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뉴스] 청와대는 왜 문건회수 않고 직무유기 했을까?

김기춘 비서실장, 홍경식·김영한 전 현 민정수석 등 책임져야

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뉴스]는 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 방송 : 권영철의 Why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30~09:00)
■ 진행 : 박재홍 앵커
■ 대담 : 권영철 CBS 선임기자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소방차가 출동하는 게 먼저일까? 아니면 누가 불을 냈는지를 따져보는 게 먼저일까?

상식은 당연히 소방차가 먼저 출동해야 한다. 출동해서 불이 났으면 화재를 진압해야 한다. 그 다음에 누가 불을 냈는지? 어떤 경로로 불이 났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혹시 장난전화였더라도 일단은 소방차가 먼저 출동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식과 반대되는 일이 청와대에서 일어났다.

전직 청와대 비서관이 현직 청와대 행정관을 통해 청와대의 중요 문서가 유출됐다면서 유출된 문서의 일부 사본과 그 경위를 담은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청와대는 문서의 출처가 어디냐? 의도가 무엇이냐를 따지면서 유출된 문서회수에 나서지 않았다. 청와대가 유출된 문서를 회수할 기회는 최소 세 차례 이상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청와대는 이를 방치했다. 청와대가 중요문서의 유출 사실을 알고도 이를 방치한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청와대는 왜 유출된 문건 회수 않고 직무유기 했을까?" 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권영철의 와이뉴스 전체듣기]


▶ 청와대가 문건의 유출 사실을 알게 된 게 언제인가?(문건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만들어진 문건)

청와대 전경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청와대가 공직비서관실의 감찰보고서를 비롯한 동향보고서가 대량으로 유출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늦어도 5월말쯤이다.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과 박지만 EG회장 측의 전 모 팀장이 5월 말쯤 세계일보 기자로부터 받은 박지만 EG 회장 주변의 동향보고서 사본과 문서의 유출 경위서를 청와대 오 모 행정관을 통해 정호성 비서관에게 전달했다.

따라서 청와대는 이때부터 청와대 문건의 유출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박지만 회장 주변과 관련된 100여 건 이상의 동향보고서 사본이 첨부됐으니 유출된 문건의 파괴력은 충분히 파악했을 것이다.

유출된 '정윤회 문건'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 5월 하순에 파악하고도 지금까지 유출된 문건을 방치했다는 거냐?

= 그렇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다. 청와대가 문건을 회수할 기회를 적어도 세 차례 이상 놓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첫 번째는 앞서 말한 대로 조응천 전 비서관이 오 모 행정관을 통해 유출된 문건의 사본을 전달했을 때다. 청와대 중요 문건이 유출된 사실을 알았으니 문건 회수에 나서야 하지만 청와대는 문건의 출처가 무엇이냐? 의도가 무엇이냐? 만을 따지면서 문건 회수에 나서지 않았다.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검찰조사와 언론인터뷰에서 문건을 청와대에 전한 뒤 며칠 뒤에 권오창 공직기강비서관이 전화를 걸어 "문건의 출처가 어디냐?", "그걸 알기 전에는 움직일 수 없다"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 조 전 비서관은 사법시험 동기인 권 비서관에게 "문건이 폭로되면 청와대가 큰 곤경에 빠지게 된다. 빨리 문건을 회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두 번째는 조응천 전 비서관이 검찰 재직 때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는 김영한 현 민정수석 내정소식이 보도된 뒤 전화를 걸어 문건이 유출됐는데 이걸 빨리 회수해야 한다고 조언을 했다고 검찰조사에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6월 14일부터 민정수석으로 근무하기 시작한 김영한 민정수석은 문건 유출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두 번째 기회를 놓친 것이다. 김영한 민정수석이 왜 유출된 문건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세 번째는 세계일보에서 지난 7월 8일 청와대 최 모 비서관이 기업인으로부터 금품 및 향응 수수 의혹이 있다는 보도를 했을 때이다. 최 비서관의 비위 의혹은 지난해 10월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조사한 내용이고 유출된 문건에 포함된 내용으로 알려졌다. 이는 청와대 문건의 유출사실이 다시 한 번 입증된 것이고 앞으로도 새로운 문건이 보도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늦었지만 이 때라도 문건 회수에 나서야 했지만 청와대는 역시 방치했다. 오히려 최 비서관으로 하여금 언론사의 보도에 대해 개인적으로 대응하도록 해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됐고 세계일보는 정정 보도를 냈다.

청와대는 문건 회수 노력을 하지 않고 오히려 파견된 민정수석실 소속 경찰관이나 검찰수사관 등을 대거 교체했다.

청와대가 이런 세 차례 이상의 기회를 놓친 결과 이른바 '정윤회 문건'이 보도됐고 지금의 파장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검찰 출두한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 (사진=윤성호 기자/자료사진)
▶ 정말 이상하다. 문건이 유출된 사실을 알았다면 일단 먼저 회수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회수하지 않은 거냐?

