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습니다.​

모두 9권짜리인 만화책 ‘미생 완간세트’...이 책이 지난해 9월 출간돼서 1년 동안 한 90만부가 팔렸는데,,, 드라마 시작 이후 한 달 만에 200만부가 팔렸다고 하네요.

가격도 한 8만 원정도 하거든요. 출판시장이 불황인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기셉니다.

웹툰 ‘미생’도 10억 뷰가 훨씬 넘어섰다고 합니다. 또 드라마의 무대가 되는 옛 대우빌딩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큰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이 드라마의 인기비결은 뭘까요?

= 드라마 속에 치유... 힐링의 코드가 숨어 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앞서 이 드라마를 “‘을’들의 고군분투” 이렇게 소개 드렸는데요.

회사에서 절대 ‘갑’이라고 하면 사주나 최고경영진... 뭐 이 정도 되겠죠. 그렇다면 인턴, 계약직 뿐 아니라 평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들도 사실 다 윗분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을’의 입장이거든요.

그러니까 많은 직장인들이 “어~ 저거 내 모습이네~” 뭐 이러면서 드라마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몰입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함께 울고 웃고 때로는 분노하거나 응원하면서 각박한 경쟁에 지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거죠.

요즘 기업들의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해고다 구조조정이다... 뭐 이런 말들도 뉴스에 자주 나오는데요.

드라마 ‘미생’이 인기가 많다는 것은 이래저래 '을'들인 직장인들의 마음도 그만큼 편치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 직장인들의 맘이 편치 않은 시절이다... 그래서 드라마 속 대사가 더 귀에 쏙쏙 잘 들어오는 걸까요?

=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요. 말씀하신대로 미생에 나온 대사가 시청자들에게 뭔가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것도 인기의 한 비결입니다.

제가 인상이 깊었던 대사 2가지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주인공 장그래의 대산데요...
“”순류에 역류를 일으킬 때 즉각 반응하는 것은 어리석다. 상대가 역류를 일으켰을 때 내가 순류를 유지하는 것은 상대의 처지에서 보면 역류가 된다.

그러니 나의 흐름을 흔들림 없이 견지하는 자세야말로 최고의 방어 수단이자 공격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런 대사가 있고요.

다음은 장그래의 직속 선배인 김 대리의 대사인데 직접 한 번 들어보시죠...

“당신 실패하지 않았어. 나도 지방대학 나와서 취직하기 되게 힘들었거든. 근데 합격하고 입사하고 보니까 성공이 아니라 무슨 문을 하나 연 것 같은 느낌이더라고. 어쩌면 우린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다가오는 문만 열고 살아가는 건 아닐까”

▶ 원작자인 만화가 윤태호 씨는 ‘미생’이라는 작품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평하나요.

= 예 윤태호 작가가 과거에 이런 말을 했더군요.

"미생은 무수한 샐러리맨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을 마치 핀셋으로 끄집어내듯 보여줄 뿐이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1%가 아닌 99% 다수의 가치가 수면 위로 발현되기를 바랐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 이 드라마에서는 직장인들의 노동이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류 복사, 보고서 오타 확인, 회의 연락, 뭐 이런 밑바닥 잡무부터... 해외사업 추진 과정이나 임원회의 PT 준비과정 등도 매우 현실감 있게 그리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직장인들의 모든 노동이 값지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이 땅의 ‘을’들의 삶도 결코 실패한 것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윤태호 작가
▶ 그렇군요. 그런데 윤태호 작가는 직장생활은 해봤는지 모르겠습니다?

= 아니요 윤 작가는 직장생활 경험이 없습니다. 윤 작가는 가난한 가정형편때문에 대학진학은 아예 포기했습니다.

'만화가가 되겠다'며 무일푼으로 상경해 노숙을 한 적도 있다고 하네요.

그러다가 허영만 작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5년 만인 24살에 만화가로 데뷔했으니까 직장생활 경험은 없는거죠.

