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신 사망?" 워워, 이제 그만하고 야구해야죠

[임종률의 스포츠레터]

'이제 그만 야구로 승부하자' 지난 12일 롯데 선수들이 한화와 홈 경기에서 5회 황재균(오른쪽)이 빈볼을 맞자 그라운드로 뛰어나와 상대와 대치하는 모습. 가운데 사진은 한화 김성근 감독.(자료사진=롯데, 노컷뉴스 박종민 기자)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시즌 초반을 강타한 건 어쨌든 지금까지는 '빈볼 논란'입니다. 지난 12일 롯데-한화의 사직 경기에서 나온 빈볼과 벤치 클리어링 사태가 촉발시킨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습니다.

이날 롯데 황재균이 4, 5회 연속 한화의 고의성 짙은 투구에 맞으면서 두 팀이 벌인 그라운드 대치 상황에 야구판은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크게 지고 있는 팀을 자극하지 않는 불문율이 있다지만 한화가 다소 과민 반응을 보인 게 아니냐는 여론이 우세합니다. 대량 득점이 집중되는 빅이닝이 속출하는 이 타고투저의 시대에 과연 예전 불문율을 적용하는 게 옳은 것인가 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경기 후 한화 벤치를 향한 롯데 이종운 감독의 작심 발언은 더욱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례적으로 빈볼 사태에 감독이 입을 연 데다 김성근 한화 감독을 겨냥한 공격적 멘트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한화와 김 감독은 궁지에 몰렸습니다. "빈볼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는 김 감독의 해명에도 이어진 여론의 집중 포화에 한화는 백기를 들었습니다. 빈볼을 던진 이동걸의 인터뷰 기사까지 나오는 상황에 한화는 구단에 대한 인터뷰를 당분간 자제하기로 했습니다. 현 시점에서는 어떤 해명도 물이 아닌 기름이 될 것이 뻔하다는 판단이었을 겁니다.

날선 비판이 이어진 가운데 일부 팬들의 돌멩이는 굉장히 크고 강도가 세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멍만 들 정도가 아니라 뼈가 부서질 만큼 세찼습니다. 상대 타자를 맞추더라도 공이 엉덩이나 허벅지 등 살집이 있는, 그나마 부상이 덜한 쪽을 향해야 한다는 불문율을 넘어서는 돌직구가 적지 않았습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한 기사에 달린 댓글 중 일부는 도를 넘었습니다. 감독 사퇴 요구 발언은 그나마 양반에 속합니다. 야구 팬으로서 충분히 개진할 수 있는 의견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 정도가 아닌, 수위를 넘어도 한참 넘은 글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모 사이트에서는 김성근 감독의 사망일을 2015년 4월 13일로 적시해놓기도 했습니다. 네티즌들이 논란 중인 인물에 관한 문서를 백과사전 식으로 소개하는 페이지인데 생존 중인, 게다가 현재 활동 중인 인물을 죽은 사람으로 기술하는 것은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직 창창한데...' 이번 빈볼 사태가 확산되자 모 사이트는 김성근 감독을 소개하면서 사망일을 2015년 4월 13일로 표기하기도 했다.(자료사진=해당 홈페이지 캡처)
물론 한화가 던진 빈볼의 정당성을 옹호하거나 그 입장을 비호할 뜻은 전혀 없습니다. 롯데가 불문율을 어긴 것인지 애매한 상황에서 던진 빈볼은 분명히 지나친 부분이 있고, 더군다나 황재균을 두 번이나 맞힌 장면에서는 저 역시 눈살이 찌푸려졌던 터였습니다. 여기에 한화 주장 김태균이 다음 회 교체된 부분은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왕성한 행보를 이어온 현직 사령탑을 죽은 인물로 보는 등의 도를 넘은 반응은 역시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물론 야구 사령탑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뜻을 사망일로 표기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해당 페이지는 사망일 위에 김 감독의 생년월일을 명시해놓아 그렇게 보기도 어렵습니다.)


한화와 김 감독은 그제부터 오늘까지 충분히, 아니 차고 넘치도록 얻어맞았습니다. 연이은 접전에 지친 선수단이 예민해진 끝에 발생한 빈볼 사태의 후폭풍을 뼈저리게 경험했을 겁니다. 특히 어제는 KBO 리그 경기가 없어 더 무수히 많은 돌을 온몸으로 받아냈을 겁니다.

