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토해내세요"…세월호 아픔 치유하는 공연 무대에

[문화연예 세월호 기획⑯] '델루즈(Deluge) : 물의 기억' 초연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문화·예술·언론·연예계에서도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CBS 노컷뉴스 문화연예팀이 '세월호 연속 보도'를 마련했습니다. [편집자 주]

<기사 싣는 순서>
① '예능 대세' 유병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
② 김탁환 "세상은 추리소설처럼 '사필귀정' 아니더라"
③ 세월호 가족에게 '가족'으로 불리는 언론인
④ "1주기 지나면 언론은 또 썰물처럼 다 빠지겠죠"
⑤ "단상 위 대통령과 무릎 꿇은 母…내겐 충격적"
⑥ 배우 최민수, "세월호 참사는 미래에 대한 수장식"
⑦ '세월호 1주기'…다큐 영화 '다이빙벨'이 남긴 것
⑧ 형제자매들…"부모님 앞에서 슬픈 내색 못해요"
⑨ [르포] '아고라' 된 광화문 광장…꿈틀거리는 시민들
⑩ 배우 정진영 "세월호는 '비극'…유가족 발언 '경청'해야"
⑪ '표현의 자유'…세월호와 함께 침몰하다
⑫ '제자리서 맴맴' … 세월호 이후 '재난보도'는 그대로
⑬ "세월호를 연극으로? 도저히 못하겠더라"
⑭ 임형주 "세월호 1주기, 발언 주저하는 상황 슬퍼"
⑮ '추적 60분' PD "그 분들은 매일 4월 16일입니다"
⑯ "슬픔 토해내세요"…세월호 아픔 치유하는 공연 무대에
(계속)

세월호 참사 추모공연 '델루즈: 물의 기억' 연출가 겸 출연배우인 제레미 나이덱. 사진=서울문화재단 제공
서울문화재단 세월호 참사 추모 공연 '델루즈(Deluge) : 물의 기억'이 16일부터 25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오른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과 슬픔을 특별한 대사 없이 소리와 몸짓만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세월호 1주기에 맞춰 공연하기 위해 새롭게 제작한 이 작품은 연출가 겸 배우 제레미 나이덱(32)을 비롯 호주(에이미 볼슈타인, 새미 윌리엄스, 엘렌 리스)와 한국배우(탁호영, 박영희, 권영희, 노제현) 4명씩 총 8명의 배우가 출연한다. 살풀이, 판소리 장면 등을 삽입해 한국 특유의 한과 신명을 풀어냈다는 점이 흥미롭다.

연출가 겸 배우 제레미 나이덱은 "재난이 닥쳤을 때 예술가의 역할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을 즉시 마련해주는 거"라며 "세월호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되돌아보고, 그 비극을 잊지 말자는 의미를 담은 작품"이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 '델루즈(Deluge) : 물의 기억'은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공연인데

제레미 나이덱: 지난 2011년 2월 호주 브리지번에서 대홍수가 발생했어요. 당시 브리지번에 살던 저는 대홍수를 직접 목격했죠. 몇 개월 후 대홍수로 실종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공연 '델루즈'(Deluge: 대홍수)를 제작했어요. 지난 2010년부터 문래예술공장이 진행해온 '한국-호주 예술가 공동창작 워크숍'을 통해 완성된 작품이죠. 이후 '델루즈'(Deluge: 대홍수)는 2014브리지번 페스티벌(9.18)에서 초연했고, 2014서울세계무용축제(10.11), 오산문화예술회관(10.14), 문래예술공장(10.18) 등에서 공연했어요.

서울문화재단 조선희 대표가 문래예술공장에서 공연할 때 이 작품을 보고 "가슴에 깊은 울림을 받았다. 나도 모르게 새월호 참사가 연상된다"며 "수정,보완해서 내년 세월호 1주기에 맞춰 한국관객에게 다시 선보여 달라"고 제안했어요. 그래서 지난 6개월간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작품 '델루즈(Deluge) : 물의 기억'을 새로 제작했고, 이번에 남산예술센터에서 초연하는 거죠.

▲ 대사 없이 소리와 몸짓으로 표현하는데 이유가 있나

제레미 나이덱: 이 작품을 처음 구상했을 때 우리 몸과 소리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세상과 보이는 세상을 연결할 수 있을지에 주목했어요. 물론 언어를 사용하면 메시지를 보다 쉽게 전달할 수 있지만 어떤 감정을 느끼기 전에 판단부터 하게 한다는 단점이 있죠. 반면 언어 대신 소리와 몸짓으로 표현하면 관객의 상상력을 증폭시킬 수 있고, 보이지 않는 세상과도 긴밀하게 연결돼요.

