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라시 결론 檢 문건 수사, 개운치 않은 의문들

정윤회 씨(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정윤회씨와 이른바 '십상시' 멤버들의 비밀 회동 그리고 국정개입설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검찰이 한 달 넘는 수사 끝에 이같은 의혹 모두를 '찌라시'라고 공식 결론내렸다. 그럼에도 상당한 의문점들이 남는다. 애초부터 검찰도 사건 성격상 수사의 한계가 있음을 인정했지만 해소되지 못한 의혹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① 불분명한 범행동기, 문건 작성과 유출 대체 '왜' 했나?

박관천 경정은 정윤회씨와 관련된 정보를 듣고 문건을 작성한 당사자이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소속 정보관으로서 동향 보고는 일상적인 업무이다. 하지만 검찰 설명대로 정윤회씨와 십상시의 정기 모임은 없고, 문건의 내용이 허위라면 이런 소설같은 얘기를 왜 청와대 공식 보고서에 썼는지 의문이 남는다.

박 경정은 정보원인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으로부터 정윤회씨 관련 얘기를 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본인이 구속된 이후에도 주장은 바뀌지 않았다.

실제 박동열 전 청장은 정보업계에서는 나름 고급 정보를 가진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박 전 청장은 검찰에서 제보 사실을 부인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김춘식 청와대 행정관이 소위 십상시의 막내 격이고 대학교 동문이어서 동문 모임에서 식사를 산 적은 있다"는 말만 했을 뿐 정윤회씨와 십상시 정기 모임 그밖에 정윤회씨의 언동에 대해서는 얘기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얘기를 들었다는 사람과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는 사람 간의 엇갈리는 진술 속에 검찰은 진위를 가리기 보다는 박관천 경정이 풍문을 '과장, 짜깁기'했다고 결론내렸다. 박 경정이 박지만 회장 미행설을 꾸며낸 전적이 있다는 점도 판단 근거로 작용했다.

하지만 정보가 중간에서 부풀려졌다 해도 박동열 전 청장이 어떤 제보를 했는지, 박 경정은 왜 이런 동향보고를 작성했는지는 베일에 가려있다.

문건을 외부로 유출하는데 관여한 두 경찰관의 범행동기도 미스터리하다. 한모 경위는 박관천 경정이 서울경찰청 정보분실 사무실에 보관한 문건을 몰래 복사했고, 숨진 최모 경위는 이 문건들을 평소 알고 지내던 세계일보 조모 기자에게 넘겼다.

특히 최 경위는 조 기자와 1년간 550여차례의 통화를 하고 카카오톡으로 문건 사진을 주고받기도 했는데 민감한 내용이 포함된 청와대 문건을 통째로 넘겨주는 것은 정보업계에서는 극히 드문 일로 여겨진다.


막판에 기소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박지만 EG회장에게 청와대 동향 문건들을 전달해준 범행 동기도 불명확하다. 조 전 비서관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업무의 일환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지만 회장이 정윤회씨 국정개입 문건 등을 받아본 이유는 무엇인지, 실제로 청와대 안팎의 권력 암투가 존재했는지도 물음표로 남는다.

② 중식당 회동 없었다고 국정개입 없다 확신할 수 있나?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은 정윤회씨가 실제 청와대 비서관들을 만나거나 접촉해 국정에 개입해왔는지 여부이다. 정윤회씨는 현 정부 집권 전부터 정치권내에서 숨은 실세로 꾸준히 거론됐던 인물이다. 새누리당 고위 관계자들까지도 정윤회씨의 영향력을 궁금해하기도 했다.

검찰은 문건 내용 확인에 집중했다. 정윤회씨와 십상시가 모임을 가졌다는 강남 J중식당을 뒤지고 관련자들의 1년치 통화기록을 분석해 비밀 회동은 허위라고 결론내렸다.

하지만 분석 기간은 최근 1년에 그쳐 문건이 작성되기 전에는 12월 한달치에 불과했다. 휴대전화도 확보하지 못해 문건에 특정된 2013년 10월~11월의 통신기록은 물론이고 카카오톡 등 SNS 접촉도 확인 못했다.

당사자들이 정말 결백하다면 휴대전화를 임의제출 받는 등의 적극적인 수사도 가능했을테지만 검찰은 "명예훼손 피해자라고 고소한 사람들에게 휴대전화를 달라고 할 수 없지 않느냐"며 꺼렸다. 결국 이런 수사상의 미진한 부분들로 국민적 의혹을 말끔히 해소시키지 못하고 있다. 정윤회씨가 청와대 비서관 3인방 등과 "절연했다"고 주장했다가 뒤늦게 이재만 비서관과 통화한 사실이 드러나자 이를 인정한 것도 이들의 관계에 대한 의문점을 증폭시키는 부분이다.

"이번 사건은 국정개입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명예훼손 수사이다"는 검찰의 변명은 충분한 해명이 되지 않는다. 정윤회씨 등은 고소인 신분임은 물론 새정치민주연합 등으로부터 고발당한 피고발인이기도 하다. 문화체육관광부 국과장 인사 개입설 등 정윤회씨를 둘러싼 숱한 의혹에 대해서 검찰은 수사대상이 아니라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정작 검찰 내부에서조차 "비선라인의 국정개입이 있었을 수도 있다"며 수사상 미진함을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정윤회씨와 청와대 비서관 3인방)실세론은 벌써 몇년째 나오는 얘기 아니냐. 비선라인 국정개입은 어느 정권에서나 있는 얘기이다"며 "하지만 검찰 수사를 통해 밝히기는 어렵고 정치권 내부에서 자체 감찰하고 진상조사를 해야하는 성격이다"고 말했다.

또다른 검찰 고위 관계자도 "검찰이 수사를 통해 밝힐 수 있는 부분은 한계가 명확했다. 국정개입이 있다고 해도 밝혀내기도, 처벌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고 밝혔다.

③ 그대로 덮힌 '배후'…박지만 EG회장의 역할 불분명

정윤회씨는 검찰에 출석하면서 "불장난에 춤 춘 사람이 누구인지 다 밝혀질 것이다"며 서슬퍼런 말을 남겼다. 하지만 '불장난에 춤 춘 사람'은 사실상 밝혀지지 못했다.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불구속 기소되기는 했지만 박지만 EG회장에게 십여건의 동향 문건을 전달한 혐의만 적용됐을 뿐 세계일보측 문건 유출에 관여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박관천 경정이 정윤회씨 관련 문건이나 미행설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도 조응천 전 비서관의 압력 등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이 문건 작성과 유출의 배후로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지만 회장의 측근 세력들을 지목했지만 사실상 혐의점을 찾지 못한 것이다.

박지만 회장은 청와대 문건을 받아보는 등 각종 의혹에 폭넓게 관여돼 있었지만 검찰 수사는 더 깊게 뻗어나가지 않았다.

박 회장측이 정윤회씨와 청와대 비서관 3인방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박관천 경정의 동향 보고를 이용했다는 이른바 '권력 암투설'은 단순한 추측으로 남게 됐다.

이밖에 청와대가 문건 유출자인 한모 경위를 회유하려 했다는 설도 규명되지 못한 부분이다. 자살한 최 모 경위는 죽기직전 작성한 유서에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한 경위에게 회유가 있었고 "나라도 흔들렸을 것"이라고 적었다.

청와대 회유설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검찰 수사에 개입한 것이어서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을 수 밖에 없다.

충격으로 입원한 한 경위도 종합편성채널과의 인터뷰에서 "청와대 측의 회유가 있었다"고 인정하는 인터뷰를 했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한 경위의 변호인이 이를 부인한 뒤로는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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