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한 '편법 증세'에 분노한 민심

[서민 증세논란 ①] "증세 논란 없이 부족한 세수 확충하려는 꼼수"

CBS노컷뉴스는 담뱃값 인상에 이어 연말정산 문제로 가열되고 있는 '서민 증세논란'을 집중 조명한다. 첫 번째 순서로 편법증세의 실태와 원인을 알아봤다. [편집자 주]

(사진=이미지비트)
연초 담배 값 인상으로 촉발된 증세 논란이 연말정산 환급금 문제로 폭발하는 양상이다.

네티즌들은 변경된 연말정산을 ‘조세 수탈’로 규정하며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증세반대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반발 움직임이 거세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심각성을 깨닫고 진화에 나섰지만 성난 민심은 쉽게 가라앉을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 편법 증세 = 논란이 되고 있는 연말정산 관련 소득세법은 2013년 12월에 국회를 통과했다.

당시 정부는 대통령 공약대로 증세 없는 복지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추진했으나 별 진전이 없자 세수확충 방안 가운데 하나로 생각해 낸 것이 연말정산이다.

당시 기획재정부 김낙희 세제실장은 연말정산 제도 변경을 통해 1조3천억 원 정도 증세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증세 비난을 피해가기 위해 늘어나는 세금 대부분은 고소득자가 부담하고 연봉 5천500만 원 이하 소득자는 추가부담이 없다고 밝혔다. 또한 현행 소득 공제를 세액 공제로 변경함으로써 소득재분배 효과도 있다고 포장했다.

그러나 한국납세자연맹의 분석에는 연봉 2천360만원~3천8백만원 사이 미혼자는 2013년보다 세금이 17만3250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혼 공제자로 연봉 6000만원 이하만 100만명이 넘는다

지난해 아이를 낳은 직장인 가운데 연봉이 4천만 원인 경우 19만3천800원, 5천만 원은 31만760원, 6천만 원은 34만3750원의 세금이 증가했다. 자녀 2명을 둔 연봉 7천500만원의 외벌이 직장인은 59만9천원의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제도 변경으로 상당수 근로자들이 적지 않은 세금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정부는 제도변경으로 세금감면을 받는 사람도 있는 만큼 증세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설령 다른 사람의 세금이 그만큼 감소한다 하더라도 늘어난 세금을 증세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하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연말정산에 많은 납세자들이 더욱 분노하는 것은 증세 방식이 담뱃값인상과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담배 값을 80% 인상하면서 증세가 목적이 아니고, 흡연율을 떨어트려 국민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담뱃값 인상과 함께 추진됐던 담배 포장지 경고사진 부착안은 국회 처리과정에서 빠져버렸다. 금연이 목적이라고 하면서 비가격 부분의 핵심 금연정책은 슬그머니 제외된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보여준 이 모순된 행태는 담배가격 인상의 근본 목적이 무엇인지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그나마 담뱃값은 비흡연자들의 담배에 대한 혐오 심리가 건강권 논리에 힘을 실어주면서 흡연자들의 반발을 완충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연이어 터져 나온 연말정산 문제는 담배 문제와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편법증세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다.

문제는 증세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자동차세와 주민세 인상안을 국회에 상정했다. 자동차세는 2017년까지, 주민세는 내년까지 두 배로 올리는 내용이다.

지방세이긴 하지만 두 가지 모두 민생과 직결된 세목들이어서 서민들이 느끼는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그만큼 국회통과 과정에서 증세를 둘러싼 논란이 또 한 번 재연될 소지도 크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인 김진석 세무사는 “정부는 증세가 아니라고 하지만 대다수 국민의 세 부담이 늘어나는 만큼 당연히 증세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정부에 속았다고 생각하고,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정부가 편법을 사용해 당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세금을 올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 예상된 결과 = 증세를 둘러싼 지금의 결과는 예견된 일이다.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증세 없는 복지를 공언했다. 그러면서 공약이행에 필요한 예산을 지하경제 양성화, 재정 낭비의 최소화, SOC 투자 축소 등을 통해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하경제양성화는 조세저항의 벽을 넘지 못했고, 나머지 방안도 부진한 경기를 살리기 위해 과감한 확대 재정으로 오히려 기조가 완전히 바뀌면서 세수 확보로 연결되지 못했다. 여기에 경기부진의 장기화로 세수는 더 감소하게 됐고, 그 결과 이례적으로 3년 연속 세수부족 사태가 초래된 것이다.

지금 상황에선 대선공약이행은 차치하고 바닥을 드러낸 정부 곳간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물론, 여기에는 이명박 정부 시절 법인세를 3% 인하한 영향도 크다. 우리나라 세수의 대부분은 기업의 법인세와 개인의 소득세, 부가가치세 3가지에 의존한다.

법인세 인하 이후 소득세 수입이 법인세를 앞지르기 시작하면서 지난해는 그 폭이 더욱 확대됐다. 20일 발간된 ‘월간 재정동향’에 의하면 지난해 법인세 수익은 1조5천억원 감소한 반면 소득세는 4조8천억원이 증가했다. 갈수록 기업보다 개인의 세금 부담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20대 대기업 집단이 현금으로 쌓아두고 있는 사내유보금은 2013년 현재 588조9천500억 원으로 5년 전(322조4490억원)보다 55%가량 증가했다. 이처럼 돈이 넘치는 곳은 오히려 세금이 줄고, 부채로 허덕이는 가계의 세금 부담은 증가했다는 의미다.

결국, 증세는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상태에서 확장재정으로 쓸 곳은 많아졌으나 경기 부진과 소득세 감세 등으로 부족한 세수를 채우기 위해 정부는 편법 증세를 동원한 셈이다.

올해도 정부는 11조원이 넘는 지난해 세수부족에도 불구하고 세입 목표를 지난해보다 5조1천억 원 더 높게 잡았다. 정부 곳간은 비어있는데 돈 쓸 곳은 여전히 많다는 의미다.

경제가 살아나 세수 기반이 획기적으로 확충되지 않는 한 올해도 세수부족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명목 성장률 6%(실질성장률 3.8%+물가상승률 2.2%)를 기준으로 올해 세수를 잡았지만 3.8%의 성장률 달성이 결코 녹록치 않다.

재정과 관련해 정부로선 진퇴양란에 빠져있다. 법인세 인상은 정부 스스로 안 된다고 하고, 소득세와 간접세 인상은 국민의 조세저항에 막혀 있다. 또 당장 세수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경기가 좋아지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시간문제일 뿐 정부가 증세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추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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