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계에서 '꿈의 고지'라 불리는 것이 1,000만 관객 동원 기록이다. 한 해에 1, 2편 나올까 말까 한 그런 영화가 올해에만 3편이 나온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그 어느 해보다 영화시장이 잘 됐구나"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사뭇 다른 양상을 발견할 수 있다.
양적으로는 팽창한 듯 보이지만 질적으로는 퇴보했을지도 모를, 올해 국내 영화시장의 빛과 그늘을 짚어본다.
◈ '꿈의 1,000만 영화' 이렇게 흘러 왔다
2003년 12월 말 개봉한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는 개봉 58일 만인 이듬해 2월 한국영화사상 첫 1,000만 영화로 이름을 올린다.
실미도가 한국영화사를 새로 쓸 무렵 개봉한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 이 영화는 그 흐름을 이어받아 개봉 39일 만에 1,000만 영화에 등극한다. 결국 2004년 한 해에만 1,000만 영화가 두 편이나 나온 셈이다.
이후 2005년 12월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가 그 이듬해인 2006년 초에,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그 해 7월 개봉해 21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모은다.
이렇듯 2004년에 이어 2006년 각각 두 편의 1,000만 영화가 나온 이후 뜸하던 것이, 2009년 여름 개봉한 강제규 감독의 '해운대'에서 다시 터진다. 그해 12월 선보인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는 다음 해인 2010년 1월 말 외화로는 처음으로 1,000만 영화에 등극하기에 이른다.
2012년에는 7월 개봉한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에 이어 9월 추석연휴를 끼고 선보인 추창민 감독의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잇따라 1,000만 관객을 동원한다.
이어 2013년 1월 관객과 만난 이환경 감독의 '7번방의 선물'이 1,000만 영화 명단에 오르더니, 그해 12월 개봉한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이 이듬해인 올 1월 1,000만 영화에 등극한다.
변호인에 이어 1월 개봉한 외화 '겨울왕국'이 애니메이션으로는 처음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했고, 급기야 7월 말 개봉한 김한민 감독의 '명량'은 1,700만 관객을 모으며 역대 최다 관객 동원 기록을 새로 쓰기에 이른다. 그렇게 올해에만 1,000만 영화가 3편 나온 것이다.
◈ 관객수·매출액은 지난해와 비슷한데…
지난해 관객수와 매출액이 각각 2억 1,335만 명, 1조 5,513억 원이었다는 점에서 12월 성수기를 남겨둔 올해 극장가는 지난해와 비슷한 성적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른 수치들을 비교해 보면 지난해와는 다른 올해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전체 개봉 편수를 보면, 지난해 907편에서 올해 1,033편으로 전년대비 14% 상승했다.
남은 한 달여 동안 매출액이 지난해와 비슷하게 맞춰지는 반면, 개봉 편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특정 영화에 관객이 몰리는 쏠림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빛을 보지 못한 영화들도 훨씬 많아진 셈이다.
실제로 영진위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흥행 순위 10위권 영화의 매출액 점유율 합계는 35.9%인데 반해, 올해 10위권 영화의 그것은 40.7%로 전년대비 4.8%포인트 상승했다.
올해 개봉한 1,033편의 영화 가운데 10편의 영화가 매출액의 40%를 넘게 챙긴 것이다. 이는 결국 지난해 907편 가운데 10편이 35.9%를 점유한 것보다 쏠림 현상이 더욱 심화됐다는 것을 말해 준다.
◈ 방화 부진·외화 약진 "소수 영화에 관객 쏠려"
올해 매출액 점유율은 한국영화가 48.8%, 외화가 51.2%로 2010년 이후 처음으로 외국영화가 점유율 50%를 넘어섰다. 개봉 편수는 한국영화가 212편, 외국영화가 821편이다.
지난해에는 개봉 편수가 한국영화 183편, 외국영화 724편이고, 매출액 점유율은 한국영화 59.7%, 외국영화 40.3%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올해 한국영화는 개봉 편수가 전년대비 16% 늘어난 반면, 매출액 점유율은 전년대비 10.9%포인트나 떨어졌다. 이에 비해 외국영화는 전년대비 개봉 편수가 13% 늘어났고, 매출액 점유율이 10.9%포인트 증가했다.
앞에서 살펴본 쏠림 현상이 외국영화에 비해 한국영화에서 더욱 심각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올해 흥행 순위 10위권 내 외국영화는 '겨울왕국' '인터스텔라'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엣지 오브 투모로우'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까지 5편으로, 이들 영화의 매출액 점유율 합계는 18%다.
지난해 10위권에 외국영화가 '아이언맨3'(매출액 점유율 4.6%) 단 한 편이었다는 점과 비교하면 올해 한국영화의 처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올해 한국영화는 명량이 1,700만 관객을 넘기고, '해적: 바다로 간 산적'(관객수 866만 명), '수상한 그녀'(865만 명)가 선전하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냈다"며 "한국영화가 부진한데다, 겨울왕국과 인터스텔라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위시한 외화들이 올해 좋은 성적을 내면서, 적은 수의 영화에 관객이 몰리는 현상이 어느 해보다 심했던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