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색즉시공' 이후 재밌는 19금 로맨틱 코미디를 못 봤어요. 그런 장르를 예전부터 해보고 싶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여자들이 봤을 때 불쾌하지 않은, 유쾌한 영화를 해보고 싶은 욕심이 컸죠."
6일 서울 팔판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강예원에게 극중 성과 관련한 직설적인 대사들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는지 물었다.
"시나리오에서는 더 심했어요. 여자 관객들이 보면서 불편해 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특히 베드신의 경우 남성의 시선에서 그려진 경향이 컸는데, 그런 시선을 희석시키고 유쾌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이었죠. 애초에 코미디 요소도 적었는데, 촬영 현장에서 같은 장면을 찍더라도 애드리브를 하면 감독님이 많이 웃으시더라고요. 감독님과 얘기도 많이 나누고, 상대역인 (오)지호 오빠와 고민도 많이 한 결과죠."
강예원은 극중 남자들에게 통쾌한 막말을 서슴없이 날린다. "언제 이런 말 해보겠냐는 마음으로 시원하게 공격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남자들에게 평소 못했던 말들을 영화 속에서 하면서 여자들의 입장을 심어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만족스럽냐고요? 생소한 제 모습을 발견했다는 점에서는 그렇기도 하지만, 연기는 만족스럽지 않아요. 그래도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했다고 믿기에 후회는 없죠. 재밌게 봐 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 극중 술에 취해 남자들에게 막말을 날리는 포장마차 신은 '실제로 술을 먹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사실적이더라.
= 쉽지 않았다. (웃음) 길신설이라는 인물이 비뇨기과 전문의로 있으면서 겪었을 남자들의 시선, 고충을 생각하면서 연기했다. 신설의 입장에서는 술을 먹었으니 용기도 생기고 자기 안에 쌓였던 것들을 풀어내는 장면이었다. 던지는 말이 센 게 아니라, 그만큼 여자로서 평소 말하지 못하고 속에 담아 왔던 것이 많았다는 얘기 아닐까.
▶ 비뇨기과 전문의를 연기하면서 어땠나.
= 사실 '비뇨기과는 민망한 분야'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갈 기회도, 들을 기회도 없었으니까. 캐스팅 된 뒤 알아보니 남성의 전립선은 중요한 신체 부위더라. 여자들이 산부인과에서 유방검사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민망하다고 방치할 것이 아니라, 잘 알고 관리해야 할 일로 다가왔다. 그렇게 생각하니 연기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전국에 5, 6명 있다고 들었다. 대신 남자 비뇨기과 전문의를 만나 정보를 얻었다. 수술 장비도 만져봤다. 생소한 경험이었지만, 편하게 연기하는 데 보탬이 됐다. 사실 여자들이 가슴 확대술을 받는 것처럼 남자들도 (성기) 확대술을 받는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콤플렉스보다 중요한 게 건강 아닐까. 신체에 대한 또 다른 소중함을 느꼈다.
▶ 극중 길신설은 산부인과 전문의 왕성기(오지호)와 대립각을 세우다가 그의 어떤 말 한 마디에 호감을 느낀다. 이 부분에서 관객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텐데.
= 특별한 고민은 없었다. 상대의 말이 훅 들어올 때가 있지 않나. 호감을 느끼는 건 한순간인 것 같다. 장황한 설명이 없더라도 심경의 변화를 전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오히려 설명이 있었다면 더 억지스러웠을 것이다. 유쾌하게 표현됐기에 진부한 설명보다 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고 본다.
▶ 영화에서는 길신설과 아버지의 갈등도 큰 축을 이룬다. 실제 아버지가 떠오르지는 않았는지.
= 제가 첫째에 남동생이 있다. 아빠에 대한 존경심이 크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길신설의 감정에 공감이 안 됐지만,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려 했다. 신설의 마음이 작은 것 같다. 그 점이 내내 안쓰러웠다.
