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박영화' 고사시킨 '퐁당퐁당' 상영 아시나요?

[한국영화 안녕한가요 ⑫] 관객 선택권 침해·산업 양극화 부른 '교차상영'

한국 영화산업이 3년 연속 관객 1억 명을 넘어서며 최고의 호황입니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는 지금 안녕할까요? 그렇지 못합니다. 관객들은 잔뜩 화가 나 있고 좌절한 영화 제작자들도 울분을 삼키고 있습니다. CBS 노컷뉴스가 화려함 속에 감춰진 한국 영화의 불편한 민낯을 연속 보도합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누구를 위한 영화관인가…빼앗긴 '볼 권리'
② 돌려쓰는 극장용 '3D 안경'…이대로 괜찮나?
③ "왜 영화 상영시간에 광고를 끼워넣죠?"
④ "극장 팝콘값 뻥튀기 담합?"…울며 겨자 먹는 관객들
⑤ "영화 대기업 횡포? 짜증을 드러내야 바뀌죠!"
⑥ [단독] CGV, '선택권' 앞세워 '영화값 6%' 편법 인상
⑦ 프리미엄관에 가봤더니…영화 관객은 '봉'
⑧ 뒷짐 진 공정위…영화 관객만 '부글부글'
⑨ "영화 만들기…이젠 행복 아니라 고통입니다"
⑩ '위험수위' 넘은 대기업의 자사 영화 밀어주기
⑪ '다양성영화' 상영횟수…360대 4의 비밀
⑫ '중박영화' 고사시킨 '퐁당퐁당' 상영 아시나요?

자료사진/황진환 기자
영화 '내 심장을 쏴라'는 지난달 28일 개봉 이래 이제 막 2주를 넘겼지만 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작가 정유정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데다, 인지도 높은 배우 이민기 여진구를 주연으로 내세워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은 점에 비춰보면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적잖다.

15일 오전 3대 멀티플렉스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내 심장을 쏴라의 이날 서울 지역 상영 시간표를 알아봤다. CJ CGV는 명동역점 2관에서 오후 12시 10분과 밤 10시 50분 두 차례 상영했고,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에는 상영관이 아예 없었다.


사실상 서울에서 내 심장을 쏴라를 보려면 오후 12시 10분 전에 CGV 명동역점을 찾는 수밖에는 없는 셈이다. 일요일 늦은 밤에 극장을 찾을 관객은 그리 많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럼 CGV 명동역점 2관은 내 심장을 쏴라를 두 차례 상영하고는 쉬는 거야?'라는 합리적인 의문을 갖는 관객들이 있을 것이다. 이곳의 15일 상영 정보를 살펴보니 내 심장을 쏴라를 포함해 '아메리칸 스나이퍼'(오후 2시 25분, 5시 10분), '킹스맨'(오후 8시 5분), '7번째 아들(오후 10시 40분), '주피터 어센딩'(새벽 12시 45분)까지 모두 5편의 영화를 상영했다.

◇ 영화 다섯 편 욱여넣어진 상영관…그곳에 숨겨진 '꼼수'

소위 '퐁당퐁당' 상영이라 불리는, 한 상영관에서 여러 편의 영화를 트는 교차상영은 관객들의 선택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한국 영화산업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폐해로 지목된다.

한 상영관에 다수의 영화를 몰아넣음으로써 생기는 여유분을 오롯이 특정 영화가 차지하는 까닭이다.

국내 중소 규모 배급사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한국영화배급사협회 유현근 이사는 "3대 대기업 멀티플렉스 체인이 자리잡으면서 계열 투자·배급사의 센 영화가 나오면 웬만한 영화도 퐁당퐁당 상영으로 가게 됐다"며 "CJ엔터테인먼트에서 배급한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명량'(2014)이 어마어마한 점유율을 보인 데서도 이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 이사에 따르면 사실 교차상영은 배급사 측의 제안으로 시작된 면이 있다. 다른 영화와 한 관에 묶여 한 주라도 더 상영되면 그만큼 관객과 만날 시간이 길어져 손익분기점을 넘길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그는 "극장 측에서도 개봉 영화가 많아지다보니 교차상영을 통해 소화하려는 면이 커졌다"며 "지금은 오히려 자사 영화를 밀어줄 목적으로 스크린을 많이 잡아먹는 데 쓰는 수단으로 정착됐다"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교차상영으로 한 관에 묶인 영화들조차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유 이사는 "두 편의 영화를 교차상영하더라도 회차를 '1, 3, 5, 7' '2, 4, 6, 8'로 공정하게 구분해야 하는데, 좋은 시간대에는 블록버스터 등을 걸고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는 중소 규모 영화를 튼다"며 "결국 관객들이 어느 시간에 와도 보고 싶은 영화를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극장 측이 그러한 기회를 원천차단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자금력이 달려 블록버스터 영화를 못 가진 중소 배급사들은 극장 배정에 있어서도 항상 후순위로 밀려, 관객들이 보면 좋아할 영화가 있어도 만날 기회조차 못 갖게 된다"며 "대자본 들인 영화만 편식하다보면 한국 영화산업도 홍콩처럼 얼마 못 가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지고 이들 영화 제작사가 어느 정도 자본을 회수해 또 다른 영화를 내놓을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함으로써 영화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 "배급과 상영 모두 주무르는 대기업 스크린 독과점 해결 절실"

자료사진/황진환 기자
현재 극장 환경은 개봉 첫 주에 모든 것이 판가름나도록 강제된 측면이 크다. 10여 년 전부터 시작된 배급 방식인 '와이드 릴리즈'는 극단적인 결과물이다.

유 이사는 "와이드 릴리즈는 개봉 예정 영화가 많아지는 상황에서 짦은 시간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밀려버리는 현실이 작용한 것"이라며 "대작 영화의 경우 초기 마케팅 비용을 집중 투입해 입소문이 나기 전에 자금을 바짝 회수하는데, 이로 인해 대다수 영화가 상영관을 확보하기 어려워져 양극화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소위 '중박 영화'라 불리는 500만~800만 관객을 모은 영화가 사라지는 결과를 낳았다.

영진위의 '2014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사에 따르면 2013년과 지난해 800만 관객 이상을 동원한 '대박 영화'는 모두 4편으로 동일했지만, 중박영화는 2013년 4편에서 지난해 한 편도 없었다. 중박영화의 범위를 300만~800만 명으로 넓히더라도 2013년 10편에서 지난해 6편으로 반토막이 났다.

유 이사는 이러한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프랑스는 상영관을 12개 가진 극장의 경우 한 영화가 두 곳 이상 차지하지 못하게 하고, 상영관이 14개일 경우 3개 관까지만 허용하는 식으로 쿼터제를 시행하고 있다"며 "한 영화가 전체 스크린의 몇 개 이상을 못 가져가게 하는 법이 만들어진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만약 이것이 FTA(자유무역협정) 등에 저촉된다면 멀티플렉스의 개념을 '몇 편 이상의 영화를 동시에 상영하는 곳'으로 직시해 그곳에 대해 퍼센테이지나 좌석 비율로 특정 영화의 독점을 제한할 수도 있다"며 "특히 미국처럼 배급사가 극장을 가질 수 없도록 하는, 대기업의 수직계열화된 배급과 상영을 분리하는 방법으로 스크린 독과점의 폐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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