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운대'의 섹시한 여대생. '진짜 사나이' 이전에 배우 강예원의 이미지는 한결같았다. 그를 논할 때 '섹시'라는 단어가 빠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누구도 그가 볼 빨간 얼굴로 왕눈이 안경을 끼고 뚝뚝 눈물을 흘릴 줄은 몰랐으리라. 그러나 그 일이 일어났다.
강예원은 간만의 예능 나들이로 MBC '일밤-진짜 사나이'를 선택했고 매회 독특한 캐릭터를 보여주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군대 체질도, 건강 체질도 아니었지만 도리어 그것을 감추지 않고 보여준 것이 강예원이라는 배우를 돌아보게 했다. 쏟아지는 비난과 격려는 나중의 문제였다. 한 곳에 멈춰있던 그의 시계는 이제 막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음은 강예원과의 일문일답이다.
-'진짜 사나이',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요?
소속사에서 저한테 '진짜 사나이' 어떠냐고 물었어요. 저는 잘 모르겠다고 했는데 다들 나가면 좋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나갔는데 준비성이나 열정이 남들보다 연약했죠. 제 동생이 해병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군대에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거기에 대한 자부심도 몰랐고요. 약간 좀 무지한 게 있지 않았나 싶어요.
-시력이나 발목 등 핸디캡도 있었죠?
눈은 원래 못 들어가는 시력이에요. 렌즈를 끼면 시력이 좋아지긴 하는데 가까이 있는 게 안 보이거든요. 제가 도태되니까 자책감이 컸죠. 걷는 건 자신 있는데 뛰는 건 발목 때문에 못 뛰어요. 눈 때문에 하도 넘어져서 다리나 발목이 잘 부러져요. 고소공포증도 너무 심해요. 그렇게 고생하는 맛에 보는 프로그램인데 당하는 입장에서는 엄청 속상했어요. 못하는 저를 보면서 한심하고, 죄송스럽고, 민폐라서 제가 너무 싫어지고, 맨날 울고, 눈도 싫어지더라고요.
-그래도 그런 콘셉트로 관심 많이 받지 않았나요?
콘셉트를 잘 잡았다고 하는데 예능에서는 어떤 콘셉트를 잡아야 하는지 이야기 한 적은 없어요. 지난번에 여군특집 1편을 봤는데 매니저들이 예능프로그램은 리얼이어야 한다고, 다 공부하고 가면 재미가 없다고 하면서 보지 말라고 해서 안 봤죠. 그게 실수였어요.
눈이 너무 안 보이는데 실이 너무 짧은 거예요. 부탁할 데가 없더라고요. 바빠 죽겠는데 실 좀 꿰어 달라는 게 너무 민폐잖아요. 거기서부터 이런 눈을 갖고 태어난 것이 서럽더라고요. 뭘 어떻게 해도 안 들어가요. 남들이 보면 날 얼마나 놀릴까. 어떻게 생각하면 공포고, 너무 수치스럽고 쥐구멍에 숨고 싶었어요. 그런데 말은 못하고….TV로 보면서도 울었어요.
-아무래도 다른 출연자들보다 그런 핸디캡이 많았나 봐요.
어느 정도 장애들은 극복가능하고, 제 스스로 조그만 장애를 극복하는 맛에 하는 거잖아요. 잘하는 거 자랑하려고 온 게 아니라, 잘해보자고 온 거였거든요. 낯선 환경이나 사람에 대한 공포가 심해요. 거기서 벗어나고자, 군대라는 곳에 와서 좀 더 극복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첫날부터 '멘붕'에다가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고…. 극복하기는커녕 너무 저만 혼나고 관심병사처럼 취급 받는 것 같아서 너무 한심하더라고요. 혼나는 것도 도가 넘어가니까 면역이 생겨요. 눈물이 덜났어요.
-단기간에 변화를 겪으면서 스스로 좀 변화도 있었을 것 같아요.
제가 제 정체성을 좀 더 깨우친 것 같아요. 여배우로 살아오면서 예민해지고, 까칠해지고 성격 안 좋아지는 걸 되게 염려했어요. 그런데 나약하고,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세지도 않더라고요. 매니저나 주변 사람들에게 잘해줘야겠다고 반성했죠. 혼자 뭘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 이것도 정말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자로, 엄마로 살아가야 하는데 누가 저를 이렇게까지 챙겨줄 사람이 있겠어요. 전생에 공주도 아니고….
-군대 문화는 어땠어요?
말을 못해서 핑계를 못 대요. 말의 전달이나 소통이 안 되니까 답답했죠. 군대와는 맞지 않는데 그 환경에서 나 혼자 도태되니까 암덩어리 같고 그랬어요. 눈물샘을 틀어막고 싶은데 눈물이 안 막히더라고요. 제 스스로가 너무 싫어서요. 편집상황을 봤을 때 제작진 마음은 이해가 가요. 잘하는 모습 보여주면 재밌는 게 없잖아요. 논란은 어쩔 수 없죠. 제 앞에만 오면 사건이 터지니까. 살면서 이렇게 혼난 적이 없어요. 군대에서 제일 많이 혼났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거라고 예상했나요?
이런 관심을 기대한 적도, 바란 적도 없어요. 저는 이런 큰 관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즐기지를 못해요. 얼굴 빨개지는 홍조도 그렇고…. 화장품이나 렌즈 광고가 들어오겠다는 얘기를 듣는 것도 이 프로그램의 힘이죠. 말로만 듣는 것도 감사해요. 그런데 그만큼 밀물과 썰물이 강하니까 제 심장으로는 이걸 맞설 힘이 없어요. 연기를 열심히 해서 관심을 받고 싶어요.
