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싣는 순서>
① '예능 대세' 유병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
② 김탁환 "세상은 추리소설처럼 '사필귀정' 아니더라"
③ 세월호 가족에게 '가족'으로 불리는 언론인
④ "1주기 지나면 언론은 또 썰물처럼 다 빠지겠죠"
⑤ "단상 위 대통령과 무릎 꿇은 母…내겐 충격적"
(계속)
"광주민주화운동 때 언론이 침묵했다면 세월호 참사 때에는 야합했습니다. 침묵도 죄인데 정권과 야합해 유가족을 소외시키고 상처를 준 것은 하늘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김환균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은 6일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마련된 CBS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언론에 대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쏟아냈다.
김환균 위원장이 언론이 정권과 야합했다고 보는 첫 번째 이유는 '국민들이 세월호를 빨리 잊도록 국민 정서를 통제하려 했다'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KBS는 뉴스 앵커들에게 검은 양복을 입지 못하도록 했다. 상복을 연상시켜 사회 분위기를 세월호 쪽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유족들이 너무 슬프게 통곡하는 장면이나 격하게 항의하는 장면도 방송에 내보내지 말라고 지시했다. MBC에서는 세월호 참사 관련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던 PD가 '투쟁성이 강하다'는 이유로 제작을 허락하지 않은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1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 MBC에서 PD로 재직 중이었던 김환균 위원장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건 국민 정서를 통제하려고 하는 거구나. 콘트롤타워가 어딘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언론도 이에 야합해 세월호 참상을 되도록 빨리 잊도록 앞장서 유도했다는 겁니다."
김 위원장이 지적한 언론의 두 번째 잘못은 유가족을 비난하고 세월호 침몰 사고가 별것 아닌 것처럼 평가절하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5월 7일 MBC 뉴스데스크의 '분노와 슬픔을 넘어서'라는 리포트였다. MBC 기자회는 당시 성명을 통해 이 기사를 비이성적, 비상식적인 것은 물론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는 '보도 참사'로 규정했다.
슬픔에 빠진 유족들을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민간 잠수사 사망의 원인 제공자처럼 묘사했기 때문이다.
KBS 김시곤 보도국장도 회식 자리에서 '세월호 사고는 300명이 한꺼번에 죽어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많은 것은 아니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져 논란의 중심에 섰다.
김시곤 보도국장의 이같은 발언은 세월호 참사를 단순 해상교통사고로 깍아내리려는 시도로 해석됐다.
세월호 참사를 다루는 한국 언론의 추악한 모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방송과 보수신문들은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를 국론분열의 주범으로도 몰아갔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과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뜻을 함께 한 사람들을 오히려 언론이 집단적으로 왕따시키고 좌파나 불순세력으로 낙인을 찍은 것이다.
"세월호 참사 초기 '전원 구조'라는 오보와 지나친 속보경쟁도 큰 문제였지만 그 이후의 보도 태도도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세월호를 빨리 망각하도록 국민정서를 통제했고 그 다음에는 유가족을 비난하고 소외시켰어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국론분열의 주범으로 묘사했죠. 유가족 입장에서는 참으로 모욕적이고 참담했을 겁니다. 언론을 극도로 불신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나게 됐을까.
김환균 위원장은 "정권의 언론 장악은 짐작이 아니라 현실로 드러나고 있으며 더구나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예전에는 KBS 이사회나 방송문화진흥회가 경영상황 만 감독할 뿐 KBS나 MBC의 방송 내용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방송 내용까지 시시콜콜하게 간섭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김 위원장의 시각이다.
또 정부·여당 추천 이사들이 장악한 이사회는 보도의 독립을 추구할 소지가 있는 인물은 아예 사장으로 선임하지도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연합뉴스 내부 상황에 대해서도 큰 우려를 나타냈다. 박노황 신임 사장이 최근 취임사를 통해 '편집총국장 임면동의제'의 폐지를 시사했기 때문이다.
'편집권 독립의 보루'로 평가 받는 편집총국장제도는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지부장 오정훈)가 지난 2012년 103일 파업을 통해 얻어낸 성과물이다. 편집총국장은 기자직 사원 3분의2 이상이 참여해 유효투표 과반수 찬성을 얻어야 임명될 수 있다.
"이 제도는 노조가 특정인을 사장으로 선임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최소한의 보도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언론의 자유를 앞장서 수호해야할 언론사 수장이 오히려 법적 효력이 있는 단체협약을 무시하고 힘으로 밀어부치려는 시대착오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차분하면서도 신중하게 답변을 이어나갔다. 목소리 톤은 부드러웠지만 세월호 문제를 처리해 나가는 정부·여당의 태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비판했다.
한마디로 세월호 진상규명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마련한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안을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해양수산부가 만든 안을 보면 특별조사위원회를 총괄할 수 있는 '기획조정실장'과 '기획총괄담당관'이라는 자리를 만들어서 모두 정부에서 파견된 공무원이 맡도록 명시하고 있다.
게다가 세월호 참사의 원인 규명을 담당할 조사1과장도 파견 공무원이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조사범위는 '정부조사자료 분석 및 조사'로 대폭 축소했다.
