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드러진 벚꽃 속 '노란 리본'…세월호를 기억하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나흘 앞둔 지난 12일 인천 남동구 인천대공원에는 만개한 벚꽃을 즐기려는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바람에 날려 꽃비로 변했고, 꽃잎은 나풀거리며 땅으로 떨어졌다.

세월호 현수막
인천대공원 길가에 노랗게 피어난 개나리 옆 가로수에는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가 기획한 노란 현수막이 걸렸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리본' 위에는 시민들의 이름이 수놓여 있었다.

또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한 대한민국의 시작입니다!'와 '세월호 인양으로 철저한 진상규명!', '벌써 1년…, 진실을 인양하라' 등 참사를 추모하는 글귀가 적힌 현수막도 바람에 펄럭였다.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났지만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려는 시민들의 움직임은 현재진행 중이다.

'정의와 진리가 바로 선 사회를 원합니다'는 현수막을 내건 정혜진(40·여) 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둘째 딸이 입학한 초등학교 앞에서 교통지도를 하는 녹색 어머니회에 누구보다 열심히 참석하기 시작했다.

정 씨는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6개월 동안 매일 같이 교통 지도에 나섰다"며 "세월호 참사 이후 주변에서 얼마든지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다른 부모님도 비슷한지 참여율도 높아졌다, 정지선이나 교통 신호를 지키는 사람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이의 같은반 친구들과 학부모들이 함께 등굣길에 노란 리본을 나눠주는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은평지역사회네트워크는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라는 북콘서트를 열고 유가족과 책 저자, 시민들과 함께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시민들은 유가족의 이야기에 같이 가슴 아파하며 눈물을 훔쳤다.

사회복지사 우은주(39·여) 씨는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도록 차량과 가방에 노란리본을 달았다"며 "진실이 규명되지 않고 세월호가 정치로 이용되는 상황이 너무 가슴 아프고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는 자신이 한탄스럽다"고 말했다.

우 씨는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일처럼 여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촌 조카가 세월호 희생자였다"며 "사람 네명만 건너면 모두 연결돼 있는 우리 사회에서 단원고 학생들은 모두와 연결돼 있는 것 같다"고 울먹였다.

세월호 유가족이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모처럼의 휴일에 아이들과 함께 북콘서트를 찾은 김주영(32) 씨는 "1년이 지난 것이 아니라 지옥 같은 365일이 지났다는 말이 와 닿는다"며 "네살배기 큰 아이와 두살배기 작은 아이 옷과 유모차에 항상 리본을 달고 다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는데 계속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식상해지고 있다"며 "그런 대한민국에 사는 아이 아빠로서 정말 불안하다"고 강조했다.

예일여중 2학년인 허연주(14) 양은 "지난해 5월로 예정된 수련회가 참사로 취소됐다가 올해 부모님 동의서를 받아 다시 가게 됐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허 양은 "참사 이후에 직접 리본을 만들어 가방이나 교실 창문에 달기도 했는데 이제는 참사 얘기를 잘 안 하게 됐다"며 "오늘 행사에서 다시 얘기를 나눌 수 있어 뜻깊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가수이자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인 이지상(50) 씨는 "그동안 먼발치에서 응원했는데 오늘 유가족을 끌어안았다"며 "생생한 아픔의 목소리가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 씨는 "그 전에는 불만이 있어도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는데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가 왜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됐다"며 "스스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으면 세월호가 그냥 묻힐 것 같은 안타까움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월호 참사 추모의 상징이 된 '노란리본'의 디자인은 대학생 연합동아리 'ALT'에서 만들었다.

노란 바탕에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이라는 문구와 리본을 넣은 사진 한 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고, 참사 직후에는 희생자들의 무사 귀환을 염원하는 마음이 담겼다.

노란 리본은 금세 SNS를 넘어 우리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려는 시민들의 삶 속에서 하나가 됐다.

희생자 가족들이 포함된 '4월16일에 약속 국민연대'는 세월호 참사 이후 현재까지 전국 120여 곳에서 촛불 문화제가 열렸고 분향소는 80여 곳에 설치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촛불 문화제에 참여하거나 분향소를 찾았던 시민들은 물론, 시민들의 가슴에 물든 노란 리본 개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대한 목소리가 시간이 지나며 정치권에서 이념 논쟁으로 갈갈이 찢겼지만 국민들 가슴 속에는 여전히 희생자를 추모하고 참사의 기억을 교훈으로 삼자는 분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시민들의 참여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추모의 바탕에는 '공감'과 '공동체 의식'의 정서가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영남대 심리학과 최호선 교수는 "사람들은 서로 연결돼 있는데 심리학에서는 이를 '공감'이라고 한다"며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같이 울며 자신의 고통이 되살아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어 "인간 심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공감하는 수준은 비슷하다"며 "그것 자체가 사람됨의 도리"라고 강조했다.

전북대 사회학과 설동훈 교수는 "보통 공동체 의식은 '붉은 악마'와 같이 스포츠 경기 외엔 잘 나타나지 않는데 세월호 참사의 경우 주목할 만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설 교수는 "참사 후 정부의 체계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해 희생자들에 대한 문제가 결코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니라 나의 문제라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며 "이 때문에 공동체 의식이 마련돼 국민 모두가 가슴아파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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