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 41년만에 '일인지하 만인지상'…이완구는 누구

정계진출로부터는 20년만…인사청문회 순탄할 듯

신인 국무총리에 내정된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내정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23일 총리후보자로 지명된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는 1974년 15회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발을 들인지 41년만에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반열에 올랐다. 원만한 대야관계를 감안할 때 인사청문회도 순탄할 전망이다.

경제기획원 등에서의 관료생활 외에, 충북경찰청장과 충남경찰청장을 역임한 이 후보자는 1995년 민주자유당 입당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는 신한국당 공천으로, 2000년 16대 총선에서는 자유민주연합 공천으로 각각 충남 청양·홍성 지역구에서 재선됐다.

대선이 있은 2002년 다시 한나라당에 재입당하지만 이 과정에서 '2억원 이적료' 논란이 불거지는 등 우여곡절 끝에 2004년 17대 총선에 불출마했다. 그런 다음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공천으로 충남도지사에 당선됐다.


이 후보자는 도지사 당선 3년 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합의한 법을 어겨선 안된다"고 '세종시 원안'을 요구하며 사퇴했는데, 이때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확고한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는 이명박정권이 세종시를 행정도시에서 기업도시로 전환하는 내용의 수정안을 추진해,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원안 고수론으로 맞선 박 대통령과 극한의 대립을 펼친 때다.

이 후보자는 2012년 19대 총선을 겨냥해 정계복귀 준비를 하던 중 혈액암 발병으로 고충을 겪었다. 세종시 관련 이명박정권의 탄압이 병인이었다는 관측도 있었다. 이 후보자는 결국 투병생활 끝에 2013년 4월 재·보선 당선으로 국회에 복귀했다.

지난해 새누리당 사상 최초의 충청권 원내대표에도 선출됐다. 이후 세월호특별법 입법 협상을 비롯한 쟁점에서 원만한 대야관계를 유지하면서, 고비마다 국회 정상화를 이끌어냈다.

이를 반영하듯 야당은 이 후보자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그동안 소원했던 정부와 국회, 정치권의 소통이 원활해지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정의당은 "내정 첫 일성에서 '야당을 이해하는 정부'라고 말한 점에 조심스럽게 기대한다"고 논평했다.

이 후보자는 기자간담회에서 "'야당을 이기지 않는 내각'을 통할하는 총리가 필요하다. 야당과 소통을 해야 한다"며 "그리고 대통령에 쓴소리와 직언을 하는 총리가 돼야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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