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경남기업 수사를 받다 숨진 고 성완종 전 회장의 옷 속에 금품 상납 내역을 적은 것으로 보이는 메모지가 발견됐을 때까지만 해도 수사 착수에는 다소 소극적이었다.
김진태 검찰총장도 지난 10일만해도 "메모지 작성 경위 등을 확인하라"는 원론적 지시를 내리는 데 그쳤다.
그러다 주말을 지나 내부 분위기가 급변해 검사장급을 축으로 하는 특별수사팀까지 꾸리게 된 것이다.
이는 메모를 뒷받침하는 고 성완종 전 회장의 음성녹취록이 언론사에서 공개되고, 주변 인물들이 잇따라 증언에 나서면서 의혹이 확산되는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
대검 고위 관계자는 12일 "지금 분위기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지 않느냐. 그런 국민적인 여론이나 언론 보도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내부 분위기를 설명했다.
여권에서 검찰에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며 발빠르게 대응한 것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차라리 검찰 수사를 통해 의혹을 해소하는 것이 여론에는 낫다고 판단해 일종의 수사 지시를 내린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이날 오전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은 대한민국 검찰의 명운을 걸고, 좌고우면하지 말고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고 철저한 수사를 해달라"고 당부했다.
김 대표의 기자회견이 있던 오전에 대검 간부들이 특별수사팀을 구성하기로 의견을 모았으며, 오후에 곧바로 검찰총장이 주재하는 간부회의를 통해 최종 결정됐다.
검찰이 여권의 하명(下命)을 받았다는 의심이 들 만큼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김 대표의 발언이 수사팀 착수에 영향을 미쳤냐는 질문에 검찰 고위 관계자는 "(김무성 대표의 발언도) 그런 상황 중에 '원 오브 뎀'이라고 할 수 있다"며 "언론 보도 상황, 정치권의 움직임, 국민들의 관심 이런 것들이 여러가지로 고려 대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검찰의 이같은 결정 패턴은 과거에도 반복됐다. 검찰은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이 "사이버상 명예훼손이 도를 넘었다"고 발언한 직후 관련 전담팀을 꾸려 비판을 받았다.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문건 의혹 수사 때도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청와대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 행위", "찌라시 성격의 문건" 등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내리는 듯한 발언을 하고 검찰이 이에 따르면서 중립성이 훼손됐다는 지적이 일었다.
검찰의 특별수사팀 구성 배경이 여권의 수사 요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같은 '하명'에 대한 의구심이 반복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에 대해 또다른 검찰 관계자는 "김 대표 발언과 관계없이 여론이나 외부 상황적인 측면이 수사를 착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한 것이다"며 "검찰 내부의 스케줄대로 진행한 것이다"고 해명했다.
이날 대검 간부회의에서는 특별수사팀의 성격과 규모를 두고 일부 반대 의견이 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에 참석한 일부 간부들은 특별수사팀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을 반대했으며, 경남기업 수사를 담당하던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그대로 수사를 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다수는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특별수사팀이라는 용어를 내걸고 검사장을 팀장으로 세워야 한다는데 동의, 18기 문무일 검사장을 필두로 하는 수사팀이 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