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무상보육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증세없는 복지’를 실현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른 대선후보들이 늘어나는 예산을 어떻게 증세없이 감당하느냐며 맹공을 펼쳤지만, 박근혜 당시 후보는 ‘그래서 내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며 맞받아쳤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는 결국 편법을 불러오는 덫이 되고 말았다.
늘어나는 복지수요를 감당하기 어렵자, 자치단체에 복지비 부담을 떠넘기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살림이 어려운 지자체들은 중앙정부에서 떠미는 복지비를 감당하느라 더 궁핍해졌다.
국민 건강을 생각해 금연률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담배값을 2천원이나 인상하면서, 올린 담배값에 세금을 덮어씌웠다.
연말정산 방식을 고액 소득자들은 더 내고, 저소득층은 세금혜택을 받게 고친다고 했지만, 결국 거의 모든 봉급생활자들에게 세금 폭탄만 안겨줬다.
결국 국민들의 눈을 속인 채 편법으로 세금을 올린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에서도 정부에서도 이걸 ‘증세’라고 부르지 않는다.
'증세‘는 박근혜 정부에서 누구도 입에 올려서는 안되는 ’금기어(禁忌語)’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더 어렵게 됐다. 박 대통령이 지난 26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증세 없는 복지’를 다시 언급했기 때문이다.
◇주민세인상 언급했다 뭇매 맞은 행자부 결국 교부세로 압박
그런데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이 금기를 깨버렸다.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주민세와 자동차세 인상을 언급한 것이다.
가뜩이나 연말정산 때문에 좋지 않던 여론이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결국 행자부는 국회에서 다시 논의되지 않는 이상 주민세 인상은 추진하지 않겠다며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주민세와 자동차세 인상은 복지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 재정이 어려워진 자치단체의 재정난 해소를 위해 이미 지난해부터 추진하던 정책이다.
여론의 뭇매만 맞은 행자부는 이제 중앙에서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자치단체에서 알아서 세금을 더 거두라고 압박하고 나섰다.
행자부가 꺼낸 카드는 지방의 목줄을 쥐고 있는 교부금이다.
행자부는 세금을 더 거두거나 올린 지자체에 대해 교부금을 더 내려준다는 요지의 지방재정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행자부가 교부금을 들고 나온 것은 박 대통령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증세없는 복지’를 다시 강조하면서, 지자체의 재정난은 교부금에 의존하려는 자치단체의 책임도 크다며 제도정비를 사실상 지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무상복지로 재정난을 가중시킨 중앙정부의 책임은 쏙 빼버리고, ‘재정난은 네 탓’이라며 책임을 지방에 모두 전가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전국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는 평균 44%다. 지난 5년새 10%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
예산의 절반 이상을 중앙에서 내려주는 교부금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자체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하지만 선거로 선출되는 자치단체장들이 주민들의 반발을 불러올 세금인상같은 정책을 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결국 ‘중세없는 복지’는 덫이 아닌, 헤어나기 어려운 ‘늪’처럼 모두를 수렁속에 밀어넣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