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개봉을 앞두고 최근 서울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조여정은 "몹시 긴장된다"는 말로 입을 뗐다.
"워킹걸이 개봉하는 7일까지는 12월이 계속되는 기분이에요. 12월 34일, 35일, 36일이랄까. (웃음) 개봉을 기점으로 새해가 시작된다고 여길 만큼 긴장하고 있는 거겠죠."
조여정은 고등학생이던 1997년 잡지 모델로 데뷔한 이래 어느덧 올해로 데뷔 19년차를 맞았다. "어릴 때 사진 찍는 걸 좋아했지만, 배우가 될 생각은 없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원래 꿈은 교육자였어요. 아르바이트 한다는 생각으로 잡지에 사진을 보냈는데 뽑혔고, 그걸 계기로 연예계에 입문하게 됐죠. 제가 1남 3녀 중 둘째예요. 둘째가 독립심이 강하다고 하는데, 저도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가족 가운데 연예계와 관련된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배우로 일하고 있는 걸 봐도 그렇죠."
'5년 뒤 어떤 모습일 것 같냐'는 물음에 조여정은 "그것보다는 당장 다음 작품이 뭐가 될지에 더 관심이 간다"는 말로 일 욕심을 내비쳤다.
"그렇다고 일중독자는 아니에요. 쉬는 시간까지 반납하면서 일하는 타입은 아니거든요. (웃음) 다만 항상 지금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래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요. 5년 뒤에도 후회할 일이 많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는 배우로서 좋은 작품을 만나는 것처럼 여자로서 좋은 짝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다만 아직은 적극적으로 찾아다닐 생각이 없단다.
"독신주의자는 아닙니다. 언니, 여동생도 아직 결혼을 안 했어요. 그렇다고 언니가 먼저 가기를 기다리는 건 아니에요. 제 삶은 별개니까요.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도 많은데, 함께 만나면 고민거리가 참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그래도 휩쓸리지 않아요. 사람마다 다르니 결혼도, 일도 비교대상이 될 수 없잖아요."
▶ 영화 워킹걸을 통해 배우로서 길을 찾아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 그날 그날 신을 끝내느라 촬영기간 정신이 없었다. 컷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촬영과 연기 등이 딱 맞아떨어지는 지점을 찾기 위해 같은 장면을 반복해 찍다보니 에너지 소비가 컸다.
특별히 어떤 캐릭터를 잡아가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전작 '인간중독'(2014)도 그랬지만, 워킹걸 역시 재밌을 것 같아서 했다. 코미디를 처음 접했는데, 운 좋게 기회를 얻었으니 열심히 임했다.
= 일부러 웃기려고 한 연기는 없었다. 진지하고 절실하게 임했는데, 감독님이 똑같은 상황을 두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고민을 참 많이 해 오시더라.
그 과정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연기해야 했는데, 놀이공원에서 이것 저것 놀이기구를 다 타 본 느낌이다. 놀이기구 탈 때 즐기지 못하면 얼어붙지 않나. 마찬가지로 연기도 즐겨야만 잘 되는 것 같다.
▶ 정 감독이 먼저 출연을 제안했다던데.
= 처음 하는 코미디여서 걱정도 있었지만 '정범식 감독님이니까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감독님의 전작 '기담'(2007)을 봤을 때부터 함께 작업하고 싶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이런 장면은 어떻게 찍을까' 생각하게 되는 부분도 있었는데, 철저한 준비로 배우들이 놀 수 있는 판을 만들어 주시더라.
감독님도 배우들도 워킹걸을 밝고 사랑스런 영화로 만들어 보자는 데 마음이 잘 맞았다. 태우 오빠도, 클라라도 서로 아이디어를 냈고, 시너지도 얻을 수 있었다.
▶ 영화 워킹걸은 터부시 되는 성을 양지로 끌어올리려는 시도로 다가오더라.
= 솔직히 그 부분에 대해 개인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 한 적은 없다. 제가 맡은 보희를 연기하면서는 성에 대해 '귀여울 수 있잖아' '밝을 수 있잖아'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지만, 촬영이 끝나고 나니 다시 원래 제 모습으로 돌아오더라.