사실 빈볼 사태에 이 정도로 비판이 쏟아진 사례도 드물 겁니다. 항상 이슈를 몰고 다니는 김성근 감독이기에 더 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평소 확고한 야구 철학과 스타일로 팬들 사이에서도 아군과 적군이 확연하게 갈리는 김 감독인 까닭입니다. 게다가 지난 세월 큰 점수 차의 도루와 번트 등 불문율을 깨는 듯한 김 감독의 발언이 있었기에 더 큰 돌멩이가 날아왔을 겁니다.

'몽땅 다 나왔네' 12일 사직 경기에서 그라운드 대치 상황을 벌이고 있는 롯데-한화 선수들.(자료사진=롯데 자이언츠)
이종운 롯데 감독은 12일 경기 후 한화에 대해 "우리 팀 선수를 가해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도 "야구로 승부하자"고 강조했습니다. 빈볼 사태에 대해 엄중 경고를 하는 동시에 경기 외적이 아닌, 야구 자체로 승부를 보자는 뜻입니다. 또 오늘 언론을 통해서도 "너무 이슈화했는데 경기는 경기"라고도 했습니다. 어제 김 감독도 후배의 직격탄에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야구로 승부했으면 한다"고 맞받았습니다.

두 감독의 말처럼 이제 빈볼이라는 나무에서 벗어나 야구라는 숲 전체를 볼 때도 됐습니다. 이미 씹고 뜯고 핥기까지 충분히 발라냈다면 이제 새롭게 펼쳐질 야구의 참맛을 느낄 때입니다. 휴식일은 지났고 오늘부터 또 새롭고 재미있는 주중과 주말 6연전이 펼쳐지니까요.

롯데와 한화도 지난 주말의 우여곡절을 넘어 새로운 경기를 준비했을 겁니다. 롯데는 지난해에 이어 정규리그 3위를 달리는 경남 라이벌 NC를, 한화는 통합 4연패의 최강 삼성을 각각 홈으로 불러들입니다. 지난 일을 신경쓰기에는 강적이 눈앞에 있습니다.

우리도 빈볼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다시 야구의 세계, 야구의 재미에 빠져들 시간이 왔습니다. 경기가 없던 월요일의 지루함을 잊게 해준 것은 고마운 일이나 그 때문에 정작 야구의 참맛을 잊게 한다면 그것 또한 민망한 일이 될 겁니다. 김성근이 죽었다? 워워, 험악한 말들의 투석전은 이제 그만하고 야구를 즐겨야죠.

'야구로 승부하자' 롯데 이종운(왼쪽), 한화 김성근 감독은 빈볼 시비 이후 오는 5월 1일부터 대전에서 맞닥뜨린다.(자료사진=롯데, 한화)
p.s-이번 레터에 요즘 모 맥주 광고에 나오는 카피 '물타기'를 한다는 돌직구가 날아올 수 있을 겁니다. 맞습니다, 맞고요. 다만 특정팀과 특정 인물을 위한 물타기는 절대 아닙니다.

현재 우리 야구판의 물은 독성이 너무 강합니다. KBO 리그의 인기가 높아지다 보니, 또 각 팀을 응원하는 팬들의 충성심이 강하다 보니 독기가 너무 성합니다. 야구의 중독성으로 볼 수 있겠지만 그 독기를 조금이나마 풀어보고자 물을 타봅니다.

하나의 주제에만 고여서 침잠해진다면 독성은 더 강해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 물을 마신다면 누구 하나가 아닌 KBO 리그 전체의 사망일이 올 수도 있을 겁니다. 앙금은 잠시 가라앉혔다가 물이 맑아진 다음 다시 일으켜도 될 겁니다.

한 야구인은 이번 사태에 "기왕에 벌어진 일에서 굳이 긍정적인 의미를 찾자면 스토리텔링이 부족한 KBO 리그에 하나의 얘깃거리를 안겼다"고 했습니다. 향후 롯데-한화의 경기가 KBO 리그를 대표하는 라이벌 대결이 될지 누가 압니까. 그때 이번 사태를 안주 삼아 물타지 않은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즐기면 재미는 죽지 않고 펄펄 살아 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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