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문재인, 머리부터 발끝까지 '염색하라'

올곧은 인생을 산 정치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라고 해도 과찬은 아닐 것이다.

부정부패와는 원초적으로 거리가 멀고 길이 아니면 가지 않는 모범적인 인생을 산 정치인으로 알려졌다. 그의 말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연 서거하지 않았다면 정치 입문이란 상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분이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와 이번 새정치연합 전당대회를 치르면서 정치인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상대방 공격을 하지도, 받아치지도 못할 것 같은 그간의 온화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때론 맞공세를 펼치고 결기에 찬 발언을 서슴없이 던졌다.

지난 5일 마지막 합동토론회인 CBS '시사자키'에 출연해 박지원 후보의 거센 공격의 화살을 되받아치기도하고, 때론 우기기까지 했다. 토론회을 거치면서 공방을 즐겼고, 공격과 수비를 적절히 섞으며, 감정을 감추지 않고 직설적인 공격을 내뱉는 모습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그는 8일 전당대회장에서의 연설을 통해 질문형 연설로 청중의 환호성 답변을 유도했다. 무려 12번씩이나.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과 대적할 수 있는 강한 야당 대표를 원합니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다. 자연스럽게 문재인 이름이 올림픽 체조경기장을 우렁차게 메아리쳤다.

◇ 김대중 전 야당 총재의 연설기법 차용

DJ가 지난 71년 대통령 선거 때 장충단공원을 가득 메운 대중(대략 70만 명 )들을 향해 "이 김대중이 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막고 경제를 살릴 적임자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분 생각은 어떠십니까?" 라고 물었고, 수십만 명의 지지자들은 '김대중! 김대중!'을 연호했다.

효과 만점의 답변 유도성 질문형 연설이다. 8일 전당대회 연설을 지켜본 권노갑 고문 등 동교동계 인사들은 꼭 김대중 전 대통령 연설하듯 한다고 말했다.

한 참석 대의원은 “문재인 후보의 연설에서 당 대표에 대한 집념과 결기를 느끼게 했다”고 말했다.

◇ 문재인 대표, 정치적으로 많이 변신한 것처럼 보여

"친노라는 계파를 청산하겠으며 계파의 'ㄱ' 자도 안 나오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친노'(親盧)만으로는 내년 총선도, 2017년의 대선 승리도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문 대표는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하기 직전 기자와 만나 “친노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훌륭한 분들을 모셔야 하는데 소개해 달라”고까지 말했다. 당의 면모 일신은 얼굴을 교체하는 것에서부터라는 사실을 명약관화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사무총장 등 주요 당직을 비노 인사들에게 안배할 것으로 예상된다. 누가 보더라도 계파 색채를 희석시켜 분파에 찌든 당을 화합의 장으로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다.

문제는 당직 인사로 끝나서는 당의 화합이 이뤄지지 않을뿐더러 친노 색채를 뺄 수 없다. 정치 지도자란 누구와 상의하고 대화하느냐, 누구의 조언을 듣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9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현충탑을 참배한 뒤 이동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 조언, 참모 그룹이 중요하다

주요 당직자들과 상의하지도 않고, 조언을 구하지도 않고, 그들의 역할을 당무에 한정시키고, 반면에 정치적 조언과 상의를 측근들과 한다면, 즉 친노 인사들과 나눈다면 친노의 울타리는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한 측근 의원은 “문재인 의원은 성격적으로 수줍어하고 내성적이기 때문에 아무와도 쉽게 어울리거나 의견을 구하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정치적 멘토 범주에 속할 인물을 널리 구한다고 하더라도 곁에 두고 중용할 것 같지 않다는 발언으로 들린다. 그동안 가까웠던 참모들은 알게 모르게 문재인 대표의 광폭 행보를 제지할지 모른다.

새로운 인물들이 자신들의 영역인 문재인 대표를 차지하려는 것을 경계할 것이다.

◇ 주변 참모들이 새피의 수혈을 반대한다

대통령이 되고자하는 큰 인물 주위에는 언제나 ‘인의 장벽’을 치는 자들이 생기게 마련이며 인의 장벽을 걷어내지 못하면 대통령이 되지도 못하고, 된다고 하더라도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다. 한국 정치사가 이를 증명한다.

가깝게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측근 그룹(7인방)에 둘러싸여 정상 9부 능선에서 내려오는 수모를 겪었으며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도 3인방이니, 4인방이니 하는 말들이 회자된다.

보통 능력이 출중한 인사들은 권력에 가까이 가려고도, 멀리 떨어지려도 하지 않는 습성이 있는 관계로 세상을 주도할 인재를 구하려면 측근 그룹을 내쳐야만 그들을 불러들일 수 있다.

역대 제왕들이 다 그렇게 해 권력을 잡았고 집권 이후에도 성공했다.

문재인 대표가 진정으로 정권교체라는 시대적 소명을 달성하고자 한다면 주변에서 지난 대선과 이번 경선을 음으로, 양으로 도와준 측근들을 거의 대부분 곁에서 물러나도록 해야 한다.

