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80미터를 지나자 오른편 높은 경사로를 따라 초록색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글씨로 '동원훈련장 사격장'이라 적혀 있었다. 초유의 예비군 총기난사 사고가 일어난 훈련장이다.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7발의 총성이 울렸던 훈련장에는 새소리만 지저귀었다.
사격장 아래에는 육군 헌병 관계자들과 부대 관계자 10여명이 지키고 있었다. 무릎 높이로 자란 수풀로 덮인 사격장 언덕 맨 왼편에는 27개의 높은 돌계단이 나 있었다. 계단 끝자락에는 최모(23) 씨가 총을 난사한 1사로가 바로 드러났다. 1사로부터 사격장 중앙에 위치한 통제탑까지 가슴 높이로 헌병대의 노란색 출입통제선이 둘러졌다.
총기난사 사고가 일어난 지 하루가 지났지만 현장은 당시의 끔찍했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최 씨가 총을 난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1사로 총기 거치대 부분에는 검붉은 피가 고여 있었다. 신문지 한 면 만한 바닥에 파리 떼가 들끓었다. 귀마개와 요대에 결속된 수통, 탄피받이가 그 뒤에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방탄헬멧 하나가 사격통제선 안쪽에 뒹굴었다.
노란색이 흐려진 블록은 부사수 자리라고 군 관계자는 설명했다. 숨진 윤모(24) 씨가 쓰러진 1사로 부사수 자리 앞에는 주인을 잃은 방탄헬멧과 벗겨진 군화 1쌍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그 뒤에 총구를 뒤로 한채 거치한다는 부사수 소총 거치대가 있었다. 곳곳에는 하얀색 분필로 그려진 원이 혈흔과 탄피가 발견된 곳임을 표시했다.
헌병 관계자는 "간부와 군의관, 의무병이 피해자에 대한 응급처치를 하는 과정에서 신체를 압박하던 장구류를 풀어야 했기 때문에 군화나 요대가 흐트러져 남아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명의 무고한 예비군이 희생된 3사로 총기 거치대 주변에도 상당한 양의 피가 마르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숨진 박모(24) 씨가 사격 당시 엎드려쏴 자세를 취했을 자리 오른편. 군화 한 짝은 세워진 채로 또 다른 한 짝은 쓰러진 채였다. 주위에는 증거물을 표시한 하얀색 원이 10여개 정도 그려져 있었다.
피해가 없었던 4사로와 약 2.5미터 떨어진 5사로에는 사수 자리부터 부사수 자리까지 혈흔이 어지럽게 남아 있었다. 시멘트 블록 위에 떨어진 핏자국 중에는 군화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도 있었다. 당시 긴박했던 현장을 짐작케 했다.
52사단 관계자는 "누가봐도 의도적으로 자행한 살인의 현장이다.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다"며 "일반 부대의 20%에 불과한 동원부대 병력으로 이런 돌발 행동을 제지하기엔 역부족이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