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클래식 DJ, 배우 김석훈의 '유쾌한' 외도

[노컷 인터뷰] '제27회 한국 PD대상' 라디오 진행자 부문상 수상, 배우 김석훈

배우 김석훈은 CBS 음악FM(93.9MHz) '김석훈의 아름다운 당신에게' DJ를 맡고 있다. (자료사진)
오전 9시, 라디오를 켜면 어김없이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이 귓가를 울린다. 그리고 그곳에는 배우가 아닌 '명품 DJ' 김석훈이 있다.

김석훈은 2011년부터 CBS 음악FM(93.9MHz) '김석훈의 아름다운 당신에게' DJ를 맡고 있다. 평생 악기를 다뤄본 적이 없을 정도로 '클래식 문외한'에 가까웠던 그는 어느덧 클래식 정기 공연에서 내레이션을 맡고, 직접 컴필레이션 앨범 제작에 나서는 '클래식 전도사'가 됐다.

그의 남다른 클래식 사랑은 드디어 결실을 보게 됐다. 김석훈은 12일 '제27회 한국 PD대상'에서 라디오 진행자 부문상을 수상하게 되는 영예를 안게 된다. 대중적이지 않은 장르로, 쟁쟁한 라디오 프로그램들 제치고 얻은 쾌거다. 최근 목동 CBS사옥에 만난 김석훈도 이에 대한 기쁨을 표했다.

"사실 상이라는 건 연말 시상식 때만 받아봤어요. 보통 상은 흥행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잖아요. 프로그램의 인기를 인정받은 것 같아서 기쁘죠. 특히 PD분들이 직접 선정해주신 상이라 의미가 굉장히 커요. 또 가요나 팝처럼 대중적 장르가 아닌 클래식 프로그램 DJ를 선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열심히 들어주시는 청취자 분들도 정말 고맙고요."

물론 지금은 최고의 DJ로 꼽힐 정도로 자리를 잡았지만, 오랜 시간 배우로 살아온 김석훈에게 라디오 DJ, 그것도 클래식 프로그램을 이끈다는 건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원래 음악을 좋아하긴 했어요. 막연하게 한 번 라디오 DJ를 해보고픈 욕심은 있었죠. 근데 클래식 프로그램이라니. 잘 못 들었나 싶어 제 귀를 의심했어요. (웃음). 사실 아직도 클래식을 잘 몰라요. 7~800년이나 된 클래식의 역사를 제가 다 알긴 힘들죠. 근데 계속 음악을 듣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클래식이란 장르에 빠져들게 되네요."

김석훈은 '친절한' DJ다. 청취자들에게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클래식 곡을 소개할 때도 조금 더 쉽고, 친숙한 전달을 위해 대본에 없는 이야기까지 알아서 덧붙일 정도로 노력을 쏟는 열혈 진행자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아름다운 당신에게'는 청취율이 꽤 높다. 김석훈이 진행을 맡은 후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 청취율 순위에서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본 적이 없다.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회사, 집, 학교, 버스 등 다양한 장소에선 클래식 선율이 흐른다.

"일단 청취자와 눈높이를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클래식 전공자가 아닌 이상 사실 깊게 알기는 어렵잖아요. 또 제가 말하는 것들에 대한 뜻은 알고 있어야 한다고 느꼈죠. 전문가 수준으로 공부한 건 아니고 '알레그로', '안단테'처럼 곡의 빠르기 뜻하는 기본 용어들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노력했어요."

무엇보다 김석훈은 클래식의 대중화에 큰 공을 세우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클래식을 '날씨'에 비유했다. 가요나 팝 음악이 햇살 좋은 날이라면, 클래식은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처럼 특별한 느낌을 줄 수 있는 가치를 지녔다는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이 '이 프로그램 덕분에 클래식이 좋아졌다'는 내용의 사연이에요. 정말 뿌듯했죠. '클래식만 들어라'가 아니라 '클래식도 필요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잘 나가는 가요나 팝송을 들어도 해소되지 않는, 클래식만이 주는 묘한 구석이 분명히 있어요. 인생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 못지않게 뒤를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클래식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사실 배우와 DJ로 함께 살아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김석훈은 "절제해야 하는 생활 패턴이 생겼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지금껏 단 한 번도 지각을 하거나 방송 사고를 내지 않았다. 2013년 KBS 일일극 '루비반지'에 주연으로 출연할 때도 '아름다운 당신에게'를 소홀히 한 적이 없다. 그는 "딱 한 번 잊지 못할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며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전했다.

"9시 방송인데 눈을 떠보니 8시 20분이었을 때가 있었어요. 전날 늦게 잤더니 알람을 전혀 듣지 못했었나 봐요. 제작진은 난리가 났죠. (웃음). 대학로에서 목동까지 40분 정도 걸리는데 정말 부리나케 달려갔어요. 스튜디오에 딱 들어올 때 시작 시그널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헐레벌떡 앉아서 멘트를 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해요."

아찔한 순간도 있었지만, 클래식 음악을 꾸준히 듣는 것이 배우 활동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배우들은 걸어 다니는 '긴장 덩어리'에요. 대사를 계속 외워야 하고, 무언가를 표현해 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럴 때 클래식을 들으면 큰 도움이 돼요. 정말 신기하게도 아이스크림 녹듯 흥분된 마음이 차분하게 내려앉아요. 주변 동료들에게도 추천하고 있어요."

그렇게 '아름다운 당신에게'와 김석훈은 서로 윈-윈(Win-Win)하며 성장 중이다. 김석훈은 올해 계획에 관해 묻자 "DJ로 살아가며 연기하는 게 두렵긴 하지만, 본업인 배우 활동도 충실히 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스튜디오를 떠나는 순간까지 클래식 음악을 더 많은 대중에게 권해주고 싶다고 소망했다.

"클래식이 가진 가치가 있는데 대중에게 저평가되고 있는 게 사실이죠. 우리 마음에 꼭 필요한 영양소라는 걸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언제까지 DJ라는 외도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많은 분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권장해 드리는 게 지금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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