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환능력이 취약한 대학생에게 제2금융권이 고금리로 약탈적 대출을 하는 관행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가운데 이런 조치가 제도권 대출이 어려워진 대학생들을 사채시장 등으로 몰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장학재단·청년햇살론 대출 상품 안내 필수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업무보고를 통해 대학생과 청년층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저금리로 생활자금을 빌려주는 금융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앞으로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가 대학생과 만 29세 이하 청년층에게 돈을 빌려줄 때는 한국장학재단과 대학생·청년햇살론 등 낮은 금리의 청년층 대출상품을 반드시 안내하도록 한 것이다.
한국장학재단은 대학생에게 1년에 최대 300만원(누적 최대 1200만원까지)의 생활자금을 대출해주고 있다. 연이자는 2.9%다. 미소금융재단도 최저 4.5% 연이자로 최대 800만원까지 생활자금을 빌려준다.
저금리 정책금융상품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를 찾아온 대학생과 청년층이 있을 수 있으니 이들에게 제대로 안내를 하라는 게 금융당국의 취지다.
금융당국은 이런 안내를 소홀히 하고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가 자사의 고금리 대출상품을 대학생과 청년층에게 판매할 경우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방침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장학재단과 미소금융재단에서 대출한도가 남은 대학생과 청년층에 대해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가 대출을 해줬다면 향후 감독과 검사를 통해 대출 경위를 꼼꼼히 따져보겠다는 것"이라며 "대학생과 청년층 대출 취급건수가 증가하는 회사는 집중 점검 대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에 대학생과 청년층에 대해서는 연이자 15% 이상의 대출을 자제하라는 것"이라며 "법적으로 대학생 대출을 금지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금지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은 이번 조치로 위험수준인 20대 대출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상직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6월말 기준 27개 저축은행에서 7만1682명의 대학생들이 평균 28.3%의 금리로 1인당 350만원을 대출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생과 청년층의 부채 증가율도 위험한 수준이었는데 강기정 의원이 금감원 등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3분기(7~9월) 가계대출액은 1분기(1~3월)보다 3.56%(37조6083억원) 늘었는데 이 기간 동안 20대 대출은 무려 15.62%나 늘어나는 등 대학생과 청년층 대출 증가는 위험수준이다.
◇ 대출 대상 제한, 심사 기간 길어 저축銀 가는 대학생도 막아
대학생 고금리 대출 자제라는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저축은행과 대부업계에서는 대학생 대출 금지 조치가 이들 금융 취약계층을 사채시장 등 제도권 금융 밖으로 몰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책금융상품의 접근성이 떨어져서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로부터 대출을 받고자하는 대학생들의 수요가 있는데 금융당국이 이를 죄악시하고 금지하면서 대학생들의 금융상품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지적이다.
장학재단과 청년햇살론의 대출 대상에 포함되지 않거나 급전이 필요한 이들이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으려도 해도 당국의 '대학생 대출불가' 방침 때문에 대출을 받기 어려워 오히려 사채시장 등 제도권 밖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장학재단과 청년햇살론 등 저금리 청년층 대출상품의 경우 대출을 받기가 까다롭다.
장학재단 생활비대출의 경우 ▲직전학기 12학점 이상 이수 ▲직전학기 성적 70점(100점 만점) 이상 ▲소득기준 등의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청년햇살론도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 대출을 3건 이상 사용하고 있거나 현금서비스 사용액이 100만원이 넘는 대학생은 이용할 수 없다.
대출 신청 기간도 한정돼 있다. 장학재단 생활비 대출 신청 기간은 올해 기준 1월 6일부터 5월 15일까지다. 청년햇살론은 이달 말까지 대출신청을 받지 않는다.
이런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대출 신청을 했다고 하더라도 심사 기간이 남아있다. 장학재단 생활비 대출 심사기간은 한 달 정도다. 청년햇살론도 비슷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급전이 필요한 대학생과 청년층에게 정책금융상품은 ‘그림의 떡’이다.
대출 대상이 되지 못하거나 대출 신청 기간을 놓친 이들, 급전이 필요한 20대가 갈 곳은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일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 “고금리 대출 불가는 현실에 맞지 않은 정책”
이 때문에 금융당국이 대학생 대출 자체를 죄악시하고 금지하는 것은 대학생과 청년층의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는 비판도 나온다. 대학생과 청년층이 등록금과 취업준비 등을 위해 높은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 2금융권 관계자는 "20대 중에 저소득층 대학생 뿐 아니라, 중산층의 자녀들도 학자금 대출과 생활자금 등의 목적으로 대출 상담을 받으러 오는 게 지금 우리의 현실인데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천편일률적으로 '대출하지 마라'고 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2금융권 관계자는 "고금리 대학생 학자금 대출은 문제의 소지가 있지만, 대출 받는 사람이 대학생 신분이라는 것 자체를 문제삼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정부도 학자금과 생활자금 등 모든 부분을 해결하지 못하는데, 대상이 대학생이라는 신분으로 구분짓고자 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이어 "대학생들의 학자금, 주거비, 생활자금 등에 대한 금융수요 규모와 현실적인 자금 조달(대출)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먼저 파악해서 정책가이드를 수립하는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보다 실효성이 있기 위해서는 저금리 정책금융상품의 까다로운 조건과 심사 기간 등의 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임은희 연구원은 "등록금을 포함한 학생들의 교육비가 연간 2천만 원에 이르는 등 대학생들이 계속 빚을 질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대학생들의 기본 생활비가 낮아지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어 "저금리 정책금융상품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수학점 등 대출조건이 있는데 이런 대출 조건들이 완화되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