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 종부세 폐지 등 지속적으로 '서민증세' 시도
이명박 정부는 집권 1년차인 2008년 종합부동산세 폐지를 공식 천명했다. 자신들이 야당 시절 '세금 폭탄'이라 비난했던 종부세 폐지는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당시 정부는 3년간 2조23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던 종부세수를 지방세인 재산세율을 높여 충당하겠다고 밝혔다.
상위 2%의 자산가가 내던 세금을 전 계층에 고루 부담시키겠다는 구상에 야당과 언론들은 즉각 사실상의 '서민 증세'라며 반발했다. 당시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여당의 부자 감세, 서민 증세를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비판했다. '부자 감세'에 대비되는 '서민 증세'라는 표현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종부세는 이후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부과 대상이 조정되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올해로 도입 10년을 맞았다. 이명박 정부는 막대한 세입을 차지하는 종부세를 끝내 폐지하지 못했다. 종부세는 올해 1조3000억원의 세입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는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부자 감세, 서민 증세 기조를 유지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법인세와 고소득층에 대한 재산세 인하로 2012년까지 세수 감소액이 88조7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2009년 6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부자 감세, 서민 증세라는 지적이 나온다'는 기자의 질문에 "경제현상을 일면으로만 보지 말아달라. 감세를 통해 기업이 이익을 많이 창출하고 고용 기회를 통해 서민들의 생활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감세한다고 경제적 힘 있는 쪽에만 혜택이 간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세수 부족을 감수하면서도 대기업에 법인세 감세 혜택을 안겨 준 근거가 된 이른바' 낙수 효과'를 재차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정부는 그러면서 담뱃세 인상과 전세보증금에 대한 임대소득세 과세를 시도했으나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의 반대에 부딪혀 정책화하진 못했다.
정부는 다만 이번 연말정산 파동처럼 세제개편안에 개별소비세 인상안을 끼워넣는 방식을 통해 사치품에나 붙던 개소세를 일정 기준 이상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에어컨, 냉장고, 텔레비전, 드럼세탁기에 부과하기 시작했다. 개소세는 최근 담뱃세 인상 때도 논란이 된 세제로, 일종의 사치세다.
당시 민주당은 "이들 4개 가전제품은 거의 필수품목처럼 됐기 때문에 참여정부가 2004년 특별소비세를 없앴는데 개소세가 부활한 것으로, 부자감세를 한 뒤 세수가 부족하니 서민증세를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신혼부부들이 결혼할 때 구입하는 필수품이라는 점을 들어 '신혼세'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서민 증세'가 다시 정치권에 회자된 건 무려 2년이나 지난 2011년 8월이었다. 여당이 2009년 10월 재보궐선거와 이듬해 6월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참패'하며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잃은 탓이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서민 증세'가 논란이 되자 소득세와 법인세의 최고세율 추가 인하와 주세 및 담배소비세 인상 등 이른바 죄악세 도입을 잠시 미뤄둔 상태였다. 감세정책을 재추진하기 위한 군불을 때는 데만 2년이 걸린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2011년 8월 한 조찬강연에서 "전 세계적으로 소비세를 올리고 소득세를 낮추는 쪽으로 정책 기조가 크게 가 있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며 법인세 인하와 소비세 인상 방침을 강조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박 장관의 발언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대선을 불과 1년을 앞두고 사실상 레임덕에 빠진 정권이 뜨거운 논란이 불가피한 '부자 감세'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다.
◇ 朴 정부, 정권 초부터 '담뱃세 인상' 군불...'건강세' 도입 해프닝도
이명박 정부 5년 동안의 감세 규모는 기재부 추산 결과 86조원에 이른다. 2012년 대선에서 무상보육 등 복지 확대를 주장한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는 재앙에 가까운 일이다. 부자 감세 철회를 주장하는 야당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에 부담을 안겨서는 안 된다는 여당의 논리가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선택도 결국 '서민 증세'로 귀결됐다는 것이 야당의 지적이다.
기재부는 인수위 시절인 2013년 1월 세입예산을 짜면서 근로소득세를 16.9%(3조2000억원), 종합소득세는 16.4%(1조6000억원)를 더 걷겠다고 밝혔다. 보수 경제지마저 칼럼에서 '월급쟁이의 유리알 지갑도 쥐어짜면 나온다는 식', '여당의 세수 증대와 야당의 부자 증세라는 동상이몽이 찾아낸 교집합'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정부여당은 한편으로 올해 비로소 실현된 담뱃세 인상을 정권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대표적인 친박계인 김재원 의원이 2000원 인상안을 냈고,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도 "담뱃값을 올릴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특히 현 경제부총리인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은 현오석 기재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당시 "복지하기 위해 서민 주머니를 턴다는 오해를 주고 있는데 술값과 담뱃값 인상은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담뱃세 인상은 서민 증세가 아니라 국민 건강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이 논리는 당시 해프닝에 그친 이른바 '건강세' 도입 주장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3월 26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당시 기재부의 개편안은 부가가치세, 개소세, 주세 등 3개 세금에 각각 0.03%씩 건강세를 부가해 연간 3조원의 재정을 확보해 건강보험 재정의 14%를 충당하는 국고지원 비율을 2017년까지 10%로 낮춘다는 계획이었다.
세목 신설로 본격적인 증세에 나선 꼴이라는 지적에다 간접세 비중 확대는 '서민 증세'와 다름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기재부는 하루 만에 "시중에 떠도는 아이디어를 정리한 수준"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그리고 2013년 8월 정부는 이번에 논란이 된 연말정산 환급액 축소를 골자로 하는 세제개편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연초에 밝힌 근로소득세 인상안이 포함된 내용이었는데 말 그대로 십자포화가 쏟아졌다. 서민 중산층에 대한 사실상의 증세라는 비판이 거셌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나흘 만에 "서민경제가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인데 서민과 중산층의 가벼운 지갑을 다시 얇게 하는 것은 정부가 추진하는 서민을 위한 경제정책 방향과 어긋나는 것"이라며 원점 재검토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기재부는 세금 부담을 안게 되는 계층을 당초 총급여 3450만원 이상에서 5500만원 이상으로 상향하고, 7000만원 이상에 부담이 집중되도록 했다. 국회 입법 과정에서도 논란은 이어졌지만 예산안에 묶여 함께 처리됐고, 당시 진화된 것으로 보였던 '불씨'가 이번에 폭발적으로 터져나온 것이다.
근로소득세 논란과 더불어 한편에서는 정부의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시도가 좌절됐다. 2013년 8월 새누리당은 주택용 누진제를 완화하고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해 전기요금을 현실화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그러나 원가 이하로 공급되는 산업용 전기료 문제가 빠져있다는 점에서 '서민 증세' 논란이 불거질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3개월 만에 개편을 전격 포기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와 야당은 번번이 '서민 증세' 논란으로 맞서왔다. 2013년 9월 '부자감세 철회 및 증산층ㆍ서민 증세저지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했던 현 새정치민주연합이 '부자 감세'와 '서민 증세'의 대비 구도를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야당은 지난해 정부여당이 추진한 담뱃세와 주민세, 자동차세 인상을 한데 묶어 '서민 증세'로 규정하며 법인세 정상화를 촉구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세목 신설 등이 아니면 본격적인 증세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야당은 서민에게 적용되던 비과세ㆍ감면 혜택의 축소까지 모두 '서민 증세'로 지목하며 논란을 키울 작정이다. '서민 증세'가 앞으로도 늘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