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기준금리 인상에 취약한 변동금리 가계대출 규모는 70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만큼 달콤한 저금리의 유혹에 빚을 낸 가계들에게 몰아닥칠 후폭풍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안심전환대출 열풍에 휘청이던 시중은행들이 한달여 만에 고정금리 판매를 줄이고 변동금리 상품 판매에 팔을 걷어붙이며 금융권은 '이웃집 불구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6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3월말 은행 주택담보대출의 고정금리 비율은 20%대 후반(잠정치)이다. 변동금리를 고정금리로 바꿔주는 안심전환대출이 반영된 덕에 지난해 말 20%대 초반에서 소폭 증가했다. 안심전환대출 실적이 모두 적용되는 6월 말쯤엔 고정금리 비율이 30%를 넘어설 것이란 관측이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가계대출은 1,029조원 가량이다. 대략 30% 가량이 고정금리 대출자라고 한다면, 700조원 가량은 변동금리 대출자가 되는 셈이다.
단순 수치상으로만 봐도, 연내 금리가 1%포인트 올라가게 되면, 가계의 이자 부담은 최소 연 7조원, 2%포인트 인상 시엔 연 14조원이나 더 늘어나게 된다.
◇ 미국 연내 금리 인상 공식화...한은 "속도가 관건"
현재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연내 금리 인상을 공식화했다. 옐런 의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간) 한 지역 상공회의소 연설에서 "올해 안 어느 시점에는 연방기금금리 목표치를 높이기 위한 초기 조치에 나서고 통화정책의 정상화 절차를 시작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한국은행의 연내 기준금리 인상도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미 연준이 금리 인상을 하기 전에 한 차례 정도 추가로 금리를 내릴 가능성도 있지만, 올 하반기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방향성은 정해진 분위기다.
지난 3월 하순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시중 은행장들을 초청해 연 금융협의회에서 “미국이 금리 인상 기조로 접어들면 기준금리가 연속적으로 올라갈 것”이라며 “인상 시점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빠른 속도로 올릴지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또한 이날 오전 이 총재는 한은 본관 15층 소회의실에서 경제분야 전문가들을 초청해 연 경제동향간담회에서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이 지난주 연내 금리 인상을 시사하는 발언을 해서 앞으로 국제금융시장의 움직임과 자금흐름을 잘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한은 내부에서는 "금리 인상 방향성은 정해졌고, 속도가 관건"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한은 내부에서 미 연준의 인상 속도에 따라 완급조절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심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 한은 기준금리 인상 "점진적일 듯"
일각에서는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점진적일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가계부체 시한폭탄을 안고가야하는 상황에서 급격한 금리 인상은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또한 세계적인 분위기가 금리를 내리고 있어 이 역시 한은의 금리 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시장전문가는 "이자 부담에 허덕이는 저소득층가계를 시작으로 한계상황에 내몰리는 가계들이 증가할 것"이라며 "이에 대한 한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이웃집 불구경'하며 '변동금리 권하는 은행'
올해 초부터 연내 기준금리 인상이 기정사실화되고 있음에도 은행들은 '이웃집 불구경'하는 모양새다.
안심전환대출 여파로 금융당국이 요구하는 고정금리대출 비중을 안심전환대출로 어지간히 맞추자 은행들이 변동금리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어서다.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 신한·우리·기업은행 등 시중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를 안심전환대출 전후 시기보다 최대 0.53%p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는 최대 0.57%p 떨어졌다.
KB국민은행의 지난달 6일 기준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아파트 구입자금 신용등급 5등급, 전액 유담보 기준, 60개월고정, 비거치 기준)는 2.95~4.05%에서 이달 6일에는 3.28~4.58%로 0.33~0.53%p 상승했다. 반면 이 기간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신규코픽스연동 6개월, 대출기간 5년 이상)는 3.12~4.22%에서 2.69~4.0%로 0.22~0.57%p 하락했다.
우리은행도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5년 혼합, 비거치, 아파트 담보 기준)은 4.13%에서 4.47%로 0.34%p 오른 반면, 변동금리(신규취급액 COFIX 6개월, 아파트 담보 기준)는 4.42%에서 4.30%로 0.12%p 떨어졌다.
기업은행과 NH농협은행도 마찬가지다. 이 기간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는 기업은행이 3.089~3.789%에서 3.189~3.889%로, NH농협은행은 2.75~4.40%에서 3.03~4.68%로 각각 0.1%p, 0.28%p 상승했다. 반면,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의 경우 기업은행은 3.138~3.838%에서 3.098~3.798%로, NH농협은행은 3.21~5.01%에서 3.09~4.89%로 각각 0.1%p, 0.12%p 하락했다.
요즘 같이 금리 변동성이 높을 때에는 저금리로 장기 고정금리 대출을 해주는 것은 은행 입장에서는 리스크를 키우는 셈이 된다. 특히, 올해 하반기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시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초저금리 고정금리 대출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정부와 금융당국의 금융권에 대한 압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게 금융권의 설명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리 리스크 측면에서 고정금리 대출을 판다는 것 자체는 은행입장에서는 위험이 크다"며 "지금까지 고정금리가 변동금리보다 낮았던 것이 비정상적인 시장구조였다"고 지적했다.