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저녁 워싱턴 힐른호텔에서는 언론인과 정치인, 연예인, 스포츠인 등 2천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올해로 101주년을 맞은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우선 최근 2016년 대권도전을 선언한 뒤 '대중 속으로'를 모토로 유세에 나선 힐러리 전 장관을 겨냥해 "나는 한해에 수백만 달러를 버는 한 친구가 있었다"며 "지금 그녀는 아이오와 주의 한 밴 차량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억만장자인 클린턴 전 장관이 최근 갑자기 밴 차량에 올라타 길바닥 대선 유세를 시작한 것을 '서민 흉내내기'로 비꼰 것이다.
다른 민주·공화 대선 잠룡들도 오바마 대통령의 풍자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클린턴 전 장관이 최근 유세에서 오하이오 주 소도시의 멕시코 요리 전문 패스트 푸드점인 치폴레에서 점심을 때우려 들어갔지만 아무도 그의 신분을 눈치 채지 못한 점을 거론하면서 "그것에 지지 않을 사람이 있다. 마틴 오말리는 유세 행사에서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오말리 전 메릴랜드 주지사는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는 민주당 잠룡 중 한 명이다.
또 공화당 출신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을 겨냥해서는 "갈릴레오는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돈다고 믿었다. 그러나 크루즈는 지구가 자기 주위를 돈다고 믿는다"고 비꼬았다.
청중석에 앉아있는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를 가리키며 "도널드 트럼프가 여기 있다. 아직…"이라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 역시 대선 주자로 단골로 꼽히는 인물이다.
이어 오바마 대통령은 자조적 농담도 잊지 않았다. 그는 미국 정부가 이란과 핵협상을 벌이고 있는 도중 공화당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초청해 상하원 합동연설을 갖게 한 것을 상기시키며 "내가 늙기는 한 것 같다. 존 베이너 의장이 벌써 네타냐후 총리에게 내 장례식에 참석해 연설하도록 요청했다"고 농담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코미디언 키건 마이클 리가 오바마 대통령의 '성난 통역사' 루터로 등장해 오바마 대통령의 속마음을 전하며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행사가 시종 유머와 풍자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IS(이슬람국가)에 참수된 제임스 폴리 기자와 이란에 억류돼 있는 제이슨 리자이안 워싱턴포스트 테헤란 주재 특파원 등을 거론하며 언론인의 사명 등에 대해 경의를 표했다.
특히 그는 자신이 리자이안의 형제인 알리에게 "리자이안을 가족에게 안전히 데려다 줄 때까지 쉬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밝혀 뭉클한 순간을 연출했다.
백악관 기자단 만찬은 1920년부터 매년 열리는 워싱턴 언론계의 최대 사교행사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자신과 명사, 현안을 비꼬거나 풍자하는 농담을 하는 전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