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쓰는 극장용 '3D 안경'…이대로 괜찮나?

[한국 영화 안녕한가요 ②] 멀티플렉스 3D 안경 재사용에 숨은 꼼수

한국 영화산업이 3년 연속 관객 1억 명을 넘어서며 최고의 호황입니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는 지금 안녕할까요? 그렇지 못합니다.

관객들은 잔뜩 화가 나 있고 좌절한 영화제작자들도 울분을 삼키고 있습니다. CBS 노컷뉴스가 화려함 속에 감춰진 한국 영화의 불편한 민낯을 연속 보도합니다. [편집자 주]

자료사진/황진환 기자
최근 서울 행당동에 있는 멀티플렉스 CJ CGV 왕십리점. 3D로 상영 중인 영화 한 편을 본 뒤 극장을 나서자 3D 안경 수거함이 보인다.

수거함 앞을 지키던 현장 직원에게 '3D 안경을 가져갈 수 있는지' 묻자, 그 직원은 수거함에 붙은 안내문을 가리킨다.

◇ 멀티플렉스마다 '3D 안경 사용기준' 천차만별

'3D 안경은 꼭 반납 부탁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안내문에는 '3D 영화 가격은 3D 영화 제작 비용, 시설투자 비용 등으로 책정된 콘텐츠 자체의 가격이므로 3D 다회용 안경의 가격은 포함돼 있지 않다'고 적혀 있다.

직원에게 '입장권 가격에 3D 안경 값이 포함됐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보다'라고 묻자 "안내문에 적힌 대로 안경 값은 포함돼 있지 않다. 어느 곳을 가도 마찬가지"라고 답한다.


하지만 확인 결과 관객들에게 3D 안경의 반납을 요구하는 CGV와 달리, 메가박스는 지점별로(최대 규모인 삼성동 코엑스점의 경우 반납을 요구) 달랐고, 롯데시네마는 관객이 원할 경우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왜 3D 안경에 대한 입장이 멀티플렉스마다 제각각일까. 이에 대한 답을 얻고자 3D 안경 제조업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복수의 3D 안경 제조업체에 따르면 3D 안경 알에는 렌즈 대신 필름을 사용한다. 가정용 TV에 쓰이는 3D 안경은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필름이 두꺼운 반면, 극장용은 보통 1회용으로 보기 때문에 얇은 필름을 쓴다.

한 업체 관계자는 "극장용 3D 안경의 경우 성인용과 어린이용이 있는데 둘 다 가격은 같다"며 "중간 유통업자가 마진을 붙여도 멀티플렉스에 납품되는 단가는 일회용의 경우 400~700원 수준"이라고 전했다.

◇ "일회용 3D 안경 납품가는 개당 600원 수준"

(사진=CJ CGV 제공)
앞의 CGV 안내문에는 '3D 다회용 안경'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다회용과 일회용 모두 안경 테에는 차이가 없다. 다만 다회용 안경의 필름은 겉면에 하드코팅이 돼 있고 두께도 0.37~0.45㎜다. 코팅이 안 돼 스크래치에 취약하고 두께도 0.27㎜ 이하인 일회용보다는 내구성이 강한 셈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CGV에서 쓰는 3D 안경은 다회용이고,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의 그것은 일회용"이라며 "납품가는 일회용이 개당 300~600원, 다회용이 2000원 내외"라고 했다.

특히 업체들은 멀티플렉스의 3D 안경 주문량이 갈수록 줄어 운영 면에서 타격이 크다고 하소연한다.

결국 멀티플렉스 측이 3D 안경 값을 일찌감치 회수했음에도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일회용이든, 다회용이든 재사용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말이다.

위의 관계자는 "CGV에 납품하는 3D 안경 제조업체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가는 수량이 굉장히 적다. 안경 하나를 100번 쓰는지, 1000번 쓰는지 표시하지 않고 반영구적으로 사용하다보니, 납품 계약한 수십만 개 가운데 고작 수만 개만 나가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라더라"며 "최근 CGV에서는 3D 안경을 일회용으로 전환한다는 입찰을 했다가 다시 다회용을 고수하는 바람에 기존 납품 업체와 단가를 두고 마찰을 빚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롯데시네마는 매년 경쟁입찰을 통해 가장 낮은 단가에 3D 안경을 공급받고, 메가박스 역시 코엑스 같은 규모 큰 지점 들 빼고는 거의 납품이 안 되고 있다"며 "가장 큰 문제는 멀티플렉스도 지점별로 양극화가 심해져 장사가 잘 안 되는 지점일수록 오래 된 3D 안경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 3D 안경 재사용 원칙 "수익 극대화에 관객 권리·위생 뒷전"

서울 행당동에 있는 멀티플렉스 CJ CGV 왕십리점의 3D 안경 수거함에 붙은 안내문.
멀티플렉스 들은 이처럼 공공연하게 다회용·일회용 3D 안경을 재사용하고 있다. 그만큼 위생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CGV 관계자는 "3D 안경 업체에서는 기본적으로 100회 정도 사용을 권하고 있으나, CGV 자체적으로는 16~18회 사용하고 폐기한다"면서 "그 전에라도 심한 스크레치나 손상이 발견되면 즉각 폐기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매회 별도 인력을 구성해 3D안경 전용 클린너를 가지고 전용 세척액을 사용해 일일이 수작업으로 닦아낼 뿐만 아니라 매일 각 극장에 설치된 별도 세척기를 통해 세척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극장 현장에서 만난 한 관객은 "예전에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직원 두 명이 한쪽에서 방금 수거한 3D 안경을 닦아 봉투에 다시 넣는 것을 본 적이 있다"며 "그 이후로 웬만해서는 3D 영화를 보지 않는다"고 전했다.

3D 안경 제조업체들도 "식판을 닦을 때처럼 3D 안경을 물에 담갔다가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자외선 소독기에 넣어 세척을 한다고 하는데, 그 정도 과정을 거친다고 해서 병원균이 없어질지는 의문"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1950~60년대 멕시코 정부는 트라코마(전염성 세균에 의해 일어나는 눈병) 탓에 3D 영화 상영을 금지했고, 할리우드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시장에서 사라진 적이 있다.

한 영화 관계자는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비슷한 문제로 소비자가 불만을 제기한 적이 있지만, 3D 안경을 재사용하는 것과의 연관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운 점이 있어 흐지부지 넘어가고는 했다"며 "면도기를 돌려 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방 차원에서 관객들이 극장의 3D 안경 재사용을 거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3D 영화를 본 뒤 관객 스스로 안경을 가져가겠다고 요구하는 것은 위생 문제뿐 아니라, 수익만을 좇는 멀티플렉스 측의 비윤리적인 경영을 철회하도록 유도하는 움직임과도 일맥상통하는 셈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성춘일 변호사는 "반드시 극장을 통해 3D 안경을 살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 3D 안경을 이미 가진 사람에게도 동일한 표값을 받는 것과 입장료에 가격이 포함된 안경을 회수하는 것은 '끼워 팔기' 문제가 크다"며 "멀티플렉스 측이 아예 3D 안경 값을 입장료에서 분리함으로써 소비자들이 그것을 살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