정부 시행령안에 대한 유가족의 반발이 거세지는 시점에 정부가 보상금에 대한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한 것도 유가족에게 모욕감을 주고 본질을 흐리는 악의적인 것이라고 김 위원장은 지적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수사를 받아야할 사람을 되려 수사관으로 임명한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당연히 '세월호 진실 규명을 막으려고 만든 안이구나'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철저한 조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국민 앞에 약속했습니다. 저는 박 대통령이 진실 규명에 대해 분명한 의지를 가졌다고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밑에서는 대통령의 뜻을 오해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말이 나온 김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 그는 지난 2008년 발생한 쓰촨성 대지진 당시 원자바오 총리의 행보를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시 원자바오 총리는 여진이 계속 되고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잔해더미 현장을 찾아 강인한 모습으로 복구를 독려하면서 이재민을 위로했다.
하지만 한 소녀의 눈물 앞에서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울지마라, 나와 중국정부가 너를 꼭 지켜줄거야."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얘들아 할아버지가 왔다. 총리가 왔다. 조금 만 더 참아라"
그의 이런 진솔한 모습은 중국 전역을 감동시켰고 세계 여론의 호감도 얻어냈다. 김환균 위원장이 주목한 것은 피해 주민의 아픔을 함께 나누려는 그의 '공감능력'이었다.
"원자바오는 잔해더미를 찾아 '얘들아 할아버지가 왔다' 이렇게 말했거든요. 총리가 왔다고 해서 죽은 아이가 벌떡 일어나 살아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나도 당신들만큼 애가 탑니다'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한 거죠. 저는 이게 국가지도자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국민들이 황망하게 죽어갔을 때 함께 아파하고 눈물 흘려 주는 것. 그리고 경제 논리를 떠나 마지막 시신 한 구까지 반드시 찾아내 그를 기억해주는 것이 국가지도자가 할 일입니다."
하지만 그의 눈에 비친 박근혜 대통령은 원자바오와 달랐다. 세월호 침몰사고 다음날 오후 박근혜 대통령은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방문했다.
단상 위에 마이크를 들고 서있는 박 대통령 앞으로 한 어머니가 다가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우리 아이를 제발 살려주세요"라고 애원했다. 어머니 주변에는 건장한 체격의 경호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저는 그 장면이 충격적으로 다가왔어요. 원자바오 총리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요. 당연히 단상 아래로 뛰어내려와서 그 어머니를 끌어 안고 함께 울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 박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못할까요. 일부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정말 '공감능력'이 부족해서 그런걸까요. 그 점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진심이 담기지 않은 퍼포먼스나 이벤트를 하는 것은 유가족의 상처만 덧낼 뿐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특별법 정부 시행령안을 즉각 폐기하고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 틀을 잘 만들어 주는 것이다.
"지금처럼 유가족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시행령을 던져 놓고 대통령이 어떤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국민들은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대통령과 정부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분명한 진상규명 의지가 있구나'하고 국민들이 믿을 수 있도록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밖에는 신뢰를 얻을 방법이 없습니다."
전국 언론노조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곧 토론회를 준비 중이다. 토론회 주제는 '세월호 1년, 기레기는 사라졌는가'로 정했다.
세월호 보도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고 왜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말이 등장했는지도 조명한다. 그리고 '기레기'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진지하게 모색할 계획이다.
또 오는 16일에는 안산분향소를 찾아 희생자들에게 참배하고 언론인들의 반성과 앞으로의 각오를 담은 '세월호 1주년 언론인 선언문'도 발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공정보도를 위한 모니터링도 대폭 강화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언론노조 산하 지부나 조합원들도 비판해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한국 언론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건전한 토론"이라는 것이 김 위원장의 생각이다.
최근 인터넷에 유출된 한 종편사의 업무일지와 관련해 '내용이 사실이라면 해당 종편의 허가를 취소할 수도 있는 중대 사안'이라며 방송통신위원회에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4월 16일 이후 대한민국 언론은 전부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와서 유가족들에게 무슨 말이 위로가 되겠어요. 언론노조도 죄인된 심정으로 정말 참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가족과 실종자가족이 바라는 진상 규명과 선체 인양을 위해 언론노조도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다하겠습니다."
1987년 MBC에 입사한 김환균 위원장은 2008년 8월부터 2010년 3월까지 'PD수첩' 책임 PD였다. 당시 '용산 참사, 왜 그들은 망루에 올랐을까', '봉쇄된 광장, 연행되는 인권', '4대강과 민생예산' 등 MB정권에 대한 날이 선 비판을 가했다.
책임 PD에서 물러난 후 1년 만인 2011년 3월 'PD수첩' 일선 PD로 복귀했으나 2012년 파업 후 'PD수첩'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11월에는 비제작 부서인 경인지사 성남용인총국으로 발령이 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는 CBS 노컷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했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한국 언론에 대해서는 '정권과 야합', '하늘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격한 표현을 동원하며 매섭게 비판했다.
그는 "대한민국 언론의 공정보도 시스템은 무너졌다"고 진단하면서 "언론사 노조가 다시 예전처럼 공정보도의 중심에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환균 위원장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