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타임이 끝나고 경기가 재개될 때 공격제한시간은 줄어든 14초로 맞춰져 있었다. SK 코치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으나 경기는 그대로 진행됐다. 결국 SK의 승리로 끝났다.
SK 코치들은 경기가 끝나고 신동찬 감독관을 찾아가 당시 상황에 대해 물어봤다. 감독관은 "종료 2분을 남기고 작전타임을 부르면 공격제한시간이 14초로 세팅된다. 룰 북에 그렇게 나와있다"고 설명했다.
프로농구는 2014-2015시즌부터 국제농구연맹(FIBA) 규정을 채택했다. 현장에서 수많은 FIBA 경기를 지켜본 기자 역시 의문이 들어 가서 물었다. 같은 대답을 들었다. 단호한 어조로 "가서 룰 북을 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홈 구단 관계자에게 룰 북을 빌려 자세하게 살펴봤다.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없었다.
한참이 지나 신동찬 감독관이 SK 코치들을 만나 실수를 인정했다. "주심이 다가와 14초로 세팅해야 한다고 말해서 그대로 했다. 심판과 나의 실수가 맞다"고 인정했다. KBL의 고위 관계자도 "경기 운영의 실수가 있었다"고 밝혔다.
SK에게 남은 공격제한시간의 의미가 크지 않은 상황이었다. 2점차로 뒤진 KGC인삼공사는 경기가 재개되자마자 반칙작전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경기는 결국 SK의 승리로 끝났다.
그런데 만약 동점 상황이었고 SK가 어떻게든 공격을 성공시켜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줄어든 공격제한시간은 경기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잘못된 규정 적용에도 큰 탈 없이 아찔한 순간을 넘긴 감독관과 주심은 며칠 후 다시 현장에서 아무 일 없었다는듯이 자기 일을 했다. KBL은 어떠한 징계도 내리지 않았고 발표도 없었다. 그저 아무 일 없었다는듯이 넘어가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기준이 흔들린 2014-2015시즌
프로농구는 콘텐츠다. 농구 경기는 팬에게 팔아야 하는 상품이다.
프로농구를 한정식 코스 요리로 비유해보자. 일단 음식이 맛있어야 잘 팔린다.
주방 현장에서는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내놓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손님의 입맛을 돋구기 위해 품질과 제공 순서를 세심하게 따진다. 그런데 업체가 요리를 제공하는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누구는 메인 요리부터 받고 누구는 디저트부터 받는다. 손님은 혼란을 느낀다. 그 모습에 현장에서 요리를 만드는 주방장도 불만이 쌓인다.
2014-2015시즌 프로농구의 풍경이다.
모든 팬이 농구 전문가는 아니다. 최소한의 룰만 이해하고 경기장에 오는 팬들도 많다.
(한 지인은 처음 가보는 야구장에서 2이닝 정도 경기를 지켜보다 "이거 윷놀이와 비슷하네?"라는 깨달음(?)을 얻더니 이후 즐겁게 야구를 관람했다. 농구는 공을 던져 공중에 떠있는 바구니에 담는 운동이다. 농구의 창시자 제임스 네이스미스 박사의 '오리지널 룰'만 이해해도 즐겁게 농구 경기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KBL은 농구 팬들에게 "전문가가 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김영기 총재가 부임하고 이성훈 경기 이사, 이재민 사무총장의 고위층이 구축된 올 시즌 현장에서 팬들이 감독이나 선수가 항의하는 장면을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워졌다.
프로농구 사상 초유의 기록원 자진 퇴장 해프닝을 불러 일으킨 '조건부 작전타임'도 그렇고 시즌 내내 논란을 일으켰던 언스포츠맨라이크-1(U-1) 파울도 그렇다.
챔피언결정전을 통해 '조건부 작전타임'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조건부 작전타임'에 대한 감독관마다의 이해, 규정 적용이 천차만별이었다.
(미국프로농구(NBA)나 과거 KBL에서는 경기 도중 선수가 언제든지 작전타임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FIBA에서는 득점이 성공하거나 공이 코트 밖으로 나가는 등 '볼 데드' 상황에서만 작전타임을 요청할 수 있다. 따라서 벤치는 다음 상대의 공격이 성공할 경우 혹은 상대의 자유투가 들어갈 경우를 가정해 작전타임을 미리 요청해놓을 때가 많다. 그런데 A팀이 '조건부 작전타임'을 걸었고 B팀의 자유투가 들어가지 않았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감독관은 첫 번째 '볼 데드' 상황에서 A팀의 작전타임을 선언한다. 예약해놓지 않았냐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감독관은 상황이 지나갔다며 작전타임을 취소시킨다)
KBL은 '조건부 작전타임'을 권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팀의 공격이 성공됐다고 가정하자. 실점한 팀의 선수가 베이스라인 선 밖으로 나가 공을 잡고 다시 안으로 넣어 경기를 재개하기까지의 시간은 불과 몇 초다. 이 짧은 시간 안에 작전타임을 부를 것인지 여부를 본부석에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
작전타임 요청이나 선수 교체는 '볼 데드' 이후에 벌어진다. FIBA 규정이다. 경기의 흐름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중요한 변수들이다. 그런데 적용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때를 놓치기가 부지기수였다. 벤치와 본부석은 한 시즌 내내 이를 두고 다퉜다.
U-1 파울에 대해서는 두 말 하면 입 아프다. 요지는 이렇다. "아니, 수비수가 이미 백코트를 했고 속공을 막을 준비가 됐는데 중간에서 벌어지는 반칙에 U-1을 불면 어쩌자는 것인가", 한 시즌 내내 현장에서 들었던 말이다.
U-1 파울은 알버트 아인슈타인 박사가 논문을 발표할 당시의 일반 상대성 이론과 비슷하다. 아인슈타인 박사 본인과 일부 물리학자들 외에는 누구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니까, 과연 KBL은 U-1 파울의 기준을 현장과 팬들에게 충분히 이해시켰는지 묻고 싶다.
◇'New'보다는 'Execute'에 신경 쓰자
FIBA 규정의 전면 도입, 앞으로 시행될 외국인선수 2명 동시 출전 등 작년에 자리 잡은 KBL의 현 집행부는 농구 경기에 박진감을 더하고 인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반응은 엇갈리지만 KBL이 깊은 고민에 빠져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만약 그 과정이 합리적이라면 문제가 안된다. 프로농구의 현 주소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시도해봐야 할 처지가 맞다. 커미셔너의 권한도 존중받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일단 시행하기로 결정된 사안에 대해서만큼은 빈틈없이 일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에 시행될 사안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2014-2015시즌 KBL의 행정은 합격점을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KBL이 야심차게 내놓은 여러가지 방안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혼선이 늘었고 불만은 나날이 쌓여갔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작년 10월21일 현장에 있었던 한 관계자의 말이다.
"규정이 바뀌면 어떻게 바뀌는 것인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프로 팀들이 시즌 전에 연습경기를 할 때가 좋은 기회가 아닌가. 그때 연맹이 관계자들을 보내 충분히 설명하고 새로운 규정에 맞게 경기를 해보는 기회가 더 많았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연맹 소속 심판을 보내 새로운 규정 하에 연습경기를 치르게 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달라진 규정 안에서 논란의 소지가 될만한 새로운 규정을 충분히 파악하고 대처해 현장과 팬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기울였는지 궁금하다.
고루한 정치인이 아니라면 새로운 시도나 파격적인 방안을 앞세워 '우리가 이만큼 노력하고 있다'고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출 이유가 있을까. 일단 하기로 한 내용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