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형 '올스타전 MVP'가 불편하다고?

[임종률의 스포츠레터]올스타전 MVP의 기준과 당위성을 묻는다

'제가 못 받을 상을 받은 건가요' SK 김선형(가운데)이 11일 프로농구 올스타전에서 시니어 매직팀에 대한 주니어 드림팀의 승리를 이끈 뒤 MVP로 선정돼 김영기 KBL 총재(왼쪽) 등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오른쪽은 아쉽게 MVP 투표 2위에 오른 모비스 리카르드 라틀리프.(자료사진=KBL)
프로농구 올스타전 최우수선수(MVP)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받아야 할 선수가 수상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11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4-2015 KCC 프로농구' 올스타전 MVP는 김선형(27 · SK)이었습니다. 한국프로농농구(KBL) 출입 기자단 투표에서 김선형은 전체 63표 중 39표를 얻어 2년 연속 수상했습니다.

김선형은 이날 주니어 드림팀 가드로 출전해 형님 격인 시니어 매직팀을 상대로 23분여를 뛰면서 16점 6도움 1리바운드로 105-101 승리에 기여했습니다. 기록만 보면 31분여를 뛰면서 양 팀 최다 29점 23리바운드를 올린 같은 팀 리카르드 라틀리프(26 · 모비스)에 뒤집니다.

특히 라틀리프는 역대 올스타전 최다 리바운드 기록을 다시 썼습니다. 이런 점을 본다면 당연히 올스타전 MVP는 라틀리프의 몫이어야 했다는 겁니다. 김선형도 경기 후 "라틀리프에 미안하다. 그가 많이 도와줘서 MVP가 됐다"고 미안함과 고마움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김선형이 과연 MVP의 자격이 없었던 것일까요? 정말 터무니 없고 부당한 이유로 MVP에 오른 것일까요?

▲"올스타전은 투혼보다 화려한 기술"

사실 저 역시 이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바로 올스타전 MVP 투표에 나선 당사자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라틀리프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본 저는 주저없이 김선형을 MVP로 뽑았습니다. 왜였을까요?

이날 경기 전 만난 김선형은 홀가분한 표정 속에서도 자못 비장한 각오를 드러냈습니다. "최대한 멋지고, 따라하고 싶어하는 플레이를 펼쳐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게 하고 싶다"는 다짐이었습니다. KBL 대표 스타의 책임감이 물씬 풍겼습니다.

'제가 찍을게요' 김선형이 11일 프로농구 올스타전에 앞서 사진 촬영을 요청한 팬의 휴대전화로 직접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자료사진=KBL)
여느 종목을 막론하고 올스타전은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는 게 사실입니다. 이벤트 성격이 짙기에 치열한 승부가 펼치지기 어려운 까닭입니다. 더욱이 제각기 다른 팀에서 선발된 선수들이라 손발을 맞출 시간이 없어 농구의 묘미 중 하나인 톱니같이 맞아떨어지는 패스 워크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자칫 부상을 당하거나 입힐 수 있기에 또 다른 볼거리인 적극적인 몸싸움도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베테랑 양동근(34 · 모비스)은 "경기 전 훈련이 따로 없어 올스타전에서 짜임새 있고 뜨거운 접전을 펼치기는 어렵다"면서 "휴식기라고 하지만 개인과 팀 훈련을 하지 않는 게 아니어서 부상을 입으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래서 개인기나 색다른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밖에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현실적으로 몸을 던지는 투혼을 100% 보이기는 어려운 까닭에 팬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 화려한 플레이에 집중할 겁니다. 김선형은 "만약 올스타전에서 다치기라도 한다면 정작 중요한 정규리그에서 팬들이 그 선수의 경기 모습을 못 볼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올스타전 백미는 김선형의 더블클러치


이런 여건에서 김선형은 최선을 다해 뛰었습니다. 특유의 역동적인 플레이로 경기장을 찾은, 또 TV 중계로 시청한 팬들의 눈을 즐겁게 만들었습니다.

이날 경기에서 가장 큰 팬들의 환호성이 터진 장면을 김선형이 만들었습니다. 2쿼터에서 전매특허인 더블클러치 슛을 잇따라 성공시킨 장면이었습니다. 팬들은 올스타전에 걸맞는 장면에 연신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더욱이 김선형은 전날 인천아시안게임 대표팀과 KBL 선발팀의 올스타전에서 32분여를 뛰었습니다. 잇딴 더블클러치는 물론 탄력 넘치는 덩크까지 선보이며 23점 7도움 6리바운드로 분전했습니다.

'이것이 김선형표 더블클러치' 김선형이 지난 10일 인천아시안게임 대표팀과 KBL 선발팀의 올스타전에서 더블클러치를 시도하는 모습.(자료사진=KBL)
사실 11일 경기 때는 김선형의 덩크가 나오지 않아 살짝 아쉬움도 남겼습니다. 기회가 있긴 했습니다. 종료 1분여 전 상대 선수의 공을 가로채 번개처럼 달려나간 속공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김선형은 덩크가 아닌 레이업슛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경기 후 김선형은 "무조건 덩크라고 생각했는데 전날 경기 여파 때문인지 다리가 풀려서 되지 않았다"고 웃었습니다. 체력적인 부담에도 팬들을 위해 연이틀 최선을 다한 김선형의 진심이 묻어나는 대목입니다.