▶ 실제로는 어떤 딸인가.
-. 어디로 튈지 모르는 딸. 항상 부모님의 예상치에서 벗어났다. 제가 배우가 될 줄은 가족 가운데 아무도 예상 못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성악을 해 왔기에 부모님은 그 길로 갈 줄 아셨을 것이다. 어느 순간 음악이 너무 힘들었다. 예술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큰데, 제 안의 감정들을 말로 표현하고 싶어지더라. 대학생 때 배우가 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네 인생 네가 책임지라"고 하셨다. 관여는 안하셨다. 그래서인지 더욱 책임감이 커진 것 같다.
▶ 배우의 삶에 만족하나.
= 재밌고 희열이 있다. 집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나 향초를 만들 때와는 달리, 촬영장에서 공동 작업을 통해 느끼는 보람이 크다. 촬영장에서 낯선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한 번 믿으면 의심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크게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 공동 작업에 보람을 느낀다는 말이 흥미롭다.
=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선명회어린이합창단에서 활동한 영향이 큰 것 같다. 솔로가 아니라 조화로 승화시키는 작업에 익숙하다. 영화 역시 혼자 빛나는 게 아니라 어우러지면서 제가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타가 되기를 꿈꾸지는 않는다. 좋은 영화를 만드는 데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 지금까지 사람에게 크게 상처받은 기억은 없다. 그런 기억은 빨리 잊는 성격인데, 타고 난 것 같다. (웃음) 성처받았을 때도 상대를 이해하려 애쓴다. 웃으면서 생을 마감하고 싶은 게 꿈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인연을 맺은 친구들이 많은데, 그들로부터 큰 힘을 얻는다. 내 사람들과 행복을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처럼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는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나.
=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다. 결혼이 사랑의 완성은 아니지만, 여자로서 삶의 완성이 될 수는 있다고 본다. 아이를 갖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때가 되면 만날 거라 믿는다. 급하다고 사랑을 좇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넋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제가 천주교 신자인데, 인연이 있으면 주실 것이고 없으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 사랑보다는 일이 우선인가.
= 현재 주어진 일이 많다. 사랑을 고민할 여유가 없는 게 차라리 다행이다. 지금은 일적으로 달려야 하는 시기여서 그렇지만, 사랑에 자신이 없지는 않다. 의외로 연애보다는 결혼 상대로 더 괜찮은 여자라고 주위에서도 그런다. (웃음) 안정을 찾고 결혼을 하면 더 잘 살 것 같다.
▶ 거침없는 언변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 돌려 말해야 할 때는 돌려 말한다. 어른들께도 함부로 말하지 않고, 상대에게 상처주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닌 걸 맞다고는 못한다. 꾸미지 못하는 성격이다. 섹드립(성적인 언행)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번 영화의 경우 19금이다보니 굳이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었다. 이런 저런 에피소드를 통해 나올 수밖에 없는 얘기니 그 안에서 재미를 찾으려 했다.
▶ 주로 코믹한 캐릭터로 관객과 만나고 있는데.
= 의도한 건 아니다. 그런 연기가 재밌다. 현재 확정된 작품은 없지만, 앞으로는 보다 다양한 캐릭터로 다가갈 기회가 많을 것이다. 영화를 한 편 한 편 하면서 인지도가 올라가고, 배우로서 색을 갖게 되는 것 같아 감사하다. 그런 세월에 묻혀서 저만의 기분 좋은 색깔을 만들어가고 싶다.
▶ 어떤 배우를 꿈꾸나.
= 배역에 잘 스며드는 배우. 관객들이 제 모습을 단순히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확 빠져들게끔 만들고 싶다. 무엇보다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소중함, 초심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배우를 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기도하면서 준비했던 나날들이 있다. 선택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버텨냈던 시간도 분명 쉽지는 않았다. 지금 힘들고 지쳐도 재미와 보람을 느끼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