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식수절(식목일)인 2일 한 공군부대를 찾아 전투비행사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다. 이 가운데 한 장은 40여명의 비행사들이 앉거나 선 자세로 김정은을 빙그르 둘러싼 장면을 담았다.
흥미로운 것은 비행사들의 자유분방하다 못해 시쳇말로 군기가 빠진 듯한 모습들이다.
비행복 차림의 이들은 짙은 선글라스를 쓴 채 자세는 제각각이며 일부는 딴청을 피우기도 하고 심지어 앞뒤 동료와 가볍게 떠들며 웃고 있다. 김정은의 바로 앞에 있는 군인은 숫제 몸을 비스듬히 하고 상체를 뒤로 살짝 젖히기까지 했다.
또 그 옆의 군인은 기세 좋게 맨 앞자리를 깔고앉아 두 손은 양옆의 군인 무릎에 얹은 채 자못 무게를 잡고있다. ‘최고 존엄’의 존재는 전혀 아랑곳 하지 않는 눈치다. 그런데도 김정은은 이를 훤히 드러내고 웃고 있다.
'절대 왕조'나 다름없는 북한에서 과연 이런 사진이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김정은 시대에 들어 선대의 딱딱했던 분위기와 달라지긴 했지만 이번 사진은 이례적인 사례로 보고 ‘연출’ 의도를 분석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사진 한 장 한 장까지 철저한 검열과 감수를 거치며 고도의 메시지를 응축한다. 그런 맥락에서 이 사진의 1차적 메시지는 아버지인 김정일 시대의 은둔적, 권위적 이미지에서 탈피해 선대와 차별화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기성세대의 권위주의에서 새롭고 현대적인 지도자상으로 변신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은은 이를 능동적으로 이끌어감으로써, 검증되지 않고 불안한 ‘어린 지도자’가 아닌 능력있는 ‘젊은 지도자’의 이미지를 덧칠하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외적으로는 서구식 교육을 받은 세련된 이미지를 과시하는 측면도 있다.
김정은은 권력 승계 직후 금수산태양궁전 앞 구소련식 광장을 유럽식 정원으로 바꿀 정도로 이미지 통치에 신경을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선대 때는 유교적 근엄함과 신비함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했다고 한다면 김정은 시대에는 젊고 활발한 지도자 상을 부각함으로써 뭔가 새로운 기대감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사진은 북미간 긴장관계 속 한미군사훈련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더 복합적인 메시지를 지닌다.
특히 사진이 촬영된 지난 2일은 한미군사훈련 시작일이자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날이다. 북한은 한미군사훈련 기간마다 최고 단계의 비상 태세에 돌입한다는 점에서 이번 사진은 분명 이례적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인민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할 시점에 오히려 이런 사진을 실었다는 것은 엄중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여유가 있음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진 한 장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다. 다만 김정은의 연출 의도가 무엇이 됐든 칙칙하고 무표정한 것보다는 활짝 웃는 모습이 훨씬 낫다는 점은 꼭 일러두고 싶다.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도 더 그러길 바란다.
건성건성 박수 친 고모부를 숙청하는 잔인한 이미지야 쉽게 바뀌지 않겠지만 어쨌거나 자주 웃다보면 심성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김정은의 전투비행사들, 명령 한 마디에 총포탄이 되어 돌진할 인간병기들이다. 하지만 그들도 웃고 있으니 우리네와 별로 달라보이지 않는다. 사진의 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