그 빈자리에는 계파도, 이념도, 지역색이 없는 인사들로 채워야 한다.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8일 오후 올림픽 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제1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 대표에 선출된 문재인 의원이 함께 경선을 벌인 이인영, 박지원 의원과 인사를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 머리를 염색하는 것처럼 일신해야

결단코 머리색을 바꿀 것 같지 않아 보이는 문재인 대표가 염색을 하는 것과 진배없는 외형적 변화다. 형식의 변화가 내용의 콘텐츠를 달라지게 할 수도 있다는 논리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변해야만 대권 재수생 문재인에게 월계관이 씌워질 것이다. 못한다면 그는 정치생명만 연장하는 당 대표가 될 것이다.

화합 부분도 그렇다. 45.30% 대 41.78%의 근소한 차이(3.52%p)도 문 대표의 향후 진로를 호락호락하게 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12월 후보 출마 이전까지만 해도 박지원 의원은 문재인 대세론에 가려 최소한 10%p 이상 차이로 대적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런데 결과는 당선을 위협할 정도였다. 전당대회를 엿새 앞두고 경선 룰이 바뀌지 않았다면 문 대표의 승리를 장담할 수도 없는 3.52%p의 신승이었다.

1위로 최고위원에 당선된 주승용 최고위원은 9일 CBS '박재홍의 뉴스쇼'에 출연해 “만약에 국민여론조사가 없었으면 당선이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라며 “문재인 대표가 지금이라도 바로 박지원 의원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고 협조를 구해야 된다”고 말했다. 껴안으라는 고언이다.

박지원 의원이 당장은 뛰쳐나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4월 29일 보궐선거에서 새정치연합이 패배한다면 딴 생각을 가지지 말란 법이 없다.

만약 박지원 의원이 새정치연합을 버리는 상황까지 간다면 문재인 대표 주도의 내년 총선은 물건너간다.

친노 인사들은 박지원 의원을 과소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언제 적 박지원이냐", "박지원에게 정치적 미래가 있냐"고 힐날조로 말한다.

틀리지 않는 말이다. 그렇지만 박지원은 그 누구도 따라가기 힘든 바지런함과 정무적 감각, 경륜이 있다. 그의 곁에는 언제나 기자들이 따른다. 박지원 의원만큼 기사를 잘 양산하는 정치인도 없다. 당대 일인자다.

그리고 그에겐 호남인들의 정치적 우상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고 덧씌워져 있다. 때론 그걸(DJ의 영예), 자기 것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영원한 DJ의 비서실장이다.

◇ 문재인, 박지원과 화합 쉽지는 않을 것

경선전에서 박지원 의원으로부터 호되게 당한 문재인 대표는 당장은 박지원 이름 석자도 듣기 싫을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박지원 이름만 들어도 진절머리가 날 것이다.

실제로 지난 5일 CBS 토론회를 마친 이후 가볍게 악수만 하고 본 체 만 체 하고 먼저 떠났다. 당을 단합하지도, 화합하지도 못하면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지난하고 거센 공세를 막아내기 힘들다.

비노 세력의 협력과 화합의 대가는 가진 것(?)을 내놔야만 가능하다. 그가 중도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면 반드시 넘어야 할 당 내부의 산이 하나 더 있다. 새정치연합 최고위원회다.

주승용, 전병헌 의원은 온건 합리적인 성향이어서 설득이 가능하겠으나 정청래, 오영식, 유승희 최고위원은 친노와 운동권 성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는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영선 공감혁신위원장이 지난해 9월 안경환-이상돈 투톱 비대위원장을 추진했을 때 가장 강하게 반기를 든 의원들이 이들 최고위원들이다. 박영선 퇴진 운동을 주도했다.

안경환-이상돈 교수를 비대위원장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당에 중도 온건, 합리적 진보 성향의 인재들이 무슨 연유로 새정치연합의 문재인호에 탑승하려고 하겠는가?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 때 문재인 후보 찬조 연설을 해 중도 보수층에게 큰 감동을 일으켰다.

그런데도 정권을 잡겠다는 새정치연합의 강경파 의원들은 이념과 친노, 운동권, 시민운동이라는 그들만의 잣대와 현미경으로 샅샅이 훑는 경향이 있다.

한 정치 평론가는 “새정치연합 의원들을 보면 정권교체엔 관심이 없고, 오직 국회의원 되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는 인상을 짙게 풍긴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표도, 그들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2016년도 쉽지 않고, 2017년은 최악의 한 해가 될 지도 모른다.

정치와 국가의 혁신 못지않게 새정치연합 인적 구성원들의 혁신이 먼저일 수 있다. 야당 지지자들은 ‘정권교체’가 ‘이 세상의 지상명령’이며 ‘이 시대의 선’이라고 말한다.

그런 염원 앞에 친노가, 이념이, 운동권 경력이 무슨 소용이 있고 자랑거리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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