= 그게 미스터리다. 청와대의 중요 문건이 유출된 사실을 알았다면 비서실장이나 민정수석, 공직기강비서관, '문고리 3인방' 등 누구라도 적극적인 회수에 나서야 하지만 이를 방치했다는 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왜 문건을 회수하지 않았을까?

첫 번째는 '정윤회 문건'의 존재나 그 내용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알리지 않기 위해서 문건 회수에 나서지 않았을 가능성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비선실세 국정농단 진상조사단장 맡고 있는 박범계 의원은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박지만 관련 문건의 유출사실을 보고하게 되면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된 문건의 무더기 유출사실이 드러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정윤회 문건'의 실체를 대통령이 알게 될까봐서 숨긴 걸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박범계 의원은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서도 "박지만 문건이 빌미가 돼서 정윤회 문건의 실체를 대통령이 인지하는 것을 두려워 한 것이 아니겠느냐?"면서 "그것을 막기 위해서 박지만 문건도 외면한 것이고 당연히 정윤회 문건은 당연히 외면했고요. 그 다음에 유출 경위서도 외면한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문건을 회수할 경우 일어날 후폭풍을 두려워했을 가능성이다.

문건을 어떻게 회수했는가를 보고하게 되면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의 역할이 컸다는 사실을 보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문건 유출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조응천 전 비서관의 책임이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누군가 조응천 비서관을 내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문건을 흘렸다는 사실이 드러날 수도 있기 때문일 수 있다.

김기춘 비서실장 (자료사진)
세 번째 중요한 포인트는 이미 여러 차례 말씀드린 대로 김기춘 비서실장이 조응천 전 비서관으로부터 '정윤회 문건'을 보고 받은 뒤 검찰조사를 지시하거나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고 문건을 작성한 박관천 경정을 직접 청와대에서 내보라고 지시했다는 점이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검찰조사와 언론인터뷰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보고한 뒤 3인방으로부터 역공을 당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보고서를 문고리 3인방에게 건넸거나 최소한 문건의 내용을 알려줬을 것이라는 걸 시사하는 발언이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찌라시'로 판단했다면 처음부터 문건을 폐기하도록 지시하거나 조응천 비서관을 질책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조치는 없었다고 조응천 비서관이 진술하고 있다. 김기춘 비서실장의 이런 행동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대통령이 아닌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건데 그게 누군지 역시 미스터리다.

물론 청와대 입장에서 판단해보면 유출된 문건이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된 것이고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이 관련됐을 수 있어서 회수나 조사에 나서지 않았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중요시설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았다면 일단 소방차가 출동해야 한다. 그런데 청와대는 그런 신고를 받고도 그냥 방치한 것이다.

▶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

= 당연히 그 책임을 무겁게 물어야 한다.

문건 회수의 책임은 청와대 비서실을 책임진 김기춘 비서실장이 1차적인 책임이다. 그리고 문건유출 사실을 알고도 이를 회수하지 않은 홍경식 전 민정수석과 김영한 현 민정수석, 권오창 공직기강비서관, 그리고 처음으로 문건 유출사실을 인지한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등은 직무유기에 대한 구체적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조응천 전 비서관이 정호성 비서관에게 박지만 회장관련 유출된 문건의 사본을 건넨 건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대통령에게 직보하라는 취지였지만 정호성 비서관은 이 문건을 민정수석실로 보냈다.

BH 문건 도난후 세계일보 유출 관련 동향 (사진=박범계 의원실 제공)
박범계 의원은 15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문건 유출경위서를 공개하며 "유출 경위서에는 '정윤회 문건'과 같이 나라를 평지풍파 일으킬 문건이 유출될 예정이니 청와대가 회수 조치를 해서 세계일보 등의 추가 보도를 막으라는 대책이 담겼지만, 정호성 비서관과 청와대 민정실에 의해 묵살됐다"고 폭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윤회 문건' 유출에 대해 '국기문란'이라고 규정했다. 그렇다면 엄청난 문건의 유출사실을 알고도 이를 방치한 사람들은 뭘까? 결과적으로 대통령을 속이고 제대로 보필하지 않은 사람들을 끝까지 감싸고돌지 지켜볼 일이다.

한편 청와대는 박범계 의원의 유출경위서 폭로와 관련해 "해당 유출경위서는 지난 5월 오모 당시 행정관이 유출된 문건 100여건과 함께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에게 전달된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서 "그 유출경위서는 유출된 문건 100여건과 함께 (현재 수사 중인) 검찰에 제출됐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검찰에 제출된 건 최근이고 6개월 이상 문건을 회수하지 않고 방치한 건 사실이다.

또 청와대 관계자가 정호성 비서관이 묵살했다는 박범계 의원에 주장에 대해 "정 비서관이 묵살한 적이 없고, 오히려 (민정수석실에 넘겨) 빨리 조사하라고 했다"고 반박했지만
이 또한 민정수석실이 제 역할을 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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