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서울 광화문 KT 올레스퀘어에서 열린 ‘윤덕여호’의 2015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월드컵 출정식. 이날 행사는 시작부터 흥겹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 치러졌다. 하지만 여민지(대전 스포츠토토)의 이름이 등장하자 선수들의 눈가는 촉촉이 젖었다.
여민지는 2010년 17세 이하 여자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의 역사상 최초의 FIFA 주관 대회 우승을 이끌었던 골잡이다. 하지만 이후 여민지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 시달리며 세계를 호령했던 골잡이의 위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WK리그를 통해 오랜 부진의 늪에서 벗어난 여민지는 2003년 미국 대회 이후 12년 만에 한국 여자축구가 밟는 월드컵 출전 명단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출정식을 앞두고 지난 주말 경기도 파주NFC(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에서 치른 남자 고등부 팀과 마지막 국내 평가전에서 여민지의 무릎은 다시 한 번 문제가 생겼다.
월드컵 출전의 꿈을 키웠던 여민지는 다시 한 번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접하고 말았다. 회복까지 최소 8주가 걸린다는 진단에 월드컵 출전이 무산됐다. 더욱이 계속해서 자신의 선수 경력의 걸림돌이 됐던 무릎이 다시 한 번 다쳤다는 점에서 예고된 시간보다 더 오랜 재활이 필요할 수도 있게 됐다.
결국 윤덕여 감독은 여민지를 대신해 박희영(대전 스포츠토토)를 최종 엔트리에 발탁했다. 예비 엔트리에서 최종 선택을 받지 못했던 박희영이 부상으로 낙마한 여민지를 대신해 월드컵 무대를 밟게 됐다.
“대표팀 선수들이 모두 민지를 위한 세리머니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지소연은 “민지를 위해서 각자가 해야 할 몫이 있다. 캐나다에 가서도 꼭 민지의 몫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작은 주먹을 굳게 쥐었다.
여민지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 것은 비단 지소연만은 아니었다. 전가을(인천 현대제철) 역시 “출정식날 민지가 그렇게 되니까 속상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이내 “민지를 위해서 더 멋지게 해야 한다”고 더욱 확고한 목표를 제시한 전가을은 “나도 월드컵을 앞두고 다쳐 너무 힘들었다. 지금도 계속해서 이겨내려고 하고 있다. 기적을 이뤄내고 싶다. 대한민국 여자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오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격진의 맏언니 박은선(로시얀카)도 “(이번 월드컵이) 좋은 기회였는데 민지도 아쉬워했다. 안타깝다”면서 “좋은 공격수가 빠진 만큼 내 책임감이 더 커졌다”고 각오를 다졌다.
'윤덕여호'는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여민지라는 걸출한 공격수를 잃었다. 하지만 여민지의 이탈은 나머지 선수들을 더욱 뭉치게 하는 분명한 '힘'이 됐다. 여자 월드컵을 함께 할 수 없는 아쉬움에도 여민지는 확실한 자기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