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가 말하는 '비굴의 시대'

신간 '비굴의 시대'는 우리 시대에 대한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 대학교 한국학 교수)의 고민과 번뇌를 담고 있다.

저자는 반복되는 사건사고가 1등만 강요하는 세상의 부산물이라고 말한다.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이 적자생존의 원리를 체득하며 괴물로 자라나 윤 일병을 구타한 가해자가 된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의식이 세월호를 탈출한 무책임한 선원을 만든다."

대한민국은 괴물 공화국, 비굴해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다. 저자는 이 시대를 "전례 없는 더러운 시대"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사회적 연대 의식은 증발하고, 저마다 자신과 피붙이들의 잇속만 추구하고, 타자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는 사회"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박근혜 정권의 후진성, 비정규직 문제 등 한국 사회 전반을 다룬다. 신자유주의 모범국가이면서 전근대적 요소가 완고하게 남아있는 한국 사회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2부는 전 세계의 정치,사회적 문제를 살핀다. 지난 20년간 세계는 급격하게 '사회 없는 사회'가 됐다. 인간이 사회의 주변으로 밀려난 대신, 돈과 시장이 중심 자리를 꿰찬 것. 하지만 몰락의 징후를 보이는 신자유주의 흐름, 미 제국의 약화, 아랍권과 우크라이나 혁명 등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3부는 지식인의 한계와 자본의 노예로 전락한 학계에 비판의 칼날을 겨눈다.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제자를 성추행하는 교수와 경쟁에 매몰돼 권력 비판의 임무를 유기하는 지식인을 두루 비판하고, 이 같은 분위기 때문에 인문학이 비효율적인 학문으로 전락했다고 주장한다.

4부는 다시금 사회주의와 좌파의 의미를 묻는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주의와 좌파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현실 사회주의가 아닌 비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을 대변하는 표현이다. 저자에게 사회주의는 인생의 의미를 되찾기 위한 최후의 보루이자 실존적 운동이다.

도무지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세상. 그럼에도 저자는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갖고 서로 연대한다면 희망의 씨앗을 싹 틔울 수 있다"고 말한다.

비굴의 시대 / 박노자 / 17000원 / 3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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