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을 걸으며 '개발' '이주' '세월호'를 기억한다

[문화연예 세월호 기획 20]'안산 순례길' 윤한솔 총연출 "그저 기억만 하는 것은 무의미"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문화·예술·언론·연예계에서도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CBS 노컷뉴스 문화연예팀이 '세월호 연속 보도'를 마련했습니다. [편집자 주]

<기사 싣는 순서>
1. '예능 대세' 유병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
2. 김탁환 "세상은 추리소설처럼 '사필귀정' 아니더라"
3. 세월호 가족에게 '가족'으로 불리는 언론인
4. "1주기 지나면 언론은 또 썰물처럼 다 빠지겠죠"
5. "단상 위 대통령과 무릎 꿇은 母…내겐 충격적"
6. 배우 최민수, "세월호 참사는 미래에 대한 수장식"
7. '세월호 1주기'…다큐 영화 '다이빙벨'이 남긴 것
8. 형제자매들…"부모님 앞에서 슬픈 내색 못해요"
9. [르포] '아고라' 된 광화문 광장…꿈틀거리는 시민들
10. 배우 정진영 "세월호는 '비극'…유가족 발언 '경청'해야"
11. '표현의 자유'…세월호와 함께 침몰하다
12. '제자리서 맴맴' … 세월호 이후 '재난보도’는 그대로
13. "세월호를 연극으로? 도저히 못하겠더라"
14. 임형주 "세월호 1주기, 발언 주저하는 상황 슬퍼"
15. '추적 60분' PD "그 분들은 매일 4월 16일입니다"
16. 슬픔 토해내세요"…세월호 아픔 치유하는 공연 무대에
17. 김미화 "정치인은 말장난…코미디언이 쓴소리
18. '세월호' 직시한 카메라…'진실' 건져 올리는 '진심'
19. 세월호 1년 '비극'…상처 입은 공동체 부둥켜안는 '기록'
20. 안산을 걸으며 '개발' '이주' '세월호'를 기억한다
(계속)

바삐 걷다보면 놓치는 무언가가 있다. 반대로 느리게 걸어야만 보이는 것도 있다.

5월 1일부터 3일까지 열리는 2015 안산국제거리극축제의 61개 작품 중에 ‘안산 순례길’(Camino de Ansan)이라는 작품이 있다. 약 5시간 진행되는 독특한 공연이다.

사실 ‘순례’(巡禮)란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방문한다는 의미로, 종교에서 주로 사용하는 표현이다.

종교의 발생지, 본산(本山)의 소재지, 성인의 무덤이나 거주지와 같이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곳을 방문하여 참배할 때 사용한다.

방점이 ‘방문’ 자체에 있지 않다. 몸소 찾아가는 행위의 이면에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안산 순례길’은 망각에 저항하고 기억하기 위해 ‘행동’(방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렇다면 아티스트들은 안산이라는 도시에 어떠한 의미가 있다고 보았고, 무슨 망각에 저항하고 기억하기 위해 5시간 동안 걸어야 하는 ‘순례길’을 만든 것일까.

윤한솔 연출. (제공 사진)
‘안산 순례길’의 총연출을 맡고 있는 윤한솔 연출(극단 그린피그)은 지금의 안산에 대해 한마디로 “개발독재가 만들어낸 기형적인 도시 형태”라고 정의했다.

“안산은 국가 주도하에 산업발전을 통한 도시개발 정책으로 만들어진 ‘계획도시’입니다. 국내 다른 지역에서 공단지역으로 취업을 위해 이주해 온 노동자들이 도시 발전을 일구어왔고, 지금은 그 자리를 이주 노동자들이 대체하고 있는 곳이죠.”

윤 연출을 비롯해 '안산 순례길'에 참여하는 아티스트들은 안산이라는 도시의 형성 과정을 공부하면서, 그 안에서 ‘도시화’ ‘산업화’ ‘개발’ ‘이주’ 등의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키워드를 발견했고, 이 과정에서 소외된 자는 누구였는가에 주목했다.

아티스트들이 안산에 ‘순례길’을 만든 배경에는 ‘세월호 참사’가 있다.

윤한솔 연출의 말이다. “세월호 참사에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 규제 완화가 있습니다. 결국 행정적으로 노동보다 자본의 편을 들어주면서 일어난 참사라는 거죠. 저는 이게 참사의 본질적인 원인이라고 봅니다.”

세월호는 규정상 화물을 987t만 실어야 하는데 과적 무게만큼 평형수를 덜어 4배 가까운 3608t의 화물을 싣고도 출항허가를 받았다.

29명의 선원 중 15명이 계약직이었고, 특히 핵심인 갑판부와 기관부 선원 17명 중에 12명이 계약직이었다. 세월호 선장 이준석 씨 역시 계약직이었다.

참사의 본질적인 원인에는 이처럼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탐욕이 있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희생자의 대부분이 거주하고 있는 안산 역시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소외된 계층이 밀집된 곳으로 자본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도시라는 점이다.

산업화·자본화가 집약된 국가정책적 계획도시, 노동과 이주의 도시 ‘안산’에 ‘세월호’가 갖는 상징성을 아티스트들은 발견한 것이다.

안산 순례길. (photo by HAKS)
‘안산 순례길’은 안산역에서부터 시작해 물류유통상가(산업화), 원곡동 다문화거리(이주 노동자), 현충탑, 세월호 분향소, 단원고 등 몇 개의 선정된 성지를 걷는다.

각각의 성지에서 국가, 산업화, 이주와 관련해 생각해 볼 다양한 퍼포먼스가 진행된다. 중간 중간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문화 해설사들의 설명 시간도 있다.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참여하면 무려 5시간이 소요된다. 윤 연출은 “(5시간을 걷는다는 것은) 분명히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도 “관객이 이 공연을 선택하는 것이 쉽지 않았으면 했다”고 밝혔다.

이 공연을 선택하는 관객들이 그저 관람자가 아니라, 스스로 가해자이고 목격자라는 고백의 차원에서 동참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이었다.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안산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모두 목격자이자 가해자입니다. 죄의 동심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기억하겠다’고 말하는데, 기억만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기억이 개인을 새로운 주체로 변화시킬 때 그 의미가 있을 겁니다. 5시간을 걷는 것은 기억하겠다는 약속을, 그 언어가 가진 가벼움을 극복하는 행위입니다. 순례를 통해 이 사건을 왜 기억해야 하는지 스스로 답을 얻었으면 합니다.”

‘안산 순례길’은 참가자들은 2일과 3일 양일간 오후 1시에 안산역에서 그 고행을 시작한다. 혼자 걷는 게 아니라 단체로 걷는다.

올해는 이틀로 마무리되지만, 아티스트들은 매년 봄 그 길을 기억하는 누군가와 함께 순례길을 걷는 장기적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안산 순례길 참여 팀 : 그린피그, 무브먼트 당당, 심보선, 유목연, 제로랩, 청개구리제작소, 다이애나밴드, 타다 준노스케, 이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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