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탓'하다 '정윤회 탓'하는 새누리당

"통화는 했다" 정씨 말바꾸기 뒤 '미묘한 변화'

헌법상 예산안 법정 처리시한일인 2일 국회 예결회의장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김무성 대표와 김학용 대표비서실장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정윤회 국정농단 의혹'과 관련해 새누리당이 미묘한 입장변화를 보였다. 정윤회씨나 청와대를 맹신하던 며칠 전과 달리, 정씨를 비판하면서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양상이다. 정씨의 말바꾸기와 당내 불만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3일 오전 현안브리핑에서 "정윤회씨와 조응천 전 비서관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다. 참으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라며 "사건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보다 진중한 자세를 보이라"고 밝혔다.

'말을 가려서 하라'는 양비론 형식이긴 하나, 정씨에 대해 당 차원에서 내놓은 사실상 최초의 비판이다.

새누리당은 그동안 정씨와 함께 국정농단의 장본인으로 지목된 '청와대 3인방'의 입장만 옹호했다. 정씨와 3인방은 이해관계가 같기 때문에 정씨는 사실상 새누리당의 측면지원을 받은 셈이다.

세계일보 보도 다음 날인 지난달 29일부터 이틀간 새누리당의 대변인단은 "당사자들이 아니라고 하니,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는 취지의 논평을 쏟아냈다. 야당의 의혹 제기는 "질 나쁜 정치공세"로 치부했다.

29일에는 "문건에 언급된 청와대 비서관들이 언론에 보도된 사안은 사실무근이라고 하고 있다"(윤영석 원내대변인), "시중에 떠도는 풍문을 담은 문건을 무기삼아 정치공세를 펴는 것은 자제해야 옳다"(박대출 대변인)고 발표했다.


30일에는 "이른바 '청와대 문건'이 '카더라'식의 실체없는 루머 수준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이장우 원내대변인), "사실관계가 확인된 것은 전혀 없다. 청와대 비서관들 역시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김현숙 원내대변인), "기사에 언급된 인사들은 문건 내용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김영우 수석대변인)는 발표가 이어졌다.

그렇지만 중대 변화가 발생했다. "2007년 이래 7년간 청와대 비서관들과는 연락도 끊고 있다"(중앙일보 인터뷰)던 정씨가, 올해 4월 3인방과 통화한 사실이 확인되자 "이재만 총무비서관과 통화한 적은 있다"(KBS 인터뷰)고 말을 바꾼 것이다.

새누리당 논평의 초점이동은 이같은 변화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정씨와 3인방에 대한 당내 여론은 차가운 편이다.

수도권의 한 재선의원은 "국정농단의 증거가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국민적 관심이 쏠린 상황에서 비본질적인 부분이든 뭐든 말바꾸기를 하면 의혹만 키울 뿐"이라며 "당내에서도 걱정과 불만이 확산되는 추세에 있다"고 말했다.

한 중진의원은 "사실 여부를 떠나 국정농단 추문에 연루된 이상, 책임을 져야 한다. 3인방 스스로 거취를 정리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지금 당내에는 이런 여론을 청와대에 전달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말했다. 한 초선의원은 "그들이 결백하다는 확신이 없으니 야당의 공세를 받고만 있다"고 토로했다.

반면 친박계에서는 사안의 본질은 '청와대 문건 유출'이라며 논란 확산을 경계한다. 한 의원은 "정씨가 번복한 말이 국정농단의 증거는 아니지 않느냐. 바로잡아야 하는 것은 공공기록물이 외부로 흘러나가도록 방치한 청와대의 공직기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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