감독님이 워킹걸을 통해 결국은 가족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영화 내용도 성을 소재로 끌어와 두 여자의 일 이야기로 엮어가다가, 마지막에 가족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듯싶다.
▶ 극중 보희처럼 배우 조여정도 일하는 여성이다. 결혼과 출산 뒤 활동 계획은.
= 그런 생각 미리 안 하는 성격이다. 잘 상상도 안 되고. (웃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도 배우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물음표다.
제 배우 인생도 늘 물음표였다. 영화를 한 편 한 편 해 오면서 스스로 '이런 색을 지닌 배우로 평가 받아야지'라는 계획을 세워도 잘 안 된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이런 작품을 했고, 하고 있는 것이다. 앞날에 대해서는 항상 물음표로 남겨 두고 싶다.
= 영화는 완성된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 최대한 공부를 한 뒤 들어간다. 끝을 알고, 감독과 배우가 기승전결을 공유하니 여유가 있다. 그럼에도 내용을 다 아는 상태에서 더욱 깊이 분석해야 한다는 생각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드라마는 초반 대본만 갖고 임하니 그때 그때 캐릭터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긴장에 사로잡히게 된다.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다.
기대감 면에서는 영화가 더 크다. TV 드라마는 바로 시청자에게 전송되지만, 영화는 후반작업을 하고 인터뷰를 하는 등 개봉 전에 포장하는 기간을 갖기 때문이지 않을까.
▶ 촬영을 모두 마치고 여유가 생기면 뭘 하나.
= 가장 원하는 건 여행이지만 여의치 않을 때가 많다. 그래도 할 게 많다. 체력을 키워야 하니 운동도 하고, 그동안 못 만난 지인들과 사는 이야기도 하고, 보고 싶던 영화·전시도 보고, 책도 읽고 한다. 주로 혼자 휴식을 즐기는 편이다.
▶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지.
= 일을 할 때는 즐겁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모여 있으니 각자 기준도 틀리고 부딪히다 보면 스트레스가 생기기 마련이다. 스트레스를 사람에게 푸는 것은 안 좋은 것 같다. 그래서 운동을 하게 된다. 30분 정도 달리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날씨가 허락하면 한강변을 달린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욱 조심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스노우보드 장비도 다 팔았다. (웃음)
지난 봄 워킹걸을 찍던 때, 쉬는 날 조깅을 하다가 발목을 크게 다친 적이 있다. 제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더라. 너무 중요한 때에, 그것도 촬영하다 다친 것도 아니고…. 그 뒤로 더욱 몸을 챙기게 되더라.
▶ 청소년 시절부터 꾸준히 활동해 왔는데, 그 때와 지금 현장 분위기에서 변화를 절감하나.
= 결정적으로 핫팩이 생겨서 겨울 촬영장에서 조금이나마 몸을 녹일 수 있게 됐다는 것? (웃음) 연기하는 것 자체가 벅차서 변화를 느낄 여유도 없었다. 19년차라고 하면 남의 얘기 같다. 솔직히 실감도 안 난다.
어젯밤에도 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연기력과 경력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그만큼 고민도 많아진다. 넘어야 할 산은 계속 눈앞에 들어오고, 힘들지만 해내고 싶은 일들이 생기니 도전은 계속되는 것 같다.
▶ 지금 한국영화계에서 여배우로 산다는 것은.
= 한국영화의 위상이 갈수록 높아지고 좋은 영화도 많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배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항상 감사하고 있다.
다만 작은 바람이 있다면 여배우가 맡을 수 있는 캐릭터가 다양해졌으면 하는 것이다. 여자 중심의 이야기도 재밌고 다양하게 만들어 질 수 있으면 좋겠다.
워킹걸이 그런 영화로 다가온다. 남자 이야기가 넘쳐나는 영화 환경에서 이 영화를 먼저 보신 관객들이 여자 이야기에 공감해 주시는 듯해 기분이 좋다. 여배우가 할 수 있는 시나리오도 많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데 워킹걸이 발판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