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아픔을 전했던 민중예술의 어머니 '케테 콜비츠' 展

81년생이라 격동의 시대를 몸으로 부대끼며 살지는 않았지만, 민중 판화가라 불리는 오윤(1946~1986)과 화백 이철수(1954~)는 알고 있다.

대학 시절 그들의 작품을 접하면서 내가 겪어보지 못한 시대를 공감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위로받고 있다.

그런 그들이 독일 민중 예술의 어머니라 불리는 케테 콜비츠(KÄTHE KOLLWITZ, 1867~1945)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다.


(유연석 기자)
때마침 지난 2월부터 서울 노원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는 <케테 콜비츠>展이 진행 중이다.

콜비츠는 20세기 동아시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준 서구 예술가로도 꼽힌다. ‘아Q정전’ 등을 쓴 중국의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루쉰(魯迅, 1881∼1936) 역시 콜비츠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의 1970~80년 민중을 외치던 소위 반독재 민주세력에게도 큰 울림을 줬다. 어떤 이들은 누구의 작품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콜비츠의 작품을 사용했다. 콜비츠 작품이 사용된 이유에는 작품 중심에 늘 노동자가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전시의 기획자인 소설가 서해성은 “노동자가 화폭의 중심인 경우는 종종 있지만, 모든 작품의 주인공이 노동자인 경우는 콜비츠가 유일하다”고 평가할 정도로 사회 참여적인 인물이었다고 설명했다.

(유연석 기자)
(유연석 기자)
콜비츠는 평생에 걸쳐 총 275점의 판화를 제작했고, 그 안에 자기 체험적인 고백과 시대를 담았다.

작품은 총 56점으로 구성돼 있다. 모두 일본 오키나와 사키마미미술관의 소장품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몇 차례 케테 콜비츠 전이 열렸지만 이렇게 많은 작품이 온 경우는 흔치 않았다.

전시는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을 기점으로 전쟁 이전과 이후의 작품 군으로 분류돼 있다.

전쟁 전에는 주로 노동자 계층의 고된 노동, 질병 가난과 같은 핍박의 삶을 표현했다. 전쟁 이후에는 아들의 전사라는 역사적, 개인적 경험으로 인해 가난, 죽음 모성과 같은 문제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며 반전과 평화를 주제로 삼았다.

피에타_1937~38_브론즈_38.0 x 28.5 x 39.0cm_일본 오키나와 사키마 미술관 소장. 이 조각의 모본은 로마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 초기 '피에타'(1500년)이다. 콜비츠는 1907년에 피렌체에서 로마를 방문하였는데, 괴로움과 시련을 견뎌왔던 나이 든 콜비츠는 르네상스의 이상화된 모티프에 대하여 다른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모친은 앉아서 아들의 주검을 무릎 사이에 껴안고 있다...'-1937년과 1939년 케테 콜비츠의 일기 중에서-자신의 무릎에 아들의 주검을 올려놓고 슬퍼하는 피에타상의 어머니의 얼굴은 케테 콜비츠 자신을 닮았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제공)
카를 리프크네히트에 대한 추모(In Memoriam Karl Liebknecht)_1919/20_목판_35.0 x 50.0cm_일본 오키나와 사키마 미술관 소장(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제공)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제공)


콜비츠의 작품은 세밀하게 볼수록 좋다. 선 하나하나의 강렬한 힘이 느낄 수 있기에. 하지만 그런 기술적인 것을 꼭 염두하지 않아도 좋다. 작품 그 자체가 주는 메시지에 숙연해질 테니. 전시는 4월 19일까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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