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머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진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유머다."
멀지 않은 옛날, 빨래터에 모인 아낙들이 질척한 농 섞인 말로 윗사람들을 흉보면서 깔깔대고, 장터 마당극에서 촌철살인의 해학과 풍자가 넘실댄 까닭을 쇼의 말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멀리 갈 것도 없다. 인지도 높은 반기문 UN 사무총장도 "유머 감각은 큰 자산"이라고 했다니, 자칫 무미건조해지기 쉬운 일상을 깨는 유머의 가치는 우리가 가늠하는 것 이상으로 값진지도 모른다.
정치풍자 영화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감독 김선·이하 자가당착)가 6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처음으로 공식 상영됐다.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2011년 6월과 이듬해 9월 두 차례나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을 받고 소송을 벌여, 지난해 7월 대법원이 "영등위 판정은 잘못됐다"고 판단한 뒤 이날 상영관에 걸릴 때까지 4년이 걸렸다.
권력자들을 불편케 만든 문제작으로 익히 알려진 까닭일까. 평일 낮 1시 20분에 걸린 이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은 스무 명가량 돼 보였고, 90여 분 러닝타임 동안 상영관 곳곳에서는 폭소가 터져나왔다.
영화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2012년 대선 이전에 만들어진 만큼 각 이야기의 시점은 그때에 맞춰져 있지만, 현재 진행형인 문제들이기에 지금 시대상에 비춰 봐도 크게 무리는 없다.
먼저 '대한 뉘우스' 타이틀을 단 영상은 한 가족의 식사 자리에서 화제에 오른 4대강 사업 이야기를 들려 준다. 딸이 엄마 아빠에게 청계천사업, 촛불집회, 용산참사 등을 근거로 "물로 흥하고 불로 망한다"는 '수흥화망' 이론으로 설명하는 이명박정권의 정체성은 묘한 설득력을 지닌다.
두 번째는 영화 예고편 형식을 띤 '칠거지악'이란 제목의 영상이다. 여기에는 '복수를 꿈꾸는 남자' '모든 준비는 끝났다' '오늘 넌 죽는다' 등의 문구와 방독면을 쓴 등장인물들이 등장한다. '2010년 6월 개봉'이라는 마지막 문구를 통해 그 당시 펼쳐진 6·2지방선거를 빚댄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극중 한국 사회의 비뚤어진 자화상을 기록한 다양한 신문 기사, 혼신의 연기를 펼치는 경찰 마스코트 포돌이 인형, 베일에 싸인 포돌이의 엄마 아빠, 머리에 띠를 두르고 포돌이를 괴롭히고자 연대하는 쥐떼, 앞서 언급한 수흥화망을 연상시키는 장면 장면, 그리고 노골적인 성적 은유 등은 어디선가 한 번쯤 들었을 법한 다양한 일상의 소리와 버무려져 관객의 예상을 모조리 전복시킨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전 세계를 쑥대밭으로 만든 권위적인 기성세대에 저항해 일어난 68혁명. 전 지구적 정치 흐름을 바꾼 이 일대 사건은 프랑스의 한 대학이 남학생의 여학생 기숙사 출입을 금한 데서 촉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혁명을 이끈 젊은 세대가 내건 슬로건은 지금도 회자될 만큼 인상적이었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등등. 기성세대의 눈에는 모순으로 보일 법한 이 유머러스한 슬로건이 세상을 바꾸는 이들의 말과 행동을 대변한 셈이다.
뻔한 이야기는 지루할 뿐 결코 웃음을 동반할 수 없다. 이 점에서 예상을 벗어난 일탈은 유머의 기본이라 해도 무방하다. 영화 자가당착의 장면 장면을 유머로 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난 유머감각이 없소"라고 자인하는 일 밖에는 안 된다. 유머를 유머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권위적인 사회는 시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고 역사는 증언한다. 보지 말라고 막으면 더 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