아무것도 안하고 다 보여주니까 오히려 행복해요. 앞으로 나가도 창피할 것도 없고, 누구를 만나도 콤플렉스가 다 드러나 보이니까요. 거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제가 우는 걸 연기고, 튀려고 하는 쇼라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우는 게 뭐가 좋겠어요. 그 얼굴로. 댓글 쓰시는 분이 어떻게 그런 상상을 하시는지…. 할머니 돋보기 안경으로 빨간 볼 드러내고 싶은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 가리고 싶죠. 그래서 이렇게 약간 말로 이슈가 되는 프로그램이 겁나요.
-가장 옆에서 많이 의지가 된 동기가 있다면요?
에이핑크 보미와 배우 박하선이 의지가 많이 됐어요. 하선이는 많이 도와줄 수밖에 없는 모범 우등생이어서 절 챙겨줬고, 하선이 아니었으면 못 견뎠어요. 아마 비호감 테러 수준이었을걸요. 보미는 태권소녀인데 마음이 약하고 겁도 많고, 저와 비슷해요. 겁에 질려서 울거나 그럴 때 저도 겁이 많으니까 힘내라면서 제 감정을 이해해주더라고요. 보미가 착해서 그런 건지 마음에 여유가 있었어요. 다독거려 주는 걸 잊지 못하겠어요. 마음이 통하나 봐요.
-군대 내에서 보고 싶은 사람은 없나요?
소대장님에게 많이 혼났는데 정말 좋고 보고 싶어요. 방송 끝나고 찾아가서 뵈려고요. 의무실 가거나 그러면 되게 예뻐해 주셨고, 다리 아픈데 괜찮으냐고,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정말 좋았어요. 열심히 하다보면 칭찬도 받을 수 있더라고요. 스스로 잘했다, 잘 견더냈다는 생각도 했어요. 저한테 군대 다녀온 것은 좋은 추억인 것 같아요. 지금 가면 좀 더 잘할 수 있어요. 자신감도 생겼고.
-면접에서 결혼 이야기를 하면서 울기도 했었는데 어떤 편집 의도가 있었나요?
편집과 상관없이 그게 전부였어요. 질문이 가슴으로 확 들어와서 1초 만에 무너졌어요. 웃으면서 잘 살았지만 되게 힘들었거든요. 그게 제가 흘린 첫 번째 눈물인데 준비를 안 했던 거죠. 그냥 웃음 포인트로 넘어가서 다행으로 생각해요. 지금은 담대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유연하게 받아칠 수 있어요.
털털하고, 거짓말을 하거나 연기하면 티가 나는 사람이에요. 제 입으로 마음이 여리다고 하면 웃기고, 약해빠진 느낌이죠. 잘 무너지고, 감정이입이 심해요. 겁이 되게 많고요. 눈물도 많은데 밥 먹고 기분 좋으면 되게 밝아요. 한 줄로 담기는 힘든 성격이에요. 그럼 다중인가요? (웃음) 초등학교 때부터 지내온 친구들은 '너 같은 사람은 독특해서 4차원'이라고 하더라고요. 차태현 오빠는 제가 실시간 검색 1위하고 그러면 캡처해서 계속 보내줘요. 마동석 오빠도 응원 많이 해주고요. 주위 분들에게 많이 고맙죠.
군인이나 군대에 대한 생각이 좀 달라지기도 했나요?
군필자들에게 거기에서 1등 한다고, 사회에서 1등도 아니고, 못해도 사회에서 꼴찌는 아니라고 전해주고 싶어요. 그 안의 생활에 갇혀서 나를 평가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군대는 군대일 뿐,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현실과는 다른 세계니까요. 군대를 편법으로 안 가는 것에 대한 관심이 좀 덜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화가 나더라고요. 남들은 가고 싶어서 간 것도 아닌데 돈 내고 안 가려고 하는 모습이요. 그런 의미에서 하루빨리 통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군대 2년 가는 걸 대충 생각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군대 잘못 가면 사람이 달라질 수가 있어요.
-여자들끼리의 의리는 어떤지 궁금해요.
8명이 나오니까 미워하거나 질투하거나 그런 게 염려됐었는데 방송하기 전부터 하나가 됐어요. 정말 앞으로도 각자 인생의 높낮이가 있을 텐데 민감하게 생각하지 말고, 각박한 연예계 생활에서 따뜻하게 지냈으면 해요. 다들 끝나고도 만나자고 하는데 제가 더 괴롭혀야죠. 남자들도 많이 모으고 하는 편이거든요. 한명이 노력하면 나머지도 따라오기 마련이에요. 살면서 앞장서서 전우애를 갚아야죠. 그 때 그 고마움은 잊을 수가 없어요.
-지금까지 예능프로그램 이야기만 했는데, 배우인 강예원 씨는 어떤가요.
사람들과 교감하면서 편안하게 연기하고 싶어요. 진짜 사나이 갔다 와서 다 놨어요. 얼굴에서 다 놨고, 모든 걸 오픈하니까 바라보는 시선도 놓게 돼요. 롤모델은 나탈리 포트만과 연예계에서 의지하고 있는 차태현 오빠죠. 현장에서는 한 장면을 가지고 촬영 때만 열심히 해요. 매분 매초 쫓아다니면서 압박을 받지는 않으니까요. 사람들이 기다려주고 배려해주기 때문에 제 고통쯤은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지만 혼나는 두려움에 밀려나오는 눈물은 다른 경험을 해도 똑같은 것 같아요.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부족하니까 좀 더 시간이 필요해요. 1분 안에 해야 되는 일이 저한테는 3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냥 제 스스로 인정하기로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