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일주년을 맞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30일 기자 간담회에서 지난 1년 동안 “소통에 대한 비판이 가장 아팠다”면서 여담으로 한 말이다.
한은이 3월 기준금리를 시장의 동결 전망과 달리 2%에서 1.75%로 전격 인하하자 일부에서 자동차가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한 것”이라고 비판한 내용을 우스개로 만든 이야기로, 지난 1년 한은의 통화정책을 바라보는 시장의 따가운 시선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이 총재는 취임 일주년 당일인 1일에도 ‘직원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취임 이후 중앙은행에 거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최선을 다해왔지만 그 바람의 무게가 힘겹게 느껴질 때도 적지 않았다“며 고충과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소통부족의 원인으로 ‘불확실성’, ‘외부의 부당한 간섭’, ‘한은의 경제 전망 능력 부족’ 등 세가지로 분석했다.
◇ 불확실성
지난해는 나라 안팎으로 유난히 불확실성이 큰 한해였다. 4월에는 예상치 못한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고, 국제유가도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떨어졌다. 원유가격 급락은 당초 전망했던 물가상승률을 크게 떨어트렸다.
세월호 참사로 소비 등 경제심리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경기도 하락했다.
여기에 세계 주요 국가들의 통화정책은 엇갈렸다. 유럽과 일본은 양적완화를 한층 강화하고, 호주 등 20여개 국가들은 경쟁적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반면 나홀로 경제가 호전된 미국은 양적완화를 중단, 축소하는 정반대의 통화정책을 폈다.
이처럼 대형 변수들이 많았던 만큼 경제전망은 빗나갈 가능성이 높았고, 여기에 근거하는 통화정책도 방향을 잡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최근 옐런 미연준 의장이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기준금리의 방향성을 명확하게 제시할 수 없고, 제시해서도 안된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통화정책의 외압
이주열 총재는 취임 이후 지난해 8월, 10월, 올해 3월 세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하했고, 그 때마다 외부로부터 심한 인하압박을 받았다. 지난달에도 정부와 정치권, 일부 언론들이 노골적으로 금리인하를 압박했다. 결국 금리인하 결정은 한은이 외부 압력에 굴복하거나 코드를 맞춰주는 모양새로 비춰졌다.
이와관련해 이 총재는 “금융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의 언급은 조금 신중해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면서 “그것이 시장에 영향을 주고, 그 다음에 통화정책의 중립성을 의심받는 상황으로 비춰지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유효성이 떨어져서 결과적으로 국민경제에 바람직하지 않은 쪽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평소 신중하고, 차분한 이 총재의 화법을 고려하면 매우 강도 높은 비판이다.
정부나 정치권, 언론 등에서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라고 강하게 요구하면 통화당국은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독자적인 판단에 의해 금리를 변동시켜도 외압에 굴복한 모양새가 되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 중립성이 의심받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과거 실제 외압에 끌려가는 모양새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의도했던 방향과 반대되는 결정을 내리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과 정부는 단기성과에 집착하는 속성을 갖기 때문에 통화정책이 여기에 끌려가면 왜곡될 수밖에 없다. 이는 거품경제나 금융시스템 위기 등의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통화정책의 독립성, 중립성을 법으로 보장하는 것도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서다.
◇ 전망능력 부족
소통부족 문제는 이런 외부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한은의 경제예측 능력이 부족한 데서 비롯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통화정책의 신호는 경제 전망에 근거해서 나온다. 세월호 참사와 같이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돌발변수야 어쩔 수 없지만 그동안 한국은행이 내놓은 경제전망은 시장의 신뢰를 쌓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한은은 당초 지난해 경제성장률을 3.8%로 전망했으나 3.3%에 그쳤다. 특히 4분기는 1%를 예상했으나 0.3%로 추락했다.
2012년 경제성장률은 3.7%로 전망했지만 실제 성장률은 2%에 불과했다.
2013년 한은의 주요 지표를 예로 들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5%로 전망했지만 실제로는 1.3% 증가했고, 설비투자증가율도 2.7%로 예상했지만 실제 증가율은 1.5%에 그쳤다. 민간소비증가률도 2.8%를 전망했으나 1.9% 증가에 머물렀다.
이처럼 정확성이 떨어지는 지표를 근거로 통화정책을 펼쳤다는 것은 잘못될 확률도 그만큼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주열 총재는 이런 문제점을 의식해 경제전망의 정도를 높이는 것이 신뢰와 원활한 소통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각별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통부족에 대한 이 총재 스스로의 분석에는 지난 1년에 대한 반성과 아쉬움, 그리고 외부를 향한 절박한 호소의 의미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