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발생 209일째인 11월 11일, 정부는 실종자 수색 작업을 모두 종료했다. 탑승객 476명 중 생존자 172명을 제외하고, 이날까지 수습된 사망자는 모두 295명. 18일 현재에도 실종자 9명을 남겨 둔 세월호 참사는 아직 진행형이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참사를 또 다시 접한 한국 사회는 요동쳤다. 수백 명을 태운 배가 가라앉는 과정을 고스란히 TV 생중계로 지켜보던 시민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고, 상식 밖의 미흡한 구조·수색 작업을 벌이는 정부의 행태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 영화계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참사 초반 만나거나 연락이 닿은 영화인들은 한목소리로 "재난에 속수무책인 국가 권력에 대한 분노와 함께 '어린' 세대를 저버린 '어른' 세대로서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당시 한 감독은 "지금 심정은 오로지 비통함과 참담함뿐이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들이 이어지는 데 분노가 치밀기도 한다"며 "10여 년 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등을 비롯해 이번 일도 결코 잊히면 안 된다. 스스로의 반성 위에서 이러한 참사들을 계속 환기시켜야 한다는 데 고민이 커졌다"고 전했다.
참사 이후 시민들은 노란리본을 가슴에 달며 "결코 잊지 말자"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억하지 못하면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명제는 뚜렷한 형상을 지닌 다양한 실천으로 거듭났다.
창작자로서 국내 문화예술 분야의 한 축을 떠받치고 있는 영화계 역시 행동에 나서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영화인들은 먼저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는 데 힘을 보태고자 힘썼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영화인준비모임' 소속 수많은 감독, 배우들은 8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에 동참했다.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영화제 기간 노란리본 달기 운동, '철저한 진상규명이 보장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영화인 1123인 선언' 등을 통해 그 흐름을 이어갔다.
◈ "창작 방향에 큰 영향…영화로 꼭 녹여낼 터"
세월호 참사를 정면에서 다룬 다이빙벨은 10월 23일 개봉한 이래 독립영화로는 드물게 18일 현재까지 누적관객수 4만 6,611명을 기록하며 장기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국내 스크린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들의 상영 거부라는 열악한 조건을 딛고, 시민들의 호응으로 이뤄낸 결과여서 더욱 눈길을 끈다.
멀티플렉스 측의 다이빙벨 상영 거부 논란이 불거졌던 11월 영화계 인사들은 "관객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심각한 문화적 독재"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이 영화에 힘을 실어 줬다.
다이빙벨의 배급을 맡고 있는 시네마달의 김일권 대표는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에 상영관 배정을 거부한 멀티플렉스를 제소한 상태지만, 현재(17일)까지 어떠한 조사도 벌이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고 전했다.
다이빙벨은 앞서 10월 부산영화제에 초청됐을 때도 전회 매진을 기록하며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당시 이 영화의 상영 취소를 요구하는 외압들이 불거졌지만, 영화제 측은 상영을 강행했다. 그로부터 한 달여 뒤 감사원은 부산영화제에 대한 특별 감사를 벌였는데 "다이빙벨을 상영한 데 따른 괘씸죄가 적용된 것 아니냐"는 말이 돌기도 했다.
엄혹한 시대 분위기 탓일까. 공교롭게도 올해에는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가치를 내세운 상업영화가 여러 편 소개돼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으려는 영화계의 노력과 맥을 같이 했다.
기억, 공감, 연대, 진실을 전한 영화 '변호인' '또 하나의 약속' '해무' '제보자' '나의 독재자' '카트' 등이 그 면면이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영화인들이 창작자로서 다양한 작품을 통해 그 기억을 끊임없이 환기시킬 것이라는 점에서, 내년부터 이러한 성격의 상업영화가 보다 많이 소개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영화제작자는 "개인적으로 어릴 때 영화를 통해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품었고, 더불어 사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 도덕적 기준에 대해 생각할 기회도 많이 얻었다"며 "올해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해당 사건이 일어나게 된 근본 원인을 거슬러 오르려 애썼는데, 세월호 참사 그 자체보다는 제가 탐구한 근본원인을 영화로 녹여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최근 들어 시놉시스도 몇 개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제작자도 "창작자로서 많은 영화인들이 세월호 참사를 염두에 두고 창작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 아직은 상처 자체가 너무 크기에 그 무거운 이야기를 못 꺼내고 있지만, 꼭 돌아볼 필요는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어느 분이 만들게 되든 책임감을 갖고 해 주시리라 믿고 있다. 그 작업에 동참하고 싶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