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 누구를 위한 영화관인가…빼앗긴 '볼 권리'
② 돌려쓰는 극장용 '3D 안경'…이대로 괜찮나?
③ "왜 영화 상영시간에 광고를 끼워넣죠?"
④ "극장 팝콘값 뻥튀기 담합?"…울며 겨자 먹는 관객들
⑤ "영화 대기업 횡포? 짜증을 드러내야 바뀌죠!"
⑥ [단독] CGV, '선택권' 앞세워 '영화값 6%' 편법 인상
⑦ 프리미엄관에 가봤더니…영화 관객은 '봉'
⑧ 뒷짐 진 공정위…영화 관객만 '부글부글'
⑨ "영화 만들기…이젠 행복 아니라 고통입니다"
⑩ '위험수위' 넘은 대기업의 자사 영화 밀어주기
⑪ '다양성영화' 상영횟수…360대 4의 비밀
⑫ '중박영화' 고사시킨 '퐁당퐁당' 상영 아시나요?
⑬'스크린 독과점'에 무너진 한국영화…대안은?
지난해 12월 31일 개봉한 이 영화는 '따뜻한 가족영화'인데도 개봉 초기부터 조조나 심야시간대에 주로 배정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불만이 꾸준히 제기됐다.
◇ "수직계열화는 전 세계 유일의 괴물 같은 구조"
'개훔방'을 제작한 삼거리픽쳐스 엄용훈 대표는 "영화의 기획, 제작, 투자, 배급, 상영, 부가판권까지 영화산업의 전 과정을 대기업이 수직계열화한 전 세계 유일의 괴물 같은 구조가 허용됐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 연결고리를 끊지 않는다면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절대로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객들과 시민단체는 '영화산업 수직계열화'를 비판하며 '상영관 확대 서명운동'과 '대관 상영 운동'에 나서며 여론을 움직였다.
CJ CGV는 지난 12일 CGV 아트하우스 15개 관으로 상영관을 확대하며 여론 달래기에 나섰다.
그렇다면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한국영화제작가협회는 영화 대기업의 배급·상영 겸업을 법률로 금지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제작가협회 배장수 상임이사는 "영화는 상품 이전에 문화이자 예술"이라며 "영비법(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 등을 통해 근본적으로 대기업의 배급·상영 겸업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은 할리우드 스튜디오 황금기였던 1920∼40년대에 제작과 배급, 극장이 수직적으로 통합돼 운영됐다. 하지만 1948년 미국 대법원은 이른바 '파라마운트 판결'을 통해 동일 자본이 배급과 상영을 겸하지 못하도록 했다.
미국도 1980년대 규제 완화를 거치면서 일부 수직계열화가 존재한다. 하지만 극장의 영향력이 크지 않아 한국처럼 대기업이 배급한 영화가 같은 대기업 계열사의 스크린을 50% 넘게 차지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 "스크린 점유율 규제하고 배급·상영 겸업 금지해야"
정윤철 영화감독조합 부위원장은 "관련법을 개정해 특정 영화를 일정 비율 이상 상영하지 못하도록 스크린 수를 제한하는 것이 지금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 방안은 영화의 다양성 확보를 위한 프랑스 국립영화센터의 규제안과 비슷하다. 프랑스의 경우 한국의 영화진흥위원회에 해당하는 국립영화센터가 특정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을 규제하고 있다.
이에 따라 12개 이상의 스크린을 보유하는 복합 상영관에서는 영화 한 편을 최대 2개 스크린에서만 상영할 수 있다. 또 영화 한 편이 전체 스크린의 30% 이상에서 상영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겸업 금지' '스크린 점유율 제한'과 같은 규제 도입은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국제통상 규정과 앞으로 충돌할 소지는 없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2013년 국회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김상민 영화산업고용복지위원회 정책위원은 "한·미 FTA 투자 관련 규정상 정부는 '간접수용'에 대해서도 정당한 보상의무가 있다"며 규제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간접수용이란 특정 정부조치로 인해 외국 투자자가 사실상 영업을 할 수 없게 돼 투자 가치가 직접수용과 동등할 정도로 박탈되는 경우를 말한다. 따라서 '겸업금지' 조치가 간접수용에 해당되는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스크린 수를 직접 규제하는 법안도 GATS 제6조(일반적 예외조항)의 공평하고 합리적인 방식의 국내 규제에 부합하고 한·미 FTA의 시장접근을 제한하는 총량규제, 랫칫조항 위반인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미국식 변동부율제 도입해볼 만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는 "미국식 변동부율제를 도입하면 멀티플렉스가 개봉 초기 특정 영화를 과도하게 밀어줄 동기를 사라지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율제란 극장과 제작·배급사가 극장 수입을 나누는 비율을 말한다. 현재 한국영화의 경우 서울 지역에 한해 5.5(극장)대 4.5(제작·배급)의 부율이 기본이다.
미국은 부율을 우리나라처럼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동시킨다. 예를 들어 개봉 1주차에 극장이 2, 제작·배급사가 8의 수익을 가져갔다면 4주차에는 그 비율을 5대 5로 똑같게 하고, 그 이후에는 극장이 더 많이 가져가는 방식이다.
결국 극장 입장에서는 부율이 적은 첫 주에 굳이 상영관을 많이 내줄 필요가 없다. 대신 영화를 더 오래 걸어두려 한다. 뒤로 갈수록 극장에 더 이익이 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변동 부율제는 관객 입장에서도 좋다. 극장은 영화를 최대한 오래 걸어두려 하기 때문에 보고 싶은 영화가 며칠 만에 극장에서 사라지는 일이 드물어진다.
제작사나 배급사도 개봉 초기에 부율이 높아 최소한의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 극장들도 입소문을 타고 관객이 몰리면 스크린 수를 크게 늘려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CJ와 롯데, 공정환경 조성 협약부터 철저히 지켜야"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영화상영관의 스크린 수 배정 기준 공개 △개봉 주 월요일 예매 개시 △개봉영화에 대해 최소한 일주일간의 상영보장 △배급사의 서면 합의 없는 변칙 상영 금지 등이다.
협약에는 제작자 단체인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한국상영관협회, 주요 영화상영관(CJ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한국영화배급협회, 주요 배급사(CJ E&M·롯데엔터테인먼트·쇼박스·NEW)가 참여했다.
하지만 이 이행협약은 강제성이 없는 '권고적 조치'이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 영화 제작자들의 입장이다.
정윤철 감독조합 부위원장은 "영화 대기업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갑과 을의 구조 속에서 이행협약은 현장에서 거의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협약은 문화체육부와 영화진흥위원회가 주도적으로 나서 체결을 주선한 만큼 책임 있는 후속조치 마련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