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문형표 장관은 28일 기자들과 만나 "올해 안에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안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며 사실상 '백지화' 방침을 밝혔다.
문 장관은 "지역가입자의 건보료가 줄어드는 데에는 이견이 없겠지만, 추가소득이 있는 직장가입자나 피부양자의 부담이 늘어나면 솔직히 불만이 있을 것"이라며 "연기를 하고 신중하게 검토를 하기로 고심 끝에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은 박근혜정부의 주요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다. 지난 2013년부터 개선 기획단을 꾸려 논의를 진행해왔고, 당초 오는 29일 기획단 최종 전체회의에서 발표될 예정이었다.
그간 건보료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이원화돼 서로 다른 기준으로 부과되면서 공정성과 형평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이 잇따랐고, 이를 소득 중심으로 일원화하는 게 주요 골자였다.
급여 이외에도 금융자산 등으로 고소득을 올리는 직장인에겐 건보료를 더 걷되, '송파 세 모녀'로 대변되는 저소득층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는 내린다는 대전제하에 7개의 구체적인 모형까지 완성된 상태였다.
지금도 급여 이외의 별도 종합소득이 연간 7200만원 이상인 빌딩 소유자나 대기업 사주 등 4만여명은 건보료를 추가로 더 내고 있다. 개선안은 이 기준을 연간 2천만원으로 낮춰 27만명의 자산가에게 건보료를 추가 징수할 계획이었다.
소득이 많은데도 직장에 다니는 자녀의 피부양자로 '무임승차'했던 가입자 역시 앞으로는 소득에 맞게 건보료를 부과하겠다는 내용 역시 포함돼있다.
현재는 피부양자가 △이자·배당 등 금융소득 4천만원 이하 △근로·기타 소득 4천만원 이하 △연금소득의 50% 금액 2천만원 이하 △재산세 과세표준액 9억원 이하 등의 조건을 충족하면 보험료를 내지 않았다.
그러나 개편안은 피부양자의 각종 소득을 모두 합친 연간 합산금액이 2천만원(월 167만원)을 넘을 경우 건보료를 부과하기로 해, '무임승차' 19만명이 건보료를 내야 할 상황이었다.
지난해 4월 기준 전체 건강보험 가입자 가운데 피부양자는 40.9%인 2047만 9000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종합소득 보유자가 230만명이나 된다.
반면 개편안은 지역가입자에 대해서는 건보료를 낮추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근로소득'을 기준으로 매겨온 직장가입자와 달리 재산이나 자동차 등 복잡한 방식이 적용돼왔으나, 이를 소득 중심으로 부과하면 건보료도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른바 '송파 세 모녀'의 경우에도 성·연령 및 전·월세 기준 등의 평가소득이 적용돼 매월 5만 140원의 건보료를 내야 했다.
지난해 2월 기준 6개월 이상 건보료를 내지 못한 가입자는 154만 세대로, 이 가운데 68.8%가 월 5만원 이하의 생계형 체납 세대이다.
이에 따라 기획단은 저소득 취약계층 지역가입자에 대해선 정액의 최저보험료를 부과하고 인상을 억제하는 방안도 정부에 건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이같은 내용들을 포함한 개편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은 부과 체계 개편 이후 건강보험료가 인상될 고소득 직장인 등의 반발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세액공제'를 통해 비슷한 방향으로 추진된 소득세 연말정산의 후폭풍이 커지고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곤두박질하면서, 일단 '유탄'을 피해가자는 정권 차원의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내년 4월로 예정된 총선도 고려됐을 개연성이 높은 건 물론이다.
문형표 장관은 "기획단에서 논의된 자료가 2011년 자료이기 때문에 자세한 시뮬레이션이 필요하고,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해야 할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사상 초유의 '정책 백지화'를 둘러싼 비판을 면하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