이것이 MVP 김선형을 만든 원동력이었을 겁니다. 기록을 떠나 이날 팬들에게 가장 깊이 각인된 플레이를 펼쳤던 선수에게 한 표를 던진 이유입니다. MVP 인터뷰에서 김선형은 "어제와 오늘까지 노력해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생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라틀리프 기록의 가치를 어떻게 봐야 할까

물론 라틀리프의 플레이를 폄하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라틀리프 역시 팬들을 위해 열심히 뛰었고 KBL 역사에 남을 기록도 세웠습니다. 31분 13초 양 팀 선수 중 가장 많이 코트를 누볐습니다. 29점 23리바운드, MVP 후보로 조금도 손색이 없는 활약이었습니다.

하지만 올스타전이라는 점에서 표를 던지는 데 주저함이 생겼습니다. 만약 플레이오프라면 당연히 MVP는 라틀리프의 몫이었겠지만 올스타전이었기에 아쉽게 표심을 충분히 얻지는 못했습니다.(라틀리프는 24표를 얻었습니다.) 정상적으로 상대 견제가 없는 상황에서 기록이었기에 다소 반감된 측면이 있다는 겁니다.

'엥? 아무도 없네?' 모비스 리카르도 라틀리프가 11일 프로농구 올스타전에서 리바운드를 잡는 모습.(자료사진=KBL)
모 스포츠 전문 기자는 "축구와 농구 등 몸싸움이 있는 종목은 엄밀히 따져 기록 경기가 아니다"는 지론을 갖고 있습니다. 상대팀과 경기의 성격, 몸싸움이라는 일관되지 않은 변수 하에서는 기록의 가치가 너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KBL은 역대 한 경기 최다 득점과 최다 3점슛, 리바운드 기록의 권위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타이틀을 위해 상대팀이 거의 수비를 하지 않은 가운데 이뤄진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모 기자의 사견이긴 하나 정규리그나 플레이오프와 올스타전을 비교한다면 일견 일리가 있는 의견입니다. 물론 이번 올스타전에 조작의 의혹은 없었지만 라틀리프가 31분여만 뛰고도 23개의 리바운드를 걷어낼 수 있던 이유일 겁니다.

▲올스타전 MVP 투표 방식, 변화는 필요하다

올스타전 MVP 투표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출입 기자단의 투표로만 이뤄져 김선형의 국내 선수의 이점을 얻고, 외국인인 라틀리프가 불이익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견입니다.

하지만 역대 올스타전 MVP를 국내 선수가 독식만 한 것은 아닙니다. 2012-13시즌 가공할 운동 능력의 소유자 후안 파틸로(당시 KGC인삼공사)를 비롯해 04-05시즌 찰스 민렌드(당시 KCC) 등 외인들도 MVP에 오른 바 있습니다.

특히 프로 원년인 97년 제랄드 워커(당시 SBS)를 비롯해 7시즌 동안 올스타전 MVP는 6번이나 외인들이 가져갔습니다. 특히 덩크의 귀재 워렌 로즈그린은 98-99(당시 나산), 99-00시즌(당시 신세기) 2연속 MVP에 올랐습니다. 02-03시즌은 역대 최고 외인으로 꼽히는 마르커스 힉스(당시 동양)가 차지했습니다.

'내 바지 내놔' 역대 최고 외국인 선수로 꼽히는 마르커스 힉스(당시 동양)는 지난 2002-03시즌 올스타전에서 상대 리온 트리밍햄(당시 SK)의 바지를 내리는 돌발 행동(왼쪽)에도 MVP에 올라 김영기 총재로부터 상패를 받았다(오른쪽). 이처럼 올스타전은 진지한 승부욕보다 화려한 기량과 재미로 팬들을 즐겁게 하기 마련이다.(자료사진=KBL)
모두 올스타전을 화려하게 장식한 선수들이었습니다. 문제는 기록이 이니라 기술이라는 겁니다. 올스타전을 압도할 만한 기량이 나오지 않았다면 그 다음 시선은 기록으로 갈 겁니다.

다만 올스타전 MVP 투표권을 팬들에게 주자는 의견은 깊이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전적으로 팬들을 위한 경기, 또 기록의 가치나 승리 공헌도 등을 전문적으로 따질 필요가 없는 올스타전이라면 팬들이 MVP를 뽑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할 수 있습니다. 경기 종료와 함께 MVP가 발표돼야 하는 여건상 4쿼터 기록이 빠져야 하는 상황도 개선할 여지가 있습니다.

논란은 언제나 필연적이고 환영할 만한 과정입니다. 다음을 위한 발전의 전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올스타전에서 연이틀 땀흘린 김선형의 노력이 폄하돼서는, 또 MVP에 오른 당사자가 마음 고생을 해서는 안 될 겁니다. 이런 논란이 재발되지 않도록, 이번 올스타전을 의미있게 준비했던 KBL이 또 한번의 고민을 해볼 부분입니다.

p.s-만약 이번 올스타전 MVP를 팬 투표로 뽑았다고 해도 과연 라틀리프가 영예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요?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김선형이 더 큰 국내 선수 프리미엄을 안고 MVP에 오르지 않았을까요? 득표율 차이가 더 크지 않았을까요? 다음 시즌 올스타전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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