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 '거꾸로 가는 주택시장'…'부익부 빈익빈' 심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기조, 거래량은 급감

이주열 한국은행총재 (자료사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75%로 낮췄다. 사상 최저 금리 시대가 열리면서 주택담보대출이 크게 증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빚이라면 소도 잡는다’는 옛말처럼 이참에 이자가 싼 은행돈을 빌려서 내 집을 장만하는 가구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경제 활성화에 목을 매고 있는 정부 입장에서도 주택거래가 늘어나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얼어붙은 부동산 심리가 살아나지 않으면 정부의 금리 인하정책도 백약이 무효가 될 것이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만 심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특히 폭락한 금리에 현혹돼 대출받아 집을 샀다가는 앞으로 2~3년 뒤에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 전세가 비율 상승폭 둔화…전세, 매매가격 동시 상승세

수도권의 전세 물량이 동이 나면서 전세값이 크게 오르고 있다. 전셋집을 구하지 못한 세입자들은 변두리 지역으로 내몰리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의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은 지난 2013년 1월 평균 62.2%에서 지난해 1월에는 68.3%까지 치솟더니, 마침내 올 들어 지난 1월에는 69.8%로 70%에 육박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이 같은 전세가 비율의 상승폭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년 동기 대비 전세가율 변화율은 지난해 1월 6.15%p에서 10월에는 2.04%p로 줄어든 뒤, 올해 1월에는 1.46%p 감소했다.

이는 전세가격이 오르면서 덩달아 매매가격도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분모와 분자가 동시에 커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집 없는 무주택 서민 입장에서는 전세값과 매매가격이 동시에 오르면서 주거 부담이 그만큼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동산 자료사진
◇ 정부 정책과 반대로 움직이는 주택시장…소비심리 회복이 중요

이에 대해 정부는 기준금리가 1.75%까지 떨어진 지금이 내 집 장만의 적기라며 대출을 받아 집을 사라고 은근히 부추기는 분위기다.

그런데, 국내 주택시장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부 정책과 정반대로 움직였다.

기준금리가 떨어지면 거래량이 줄어들고, 기준금리가 오르면 거래량도 늘어나는 전혀 딴판인 상황이 연출돼 왔다.


국토교통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5.25%를 기록했던 2008년 7월에 전국 아파트 거래량은 8만 3,977건이었다.

이어 불과 7개월 후인 2009년 2월에 기준금리가 2%까지 급락했지만 아파트 거래량은 5만 9,841건으로 오히려 급감했다.

이 같은 거래량 감소세는 2011년 6월에 기준금리가 다시 3.25%로 높아지면서 거래량이 7만 3,881건으로 늘어났다.

이후 기준금리가 미세한 조정을 거치면서 2014년 10월에 또다시 2%까지 떨어졌지만 전국의 아파트 거래량은 7만 8,395건으로 크게 변하지 않았다.

급기야, 기준금리가 1.75%까지 추락하기 바로 직전인 지난달 전국의 아파트 거래량은 5만 7,885건으로 급감했다.

이런 현상은, 금융위기 이후 국내 부동산 시장에 대한 기대심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주택가격이 이제 더 이상 오르지 않을 것인데, 금리가 떨어졌다고 해서 굳이 내 집을 살 필요가 있느냐는 부정적인 심리가 자리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한국감정원이 전국의 공인중개사 375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주택매매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42.4%에 불과했다.

호가만 상승하고 실거래가격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거나 오히려 호가가 하락할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56.8%에 달했다.

한국감정원 이준용 박사는 “기준금리가 떨어져도 주택거래량이 늘어나지 않는 것은 투자심리가 위축됐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치가 높아지지 않는 한, 정부의 금리 인하 정책은 결코 부동산 경기를 살릴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 저금리 정책...주택 부익부 빈익빈 심화 우려

부동산 전문가들은 금리조정을 통한 주택정책이 부익부 빈익빈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기준금리 인하 이후, 여윳돈을 부동산에 투자하는 자산가들이 늘어나면서 토지와 주택 거래량이 1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덩달아 가격도 크게 오르는 추세다.

이들은 앞으로 금리가 다시 올라도 이자 부담이 크게 없다. 부동산 가격이 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시세차익만 누리면 된다.

더구나 이제는 DTI, LTV 규제가 완화된데다 재개발, 재건축 규제도 사실상 해제되면서 주택가격 상승을 억제할 정부 대책이 사라졌기 때문에, 자산가들에게 절대 유리한 상황이다.

그런데, 저금리 유혹에 빠져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한 중산층 서민들은 금리가 인상될 경우 이자 부담에 이른바 하우스푸어로 전락할 수 있다.

집값이 올라도, 이른바 깔고 앉아 살아야 하는 주택을 처분할 수도 없다.

이준용 박사는 “부동산은 단기적인 경기부양 효과가 있지만 지속적인 성장 가능성이 있는 부분은 아니다”라며 “금리는 언젠가 다시 오르게 되는데 시장 흐름이 왜곡돼 결국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선대인경제연구소 선대인 소장은 최근 CBS 시사자키에 출연해 "일본의 경우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고 나서 3-4년 후쯤부터 이렇게 우리처럼 최저금리 만들어지고 가계부채 동원해서 집을 사게 만들었다“며 ”그런데 그 이후로 다시 2차 부동산거품 붕괴가 일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하우스푸어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지난 2012년 이후 분기에 한 번꼴로 부동산 활성화 방안을 쏟아내고, 급기야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인 1.75%까지 떨어지면서, 주택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무주택 서민 입장에서는 금리가 떨어져도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보다는 금리가 언제 다시 오를지 걱정해야 하는 이래저래 힘든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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