▲ 비극적인 사건을 다뤘다. 공연할 때 정신적으로 에너지 소모가 크지 않나

14일 오후 서울 예장동 남산예술센터에서 세월호 1주기 특별기획 ‘델루즈(Deluge):물의 기억’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제레미 나이덱: 비극적인 소재를 다룰 때 배우들도 정신적으로 힘들어요. 세월호 참사를 직접적으로 반추하기 보다는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면서 상상력을 동원하려고 했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말로 전달하면 배우들이 피곤하겠지만 소리와 몸짓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그나마 정신적인 부담이 덜해요.

박영희: 두 달 전부터 하루에 한 끼만 먹고, 평소 즐겨 마시던 커피도 안 마셔요. 체력훈련도 강도 높게 하고요. 작품 연습에 들어간 후 스스로 결심했죠. '애착하는 것을 끊어 보자'. 평소처럼 즐기면서 상실감에 빠진 인물을 표현하려니 미안함이 들었어요. 참사 1주기가 됐지만 유족들은 여전히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잖아요. 배우이기 전에 동시대를 사는 한 사람으로서 이렇게라도 유족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싶었어요.

▲ 총 8명의 배우가 출연한다. 국적과 성별이 4대 4로 이뤄졌다. 의도한 건가

제레미 나이덱: 우연의 일치에요. 이 작품 뿐만 아니라 한국-호주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국적과 성별을 일부러 맞추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작품에서 남녀배우 의상이 비슷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저는 성(Sex)이 아닌 젠더(Gender)의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봐요.

▲ 한국-호주 협업 프로젝트다. 협업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나

제레미 나이덱: 한국과 호주는 작업방식에서 차이가 많아요. 호주는 한 작품을 정식으로 공연장에 올리려면 최소 2~3년 정도 '크리에이티브 디벨럽먼트'(Creative Development: 창작발전 과정)을 거쳐요. 이 기간 동안 작품을 조금씩 발전시켜서 괜찮은 작품이라고 판단되면 정식 무대에서 공연하죠.

반면 한국은 처음부터 완성된 대본으로 연습을 시작하고, 숙성과정을 거치지 않고 두 달 정도 집중 연습한 후 바로 정식 공연에 들어가요. 상이한 작업 방식 탓에 처음에는 많이 부딪혔지만 지금은 서로 편안해요. 한국에서 10년째 작업하면서 드는 생각은 그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이 있다면 언어나 문화적인 차이는 걸림돌이 안 된다는 거죠.

박영희: 5년 전 문래예술공장에서 이 작품에 대한 워크숍을 진행했을 때였죠. 호주 배우들은 대부분 부토(일본 현대무용)를 배웠지만 저를 포함해 한국 배우들은 부토를 경험해본 적이 없었어요. 관객에게 다가가는 방식도 우리 공연예술과는 달라서 부토에 익숙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죠. 이런 시행착오를 거쳐 부토, 판소리, 무예, 발레 등이 결합된 독특한 스타일을 완성했어요.

▲ 극중 살풀이 장면이 나온다. 어떤 의미인가

제레미 나이덱: 이 작품을 시작하면서 한국 특유의 한과 신명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살풀이가 춤의 한 장르로 회자되지만 사실 '마음 속의 한을 풀어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죠. 살풀이 장면에서 배우들이 잡아당기는 흰색 천은 실제 살풀이 할 때 쓰는 천과 비슷해요. 재난이 모든 것을 쓸어가는 순간을 형상화하기 위해 그런 천을 썼죠. 살풀이할 때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는 직접 창작했어요. 노래 안에 가사가 있지만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감정을 가사로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구음에 가깝게 만들었죠.

▲ 재난이 일어났을 때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진=황진환 기자
제레미 나이덱: 재난 시 예술가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을 즉시 마련해주는 거에요. 2011년 브리지번에서 대홍수가 났을 때는 이런 공간이 없었어요. 호주의 백인은 감정을 표현하는데 익숙지 않은데다 치유의 공간마저 없어서 슬픔을 극복하기 더 힘들었죠. 세월호 참사는 아직 해결이 안 됐잖아요.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났는지 되돌아보고 그 비극을 잊지 말자는 의미를 담은 작품이에요.

▲ 위에서 한과 신명(흥)을 언급했다. 한, 신명(흥), 정을 이해하면 한국인이라고 하는데 정이 뭔지 아나

제레미 나이덱: 그럼요. 한국에서 10년 째 작업하면서 한, 신명(흥), 정 등 세 가지 정서를 모두 경험하고 느꼈어요. 저는 멘토이자 한국-호주 협업 1세대인 선배 연출가 故 로저 린드를 통해 한국에 흥미를 가졌고, 대금과 판소리도 배웠어요. 서양에도 카타르시스라는 개념이 있지만 또 다른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한국과 호주 관객이 한, 신명(흥), 정 세 가지 정서를 모두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늘 고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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