▶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세밀하게 종합상사 내부의 모습을 만화에 담을 수 있었을까요?

= 한마디로 말씀드리자면 열정적인 취재의 힘입니다. 윤 작가가 작품 '미생'을 위해 기업에 취재요청을 했지만 다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하는 수 없이 종합상사에 다니는 지인의 친구에게 물어봤다고 하는데요.


회사에 처음 들어가면 노트북을 회사가 주는 건지 아니면 내가 사 가지고 들어가야 하는지... 이런 것을 포함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궁금한 것을 모두 취재했다고 합니다. 취재에만 3년이 걸렸다고 하네요.

만화를 연재하는 동안에도 취재원을 매달 두세번씩 여섯에서 아홉시간을 만났고, 때로는 9시간 인터뷰해 겨우 대사 2줄을 얻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대사가 “먼지 같은 일을 하다가 먼지가 돼버렸어”라는 겁니다.

당시 취재파일에는 이런 글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대리-일을 가장 많이 한다' '과장-이직 고민이 많다, 회사에서는 잡으려 한다' '차장 -애매한 위치. 이직하기 힘들어진다' '부장-이직하긴 늦은 나이, 처신을 조심한다, 인맥을 많이 쌓아둔다' 이런 내용입니다. 재미도 있지만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내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그러고 보면 만화가 가지는 위력도 참 대단한 것 같아요
= 그렇습니다. 만화가 올 하반기 드라마 시장을 접수했다는 말도 나올 정돈데요.

KBS '노다메 칸타빌레‘부터 tvN의 ’미생‘ ’라이어게임‘, OCN의 ’닥터 프로스트‘까지 줄줄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내년 초에도 3편의 만화 원작 드라마가 출격을 준비중입니다.

그만큼 만화와 드라마 사이에 매체 간 융합이 활발해지고 있는 건데요. 이런 이유로 원작으로서 만화가 지닌 콘텐츠 가치와 상업적 가능성도 다시 부각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드라마나 영화의 원작으로서 만화가 갖는 가치를 데이터를 제시하면서 조명한 ‘한국 만화 미디어믹스(Media mix)의 역사’라는 책도 출간됐습니다.

▶ 요즘엔 ‘미생’을 출퇴근시간에 모바일로 보는 분들도 꽤 많은 것 같아요?

= 정말 그렇죠. 미생은 지난 1년 동안 웹툰에서 시작해 웹드라마를 거쳐 케이블TV 드라마로 진화를 거듭했습니다.

웹툰은 특히 PC온라인과 모바일시대 최고의 콘텐츠로 꼽혀왔습니다. 네이버와 다음도 모바일에서 가장 강력한 콘텐츠로 웹툰을 밀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모바일에서 동영상 소비가 급증하면서 웹툰은 웹드라마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웹드라마의 등장은 이제 동영상 콘텐츠 소비의 중심이 TV에서 스마트폰으로 급속히 바뀌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 그렇군요. 미생이 TV드라마 전에 ‘웹드라마’로 먼저 제작이 됐었군요.

= 예 웹드라마는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한 동영상 콘텐츠 소비를 겨냥해서 10분 안팎의 짤막한 구성으로 만든 드라마입니다.

다음카카오는 웹툰 미생의 인기가 치솟자 주요 장면을 뽑아 10분짜리 드라마 6개를 만들었는데... 이게 우리나라 웹드라마의 효시입니다.

웹드라마는 또 삼성전자와 교보생명 등 대기업들의 기업홍보용으로도 제작돼 활용되고 있습니다.

웹드라마의 장점은 주제와 소재가 지상파 드라마보다 훨씬 자유롭고 다양하다는 겁니다. 또 LTE보급도 일반화되면서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기도 이제 편해졌습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과거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출판만화가 웹툰으로 대체됐다면 LTE 대중화는 티비 드라마를 웹드라마로 바꾸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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