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검찰에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렵게 진행되고 있는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지검장) 수사의 독립성을 저해할 수 있어 검찰 내부에서도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 8인의 금품수수 의혹이 중심인 이번 수사를 두고, '사면'으로 시선을 돌리려는 청와대와 여당의 시도에 검찰도 적극 협력하라는 지시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4.29 재보궐 선거를 하루 앞둔 28일 대국민 메시지를 홍보수석을 통해 대신 발표하면서 말미에 성 전 회장의 사면과 관련된 의혹을 언급했다.
박 대통령은 "고 성완종 씨에 대한 두 차례 사면이 문제가 되고 있다"며 "고 성완종씨의 연이은 사면은 국민도 납득하기 어렵고 법치의 훼손과 궁극적으로 나라 경제도 어지럽히면서 결국 오늘날 같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나는 계기를 만들어주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진실을 밝히고 제도적으로 고쳐져야 우리 정치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진실을 밝히는 주체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검찰 수사를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데 청와대도 부인하지 않았다.
김성우 홍보수석은 대통령의 사면 언급이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준 것이 아니냐는 기자들의 지적에 "성완종 메모에 나타난 여러 언론들의 의혹 보도들이 당연히 해소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말씀하신 것이다. 어떤 것이 중(重)하고 어떤 것은 중하지 않게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답했다.
결국 8인 금품수수 로비 외에도 성 전 회장의 사면을 둘러싼 의혹도 검찰 특별수사팀에서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뜻이다.
대통령의 수사 가이드라인 논란이 일회성이 아닌 정권 내내 반복된 문제였기 때문에 일부 침울한 분위기마저 감지됐다.
박 대통령의 발언 직후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답답하다"며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오히려 수사에 오해를 불러일으킬텐데 청와대 내부에서도 소통이 잘 안되는 것 아니냐"고 착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이 관계자는 이어 "수사의 영역에 대해서 청와대에서 언급하는 것 자체가 현 시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대통령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추후 검찰이 관련 수사를 진행한다고 해도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검찰 고위 관계자도 "민감한 시점에서 발언을 하신 것의 진의를 잘 모르겠다"면서도 "선거를 하루 앞둔 시점의 정치적인 수사 정도로 이해하고 싶다"며 말을 아꼈다.
악전고투하고 있는 특별수사팀의 수사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와 함께 실제로 대통령의 발언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반응도 나왔다.
모 검찰 관계자는 "대통령이 진실을 밝히라고 했지, 검찰한테 밝히라고 한 건 아니지 않느냐. 국회나 언론 등 진실을 밝힐 주체는 많다. 되려 그 말 뜻이 무엇인지 청와대에 되묻고 싶어진다"고 말했다.
검찰은 현 정권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청와대 수사 가이드라인 논란에 시달려오며 내상을 입어왔기에 내부 분위기는 더욱 침울한 상태이다.
지난해 박 대통령이 "대통령에 대한 모욕이 도를 넘었다"는 발언을 한 직후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팀이 꾸려져 비난을 받았고, 검찰이 정윤회씨 등 비선라인 국정개입 의혹 문건을 수사하던 중에 대통령이 직접 "찌라시"라며 문건 성격을 규정해 구설수에 올랐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지난달 포스코건설 압수수색 하루 전날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자 김진태 검찰총장이 이를 뒤늦게 알고 크게 우려를 표명했다는 일화가 대표적이다.
청와대나 정부의 잇따른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들이 검찰 조직의 독립성을 저해할 뿐 아니라 수사를 더욱 힘들게 만든다는 데 구성원들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대검 모 관계자는 "검찰은 기소를 전제로 수사를 하는 기관이다. 그런데 요즘들어 자의와는 다르게 검찰 영역이 엉뚱한 곳에까지 뻗치는 것 같다. 조직의 본질을 잃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편, 대통령의 사면 관련 발언에 대해 특별수사팀은 "수사만 생각하고 수사 일정대로 차분히 가고있다"면서도 "단서가 있으면 당연히 수사하는게 특별수사팀의 기본적 의무이다"고 밝혀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성 전 회장은 지난 2002년 5∼6월 회삿돈 16억원을 빼돌려 자민련에 불법 기부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2004년 7월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항소했으나 취하한 뒤 형 확정 9개월 만인 2005년 5월 특별사면을 받았다.
이어 성 전 회장은 2007년 행담도 비리 혐의로 불구속기소돼 2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으나 상고를 포기하고 같은해 12월 특별사면으로 복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